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신(神)’이 있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4.0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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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앱으로 포교에 대처하는 종교의 자세

도심 속의 사찰이자 한국 불교의 본산은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하고 있다. 조계사 이야기다. 흔히 찾아보기 힘든 불교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자리 잡은 것만 봐도 이곳이 국내 대표 종단 조계종의 중심이란 걸 쉬이 느끼게 해준다.

불교용품점은 흥미로운 장소다. 한쪽에는 추억의 물건이 위치해 있다. 요즘 보기 힘든 염불 카세트테이프다. “요즘도 테이프 사러오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인에게 물어보니 드물긴 하지만 있단다. 이제는 테이프에 익숙한 노인들이 찾는 물건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염불을 듣기 위해 이곳 조계사 근처 가게를 직접 찾는 불자들이 많았단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이처럼 가게 한구석으로 밀려 마치 가구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일 터다.

ⓒ freepik

염불을 듣기 위해 번거롭게 용품점을 찾는 시대는 먼 과거가 됐다. 우리나라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한다는 <천수경>을 듣고 싶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을 들고 앱스토어로 들어가 천수경 세 글자만 치면 끝이다. <반야심경>도 마찬가지. 내 손안에 작은 기기 하나를 들고 애플리케이션(앱)만 깔면 걸어 다니면서 경전을 듣고 차 안에서 독송을 하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가장 아날로그적이라는 종교가 뉴미디어 플랫폼에 올라타면서 생긴 일이다. 이제 마음만 먹는다면 신을 믿는 사람들은 절이나 교회, 성당을 찾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신을 어디서든 접할 수 있다. 마치 활판인쇄술이 도입되면서 만들어진 구텐베르크 성경이 종교 개혁을 앞당겼듯이, 뉴디바이스가 파고들자 종교도 영향을 받는 모양새다. 기계를 이용한 신과의 접점 넓히기. 하이테크 시대인 지금, 종교계의 고민은 당연해 보인다.

앱과 비콘, 증강현실까지 이용한 포교

스마트 디바이스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세상에 널리 퍼질 무렵 가장 민첩하게 움직였던 곳은 천주교다. 아이폰이 처음 국내에 출시된 2009년 11월28일. 천주교는 놀랍게도 국내 출시일 이전에 이미 아이폰용 성경 앱을 무료로 제공했다. 2010년에 들어서자 기도문과 복음말씀 등 미사에 필요한 자료와 신자가 속해 있는 지역의 성당을 찾아갈 수 있는 성당 주소록, 가톨릭 뉴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당시 신부님 중에 개발이 가능한 분이 계셨고, 이런 프로젝트를 주도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서울대교구의 결심이었다. 유지와 보수, 운영 등 차후 투입될 자원들 때문에 기업들도 앱 개발에 미온적이었던 시점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이건 내부 분위기와도 관계가 있었다. 천주교의 사제들은 환경 변화를 재빠르게 인식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4년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는 가톨릭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새로운 가톨리시즘을 언급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남아 있는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기 전에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구조로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개신교의 대응도 늦진 않았지만, 천주교에 비해서 아쉬운 점이 더러 있었다. 성경이나 찬송가 등의 초기 앱은 UI(유저 인터페이스)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오류도 더러 발생했다. 서울대교구라는 컨트롤타워가 총괄하는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개별 교회가 각개약진 형태로 앱을 개발하고 없애기를 반복했는데 이런 것도 질적 차이를 가져왔다. 불교는 가장 변화가 더딘 곳이었다. 다른 종교들이 앱 개발을 고민하고 양적으로 숫자를 늘리고 있을 때 스마트폰 포교의 필요성에 관해 차근차근 교육을 받고 있었다.

변화라는 물결의 흐름은 제각각 속도가 달랐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종교계는 지금 사회의 어느 분야 못지않게 스마트폰과 새로 열린 세계를 활발히 이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앱 개발 붐이 일던 초기에는 경전의 독해와 듣기 등 종교적 기능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제는 결이 달라졌다. 좀 더 친근하게 대중에 침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생활 속에 파고드는 형태로 결과물도 진화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난 후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하고 싶었는데 어느 부분을 읽어야 좋을지 잘 모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이런 앱이 큰 도움이 된다.” 서울 사랑의 교회에 다니는 이진미씨(42)는 성경 읽기 등의 앱만 사용하다가 QT(Quiet Time) 앱과 같은 묵상용 앱에 빠져들었다. “과거에는 교회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앱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교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앱이 많아진 것 같다. 교인이 직접 제작한 것도 많다. 그렇다 보니 활용 폭이 넓어졌다.”

성찰이 중요한 화두인 불교 역시 일반인이 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앱들을 내놓으며 다가선다. “사람들은 우리 안에 치유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믿지 않습니다. 지금의 불행과 아픔은 곧 없어진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당신도 이미 없어져버린 세포들로 구성된 ‘나의 죽은 몸’을 현재의 ‘내 몸’이라고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요?” 경북 울진 불영사에서 매일 아침마다 보내는 일운 스님의 메시지는 아이의 가출 결심을 접게 하고 부부의 다툼도 멎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난해 책으로도 나온 ‘일운 스님의 마음 편지’는 앱으로 배달되는 따뜻한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충만하게 살 것인가를 묻는 현대인들과 불자에게 일운 스님의 메시지는 인기가 높다. 앱에서는 일자별로 스님의 마음 편지를 볼 수 있다.

‘어르신 마음거울 108’도 불교가 내놓은 108배를 위한 생활형 종교 앱이다. 2012년 조계종 포교원이 만든 ‘어린이 마음거울 108’과 ‘청소년 마음거울 108’의 성인 버전이다. ‘자아 성찰’ ‘건강한 생활’ ‘인생의 완성’ 등 다양한 주제들, 그리고 어르신들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한 108개의 자아 성찰 문구가 들어 있고 일러스트, 성우들의 음성으로 구성돼 있다. 조계종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요즘은 꼭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인이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콘으로 설명하고, 팟캐스트로 다가가고

단순히 앱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기술들이 하나둘 종교 현장에 접목되고 있다. ‘비콘(Beacon)’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해외 관광지에서 헤드셋을 끼고 문화재 앞에 섰다고 치자. 그러면 문화재에 관한 설명이 헤드셋을 통해 흘러나온다. 이런 게 비콘이다. 범위 안에 있는 사용자의 위치에 맞는 메시지와 음성파일을 전송해주는 스마트폰 근거리통신 기술을 말한다. 비콘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곳은 종교계의 얼리어답터 천주교다. 명동성당에 가보면 비콘의 실사용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입구에 도착하면 스마트폰으로 성당의 역사와 미사 시간 등이 포함된 웹페이지가 뜨고, 지하로 내려가면 상설고해소 운영 시간이 전달된다. ‘매일미사’ 앱을 설치한 후 블루투스를 켰을 경우 제공되는 ‘친절한’ 서비스다. 지금은 서울대교구 229곳 성당 모두에 비콘 시스템이 설치됐다. 더 많은 신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비콘을 통해 서울대교구가 이루고자 하는 바다.

불특정 다수를 직접 찾아나서는 점도 변화된 모습이다. 거리에서 포교하며 궁금증에 답해주던 전도사의 역할을 이제는 팟캐스트의 진행자들이 해낸다. 팟캐스트에서 ‘불교’를 검색하면 유독 눈에 띄는 방송이 하나 들어온다. ‘절오빠 절언니’다. 2014년 4월부터 시작한 이 방송의 진행자는 ‘교회 오빠’와 대적하기 위해 나선 청년 불자들이다. ‘쉽고 친근한 불교’가 모토이니만큼 다루는 주제도 쉽고 재미있다. ‘스님들은 언제 주무시나요?’ ‘절에 단청이나 탱화들이 무서워요’ 등등.

대안 언론이라는 팟캐스트 본연의 성격을 띠고 종교를 다루는 방송도 적지 않다. 김종현 목사는 2014년 3월부터 ‘내가 목사다’를 운영하고 있다. 다루는 주제만 보면 혁명적이다. ‘건축 때문에 교회 망한다’ ‘목사들의 성추행, 그거 다 이유가 있는 거래요’ 등 한국 교회에서 제기되는 부정적인 부분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처럼 스마트한 기계들은 종교가 일반인들과 만나는 접점을 넓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우려할 점 역시 이 넓어진 접점이다. 이제는 모든 종교가 자유롭게 포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단(異端) 논쟁이 가장 활발한 개신교는 지금 같은 때야말로 ‘이단’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맛집이나 여행 관련 앱을 만들어 오프라인으로 만난 다음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한다. 이렇게 만나 적성검사나 이런 방법을 통해 관계를 돈독히 한 후 성경공부로 들어가는 방식으로 접근한다.”(임웅기 광주이단상담소 소장) 트위터와 같은 개방형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대일’뿐만 아니라 ‘1 대 다수’와도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장점을 가졌으니 누구에게나 좋은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단의 경우) 기성 교회를 비난하고 자의적인 성경 해석을 퍼뜨리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인다.”(안인섭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보통 성경이나 교리와 신학, 기독교 근본원리를 기준으로 이단 혹은 사이비를 가려내게 되는데 이런 구분법을 교회들이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유하는 것도 효과적이라는 게 안 교수의 지적이다.

팟캐스트 시장이 활짝 열리자 종교 역시 이곳에 뛰어들었다. 수많은 팟캐스트들이 잠재적 신자를 만나려고 대기 중이다. ⓒ 아이튠즈 캡처


“기술적 플랫폼과의 접목, 세속적 아니다”

온라인을 통한 종교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지적도 있다. 종교와 온라인이 밀접해질수록 세속화되고 진지함이 떨어지며 공동체활동을 멀리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나오는 얘기다. 신을 믿는 마음과 인터넷, 이 두 가지를 놓고 대립 관계로 보느냐, 상호보완의 관계로 보는가에 따라 입장은 달라진다.

하지만 지금은? 상보 관계가 정답이다. 노재경 목사(예장합동총회 교육진흥원)의 지적이다. “신앙의 위기만 외칠 게 아니라 미디어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다음 세대의 특성에 맞는 선교 전략을 펴야 한다. 복음을 기술적 플랫폼과 접목하는 것을 세속적이라고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회. 종교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이것을 수용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도구로 활용해왔다. 그리고 이런 도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고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종교 간 다음 세대 헤게모니가 결정돼왔다. “현대 매체가 열어젖힌 새로운 ‘광장’에서 여러분 모두 열정적인 복음 선포자가 되기를 바란다.” 전임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의 이 말은 비단 천주교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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