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을 ‘한국의 머크’로 만들겠다”
  • 윤민화 시사비즈 기자 (minflo@sisabiz.com)
  • 승인 2016.04.0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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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바이오시밀러업체 셀트리온의 연구·생산·개발·임상 총괄 기우성 대표 인터뷰

한국에 시가총액 200조~300조원 가치의 바이오제약업체를 만들겠다는 자칭 ‘공돌이’가 있다.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55)가 그 주인공이다. 기 대표는 한양대 산업공학과 출신으로, 졸업한 후 대우자동차에서 일했다. 2~3차례 직장을 옮겼지만 업무는 산업공학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 산업공학 전공자 4명과 함께 바이오시밀러업체 ‘셀트리온’을 창업했다. 창업 멤버 6명 중 김형기 대표만 정치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창업자 6명은 2000년 초 인천 연수구 송도 앞바다에다 국내 최대 규모의 바이오시밀러 생산기지를 디자인했다. 아직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갯벌을 저가에 분양받아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 시사저널 이종현

셀트리온은 이제 국내 최대 바이오시밀러업체로 성장했다. 시가총액이 13조원가량으로 코스닥 상장 업체 중 1위다. 바이오시밀러는 생물 세포나 조직 등을 이용해 제조하는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을 일컫는다. 셀트리온은 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복제약인 ‘램시마’를 개발해 한국·유럽 등 69개국에서 승인받은 바 있다. 그 밖에 비호지킨스 림프종 치료제와 유방암 치료제의 복제약인 ‘트룩시마’와 ‘허쥬마’도 개발하고 있다.

기우성 대표는 바이오항체의약품 연구·개발부터 임상·허가 승인 업무까지 총괄한다. 공동대표인 김형기 대표는 재무·홍보 업무를 총괄한다. 대표이사를 맡은 지 만 1년가량 지났다. 기 대표는 셀트리온이 세계 최대 바이오제약업체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작업을 마치는 게 자기 소임이라고 말한다. 그는 “젊고 유연한 두 번째 주자가 바통을 이어받아 셀트리온을 한국의 ‘머크’(세계 2위의 제약회사)나 ‘로슈’(스위스의 세계적 제약회사)로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3월29일 인천 연수구 송도 소재 셀트리온 집무실에서 기 대표를 만나 2시간가량 인터뷰했다.

 

셀트리온 창업주 서정진 회장과의 인연은.

대우자동차 말단 사원 시절부터 서 회장(당시 차장)과 일했다. 서 회장은 1999년 말 대우차를 그만뒀다. 당시 나는 대우차 중국법인에 장기 출장 중이었다. 서 회장이 함께 사업하자고 제안했다. 당시 나는 막 차장으로 진급했다. 30명 동기 중 2명만 차장 승진 대상자였다. 그럼에도 2000년 3월 사표를 내고 서 회장을 따라나섰다. 서 회장을 믿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리스크를 지는 상사와 회피하는 상사가 있다. 서 회장은 전자였다. 일찌감치 서 회장이 사업을 제안하면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는 최고경영자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기획이라 판단되면 결재를 올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 회장은 기획안이 만들어지면 사장단을 설득해냈다. 대우차 재직 시절 그런 모습을 보고 이 사람과 함께하면 무슨 일을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함께한 창립 멤버들은 누구인가.

셀트리온 창업 멤버는 서정진 회장과 나, 그리고 김형기 대표, 유헌영 셀트리온홀딩스 대표, 문광영 한스킨 사장, 이근경 셀트리온헬스케어 고문 등 총 6명이다.

바이오시밀러산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유망 사업으로 IT(정보기술), BT(바이오기술), ET(친환경기술) 등이 꼽혔다. 사업 구상 당시 IT는 끝물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의 IT 수준은 인프라에 비해 기술력이 취약하다. IT 벤처 붐도 2000년 초 끝났다. ET는 시장이 작았다. 장기적으로 봐도 시장이 커지지 않을 듯했다. BT가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한국은 제조 기술력 면에서 탁월하다. 이에 우선 생산시설을 갖추고 위탁생산에 주력했다. 캐시카우(Cash Cow·수입 창출원)가 마련되면 언젠가 독자적으로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미국 제약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와 10년간 생물학 제제(製劑)를 위탁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다 2003년 인하대 영안실 구석 자리를 얻어 연구소를 차리고 바이오시밀러 기초 연구에 돌입했다.

셀트리온의 경영 철학은.

서정진 회장은 항상 답은 현장에 있다고 말한다. 서 회장은 늘 현장에서 프레임(사업 구상 내지 틀)을 잡는다. 현장이란 현장·현물·현실 3가지를 접목한 것을 뜻한다. 모든 사건은 현장에서 벌어진다. 물건·시간·목격자에 기초해 향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장을 무시하면 산업의 구조를 알 수 없다. 경영철학은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과 안목이 쌓여 오늘날의 셀트리온을 만들었다. 참고로 셀트리온 창립 멤버 6명 중 김형기 대표만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은 모두 산업공학 전공자다. 생명공학 전공자는 아예 없다. 의학이나 생명공학 지식이 없어도 산업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

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 개발은 언제 시작했나.

2003년부터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R&D)에 착수했다. 물질 탐색과 연구에만 3~4년 걸렸다. 연구·개발은 서 회장이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보통 의약품 개발 건 10개 중 9개는 실패한다. 연구·개발 투자는 미래를 보고 장기간 지속해야 한다. 서 회장은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계속 지원했다. 연구원은 5~6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250여 명까지 늘어났다. 순수 연구자 외에 임상공학 인력도 크게 증가했다. 2010년 16명으로 임상팀을 꾸렸으나 지금은 200명까지 늘어났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약품을 레미케이드, 리툭산(비호지킨스 림프종 치료제), 허셉틴(유방암 치료제)으로 정한 이유는.

이 3가지 품목은 다른 블록버스터급 항체 제제보다 특허 만료가 빨랐다. 한꺼번에 3개 약품을 동시 개발할 순 없었다. 우선 1세대 EPO(빈혈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로 시행착오를 통해 개발 능력을 확보했다. 그 후 여기저기 자문을 받던 중 유방암 치료제 시장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착수했다. 허셉틴은 조기 및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다. 조기 유방암 치료제 시장은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그런데 EMA(유럽의약품청)가 전이성 유방암 치료로 임상시험을 실시하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임상 비용과 기간이 예상을 넘어서면서 허셉틴 개발이 쉽지 않았다. 이에 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 레미케이드 개발에 나섰고 램시마(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에 자원과 인력을 대거 투입했다. 항체 의약품 다수가 관절염에 효능이 크다고 알려졌다. 레미케이드가 가장 효능이 좋다고 판단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리툭산 바이오시밀러인 트룩시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회사를 이끌어가는 대표이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는다면.

한국 시장은 여전히 항체 의약품에 무지하다.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설득하는 게 힘들었다. 셀트리온 주식에 대해 공매도가 늘어날 땐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램시마 판매 허가를 받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서 회장도 유럽 EMA의 허가를 받기 전에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2013년 5월 유럽 허가를 받으러 갈 때는 2주 동안 물밖에 먹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임직원 1000명가량이 휘하에 있다. 딸린 식구가 많다 보니 회사를 빨리 안착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트룩시마와 허쥬마를 세상에 빨리 내보내야 한다.

4월에 램시마의 미국 판매 승인을 받는다고 공시했던데.

미국 식품의약국(FDA) 산하 자문위원회 소속 패널 절대 다수가 승인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결과는 공시대로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FDA가 행정 절차를 밟고 있다.

3월3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중국경제포럼 ‘통찰, 신중국’에서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이사가 ‘셀트리온이 바라본 중국 바이오 시장’이란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트룩시마와 허쥬마는 언제 EMA의 승인을 받나.

승인 신청을 하고 1년가량 걸린다. 지난해 10월 트룩시마 판매 허가를 신청했으니 올 하반기에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허쥬마는 올해 신청해 내년에는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연구 인력이 트룩시마 개발에 몰린 탓에 늦어졌다. 셀트리온이 3개 약품에 대해 전 세계의 판매 허가를 받으면 글로벌 대형 제약회사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시나지스(호흡기증후군 예방 항체), 얼비툭스(대장암 치료제), 엔브렐(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 휴미라(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 아바스틴(항암 치료제) 등 5개 바이오시밀러 후보 물질도 현재 개발 중이라고 들었다.

시나지스·엔브렐 등은 물질과 공정 개발까지 끝냈다. 인력난이 심각한 게 문제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어떤 제품을 우선 개발할지 순서를 정해야 한다. 엔브렐의 미국 특허는 2029년까지다. 미국이 전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미국 외의 시장만 노리고 엔브렐을 우선 개발하는 건 경영상 손해다. 현재로선 휴미라 시장이 가장 크다. 모든 업체가 휴미라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이에 특허권 보유 업체가 전략을 바꿔 절반만 투여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게 약품 효능을 개선했다. 우리는 변경된 제품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이에 맞춰가도록 계획 중이다.

CT-P27(독감 치료용 항체) 개발은 어디까지 왔나.

독감 바이러스 여러 종에 효능이 있는 약제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와 공동 개발했다. 임상 1상 시험은 끝났다. 2상 시험에서도 효능은 입증됐다. 3상 시험을 하려면 수천억 원이 필요하다. 3상 시험은 약품 개발비의 60%를 차지한다. 우리는 미국 보건부 산하 BARDA(The Biomedical Advanced Research and Development Authority)에 투자를 요청했으나, 투자액이 커서 협의 중이다.

로슈·머크 등 세계적인 대형 제약업체로 성장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우리가 가진 항체 의약품은 두세 가지다. 항체 의약품 2~3개를 가진 제약업체의 시가총액은 200조~300조원이다.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13조원에 불과하다. 개발 약품만 확실하다면 세계적인 제약업체로 성장할 수 있다. 셀트리온은 저평가돼 있다. 셀트리온은 지금 신약, 바이오시밀러, 항체 의약품에 화학약품까지 결합시켜 개발 중이다. 파이프라인은 탄탄하다.

기우성 대표 개인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맡은 일은 해결될 때까지 밀어붙인다. 서정진 회장과 대우에서 함께 일할 때부터 해결사 역할을 수행했다. 대우자동차 재직 시절 중국 공장에 출장을 간 것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공장에선 6개월가량 머물렀다. 보통 출장 기간은 3~4주다. 서 회장은 연구·개발에 진척이 없자 개발 부서 인사권을 내게 위임했다. 훌륭한 직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아무리 유능한 직원들이 있어도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하면 경영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인가.

전 직원이 한 방향을 보게 만든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보드판에 핵심 업무를 구체적으로 써놓는다. 미팅할 때마다 보드판을 보며 핵심 내용을 상기시킨다. 일종의 세뇌교육이다. 중간에 엉뚱한 얘기가 나오면 보드판에 쓰인 내용을 다시 각인시킨다. 또 보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대로 보고만 이루어지면 내가 현장에서 직접 챙긴다.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상하 간 대화가 끊기지 않는다. 그래도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그러면 내가 책임진다. 어느 조직이나 새로운 상사가 들어오면 시험이 들어온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시험이 없는 조직은 이상한 거다. 내가 책임지고 문제를 모두 해결하면 상하 간 신뢰가 생긴다. 상사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편견 탓에 생기는 불신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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