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간부들 ‘황제골프’ ‘성 접대’ 파문
  • 박성의 시사비즈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31 18:37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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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 대표들 “수시로 뇌물·성 접대 노골적 요구” 주장

현대중공업 간부들이 뇌물을 제공한 협력사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성(性) 접대 등 온갖 향응을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중공업 협력사 대표들은 “2년 전부터 현대중공업 부장단에 성 접대를 해왔다”며 “현대중공업 차장급 간부 수 명에게는 주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했고,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골프채까지 줬다”고 시사비즈 기자에게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현대중공업은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비리 혐의가 불거진 간부는 골프채를 돌려줬고, 회사 측은 자체적으로 내부감사에 나섰다.

 

현대중공업 의장부문 부서장인 J 부장은 지난해 협력사 대표 H씨에게 전화해 술값 대납을 요구하고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풀살롱 접대’를 강제했다. H씨는 “접대는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주기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자신이 먼저 술집에 가서 술을 먹고 새벽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러면 자다가도 달려가 돈을 내줘야 했다”며 “J 부장이 성매매 여성과 모텔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돈을 지불하고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굴욕적이었지만 거래가 끊길까 두려워 접대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 박성의 제공

2014년 현대중공업 하계휴가 기간에는 외업부문 전장공사과 간부 2명과 운영과 간부 등이 협력사 대표 N씨에게 해외에서 향응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N씨는 현대중공업 간부들과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동남아로 이동했으며, 현지에서 향응을 제공했다. 낮에는 골프를 치고 저녁에는 룸살롱을 가는 이른바 ‘황제골프 접대’였다. 5일에 걸쳐 향응비만 간부 1인당 400만원 넘게 썼다는 것이다.

 

그 밖에 드릴쉽의장부 소속 I 차장은 매달 협력업체를 돌며 “본사에 FM(정석)대로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겠다”며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아 챙겼다. 외업부문 L 부장은 협력업체로부터 수차례 성 접대를 받고 500만원 상당의 골프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L 부장의 경우, 명절에 소고기를 들고 찾아간 협력사 간부에게 “나는 현금을 좋아한다”며 노골적으로 상납을 요구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황제골프’부터 풀살롱 성 접대까지


현대중공업 간부 성 접대가 이루어진 곳은 울산광역시 남구 삼상동에 위치한 정동로 76번길이다. 이 일대는 술집·안마시술소·룸살롱·모텔 등이 밀집한 지역이다. 성 접대는 주로 수요일과 금요일에 이뤄졌다. 현대중공업은 매주 수요일을 ‘문화·가정의 날’로 지정해 임직원이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퇴근해 동료·가족과 취미·문화생활 등을 즐길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몇몇 간부들이 이날을 악용해, 이른 시간부터 향응을 즐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폐업한 한 협력사의 대표 K씨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삼산동 일대 유흥가의 대목이다. 현대중공업 간부들은 이 일대 VIP로 통한다. 그들이 있는 자리에 항상 협력사 대표들이 있기 마련이고, 보통 한 번 접대하면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씩 쓰고 간다”고 밝혔다.

 

지난 2월17일 산업재해 은폐와 뇌물수수 사실을 고발하겠다며 자수 형태로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은 이재왕 전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업체 대표는 현대중공업 간부 비리가 매우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협력사 대표 10명 중 7명은 접대했다고 보면 된다. 현대중공업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지만,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비리다. 본청 간부들은 기성(조선업체 하도급 대금의 일종)을 미끼로 뇌물을 요구했다. 수년에 걸쳐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5억원을 줄 것도 5억5000만원으로 늘려줄 수 있다는 식으로 협박했다”고 말했다.

 

본지가 입수한 현대중공업 비리 간부 명단에는 부장 2명, 차장 3명, 기장 2명 등의 실명이 적혀 있다. 명단을 작성한 주체는 2012년부터 접대해왔다는 협력사 7곳의 대표들이다. 한 협력사 대표는 2012년 자기 수첩에 적은 간부 2명에 대한 구체적인 향응 내역을 공개했다. 이 중 부장 1명은 현대중공업 자체 조사 결과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리 1명과 함께 징계·해고됐지만, 또 다른 간부는 통장 거래 내역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현직에 있는 상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월29일까지 비리 자진신고제를 실시해 자진신고 기간이 지난 후 비리가 적발될 경우 중징계 및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이 기간 자진신고 건수는 전무했다. 결국 협력사 대표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취재가 시작돼서야 이번 주부터 자체 내부감사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중공업은 관련자들의 통장 내역 등을 확인하고 대면 또는 서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관련자들이 혐의를 인정했는지 여부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협력사 대표들 “비리 폭로, 빙산의 일각이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비리 자진신고 기간을 설정하긴 했지만, 비리에 관해서는 상시 감시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부감사 등도 그런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감사 과정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임직원에 대한 비리 척결 의지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폭로의 시발점이 된 이재왕 전 대표를 비롯한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대표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대해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으로 손해액 1억원을 연대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책위는 이번에 드러난 현대중공업 비리가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뇌물을 수수했던 차장·부장급 간부 중 일부가 상무와 전무 등으로 진급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간부가 산업재해를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뇌물을 주고받은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간부들의 모든 비리 혐의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재왕 대표가 협력사 대표들의 증언과 자신의 진술을 들어 지난 2월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상태지만, 성매매나 뇌물수수 모두 현금 거래로 이루어져 통장 거래 내역 등을 통한 증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상납도 컨테이너박스 등에서 이루어져 CCTV 등의 영상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몇몇 협력사 대표가 용기를 내 진술을 한 상태지만, 정작 수사가 시작되면 입을 닫는 대표들도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는 최근 들어 양심선언에 동참하겠다는 협력사 대표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과거 원청의 보복이 두려워 쉬쉬하던 현대중공업 협력사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김종이 대책위 본부장은 “처음에는 기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덮기에 급급했다. 시위하는 이유는 듣지 않고 자신들 명예를 훼손했다며 대형 로펌을 내세웠다”며 “대기업과 싸우면 지치는 게 사실이다. 다만 대책위는 이제 현대중공업 ‘갑질’에 피해를 입은 이들의 신문고가 됐기에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는 현대중공업이 망하기를 원치 않는다. 미래에 더 나은 기업으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적폐를 끊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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