“경찰도 인권침해 당한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3.03 18:10
  • 호수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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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중 前 강릉경찰서장, 국가인권위에 진정서 제출

지난 1월 말, 전직 경찰서장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경찰 조직의 인권침해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진정서를 제출한 장신중 전 강릉경찰서장은 “인권이 보장된 국가에서 이 같은 비상식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장 전 서장은 현직에 있을 때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 등 민감한 문제에 관해 거침없는 발언을 하며 경찰의 ‘인권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현재는 경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페이스북에서 ‘경찰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접수된 사례를 바탕으로 진정서를 작성한 것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회식 금지하고 음주 측정 강요

 

진정서는 경찰 내부 조직이 개인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음주와 관련된 부분이다. 진정서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산하 각 경찰서는 출근하는 직원들에 대한 음주 감지를 실시하고 있다. 음주 금지 지시를 지켰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도보로 출근하는 사람과 차로 출근하는 사람, 야간부터 행정반에서 근무하고 있는 근무자까지 음주 측정을 받아야 한다. 음주 측정도 강제로 이뤄진다. 출근하는 경찰들에게 음주 감지기를 들이대고 이를 거부할 경우 감찰조사 후 징계 조치를 내리겠다며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또한 전국 경찰관서에서 소속 경찰관 중 한 명이라도 음주운전 사례가 적발될 경우 해당 관서의 경찰관들을 상대로 감찰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음주 자체를 금지하는 곳들도 있다. 서울경찰청 기동단은 동료들끼리 만나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회식을 금지했고, 울산경찰청은 소속 경찰서 경찰관들에게 2인 이상 음주 회식을 금지했다. 울주경찰서는 경찰관 한 사람 이상이 포함된 회식을 금지했는데, 이는 소속 직원들이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금주령’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기경찰청의 경우, 소속 부대장에게 ‘저는 기동단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음주운전 등 의무 위반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야 하고, 각 부대장들이 이 문자를 기동단장에게 보고한다는 사실도 경찰인권센터를 통해 접수됐다. 심지어 음주 측정 결과 신고 없이 술을 마신 직원은 ‘지시 명령 위반’에 걸린다.

 

일부 경찰서의 경찰들은 퇴근 후에도, 휴무일에도 자신의 현재 위치를 보고해야 한다. 퇴근 후 18시, 18시30분, 20시, 22시에 카카오톡 메신저로 현재 위치를 파악하는 점호가 이뤄진다. 점호 응답이 오기 전까지는 잠을 잘 수도 없다. 출근을 하지 않는 휴무일조차 위치 보고가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도, 잠을 마음대로 잘 수도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경기경찰청 기동대에 근무하는 경찰관 전체는 퇴근 후 음주를 했는지 여부, 집으로 귀가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메신저로 퇴근 후와 휴일에도 위치 보고

 

장 전 서장이 진정서에 첨부한 ‘경찰관서별 카카오톡방 이용 지시사항 시달 및 결과 보고 사례’를 보면, ‘청장님 특별지시, 경계 강화 중 2인 이상 음주 회식 금지’라는 내용의 메시지와 ‘각 부서 음주 회식 시 과·계장에게 보고 및 청문에 통보’하라는 공지를 확인할 수 있다. 경찰들이 각자 ‘집입니다’라고 보고하는 단체 채팅창 내용도 첨부돼 있어, 귀가 여부 보고가 사실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사생활의 자유 침해뿐만이 아니다. 지방청장 등이 경찰서를 방문한다는 이유로 야간 근무자와 휴무자까지 강제로 동원하는 관행이 아직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 ‘연락방’으로 쓰이는 부산경찰청 직할대 1개 중대 순경들의 단체 채팅창에 답이 없다는 이유로 폭언과 욕설이 올라온 점 등도 문제로 제기됐다. 최근에는 서울경찰청 제5기동단이 전 대원과 직원들에게 국선도 수련에 참석할 것을 요구하는 계획안이 경찰인권센터를 통해 공개돼 ‘강제 참석’ 논란이 일었다.

 

서울경찰청에 근무하는 한 경찰은 “카카오톡 보고 등 불합리한 지시 상황이 실제로 많이 있었다. 업소 사장을 (윗선에) 보고 없이 만나거나, 전화 한 통화만 하더라도 징계를 하겠다고 했다. (연락을 했다는 이유로) 의혹이나 의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단순히 만나거나 접촉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경기경찰청 소속의 한 경찰은 “그동안 출근자를 상대로 일제히 시행하던 음주 감지를 직원들의 ‘인권을 감안하여’ 금일부터 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지금까지 직원들이 음주 감지를 불편하게 여겨도 지휘관들은 ‘불만이면 행정소송을 하라’고 대응해왔다. 지금까지 하위직 직원들을 상대로 인권유린을 해왔다는 걸 자인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복무 기강 확립 차원에서 음주 회식을 지양하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일선 경찰서에서 시행되는 금주 조치·카카오톡 보고 등에 대해 지시한 사실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인권센터에는 지금도 꾸준히 경찰 인권과 관련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경우 경찰관들의 인권의식이 약화되고, 인권을 가볍게 여기게 되면서 국민 인권을 유린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 전 서장은 “사람들은 인권과 가장 맞닿아 있는 사람이 경찰이라고 생각한다. 경찰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로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진정서를 제출한 이후 경기청·울산청 등이 음주 감지를 하지 않고 있다.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이것이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아니라면 형사 고발을 할 것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경찰 스스로 개선하도록 고발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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