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마약’이 당신을 노리고 있다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6.04.28 17:49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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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 효과 큰 ‘신의 눈물’ 등 국내 밀반입…단속은 훨씬 어려워져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한 소통 채널이 확대되면서 마약을 구매하는 일도 손쉬워졌다. 대마초·필로폰·허브 등 각종 마약에 대한 단속 기술이 첨단화되고 있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게 마련이다.

정보의 바다로 불리는 인터넷에서는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를 검색하면 거래가 가능한 각종 정보들이 눈에 띈다. 마약 유통 경로가 온라인으로 깊숙이 파고들면서 계속해서 단속 사각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약 판매자와 구매자들 사이에 ‘007 작전’을 능가하는 접선이 이뤄지고, 순식간에 치고 빠지면서 거래가 성사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런 ‘007 유통 경로’를 통해 각종 신종 마약들이 국내로 물밀 듯이 밀려들고 있다. 마약도 진화를 거듭해 이제는 귀신도 놀랄 기발한 발상이 등장했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신의 눈물(Tears of God)’이라 불리는 신종 마약을 밀반입해 유통한 일당을 적발했다. ‘신의 눈물’은 XLR-11(흰색 가루 형태의 마약) 성분의 합성 대마 계열이다. 2014년 마약류로 지정됐으나, 액체 성분으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멕시코 등지에서도 가루 형태로 물에 녹여 섭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에서 대량의 신종 마약 원료를 밀반입해 제조한 후 인터넷과 SNS를 통해 팔아온 피의자들이 검거됐다. 2015년 2월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이들에게서 압수한 마약 완제품과 주사기 등이 공개됐다. ⓒ 연합뉴스

사용 방법도 간단해 담배 끝에 몇 방울 떨어뜨려 피우면 대마초보다 5~6배 강한 환각 효과가 15분가량 지속된다. 대마초 같은 특유의 냄새가 없다 보니 구매자들은 나이트클럽이나 회사 등을 비롯해 길거리에서도 마약을 했다. 이들 대다수는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20대의 남성이었다.

이 아무개씨(40·학원강사) 등 일당 8명은 미국에서 제조한 ‘신의 눈물’ 4530mL(시가 4억원 상당)를 밀반입했는데, 이는 한 번에 2만3000명이 흡입할 수 있는 양이다. 이들은 안약 통에 나눠 담아 한 통(4mL 기준)에 25만~35만원씩 받고 퀵서비스로 판매했다. 온라인에서는 인터넷 게시판을 이용해 ‘TG신약 팝니다’라는 홍보 게시물을 올렸고, 오프라인에서는 외국인이나 유학생이 자주 찾는 서울 강남·홍대 등의 나이트클럽을 찾아다니며 구매자를 찾았다. 다단계식으로 전국 판매망을 구축하며 ‘판매 설명회’까지 개최했다. 1개를 판매하면 10만원가량을 수수료로 제공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에서 국제우편을 통해 인천세관에 찻잎이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허브차 잎이었지만 실제로는 찻잎에 환각 성분 등을 넣은 마약이었다. 여기서는 대마보다 70배 강한 또 다른 환각성 마약 성분이 검출되기도 했다. 찻잎을 환각제에 절였다 건조시키는 방식으로 겉모습은 물론 화학 구조까지 변형해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에는 중국에서 국제우편으로 인천세관에 들어온 잡지책 안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정체불명의 흰색 가루가 발견되기도 했다. 세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화학 구조로 만든 마약이다. 이 물질 또한 정신 환각 작용이 대마보다 70배 강한 것이었다. 이 가루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인천세관이 성분 분석을 실시했는데, 가루는 세계 최초로 발견된 마약 성분이었다.

관세청 마약 담당 조사관들이 밀수가 급증하고 있는 합성 대마류 마약의 포장지와 내용물을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급 루트도 계속 진화

올해 초 관세청이 발표한 ‘2015년 마약류 밀수 단속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류는 모두 325건, 중량은 91.6kg, 시가 2140억원어치였다. 1년 전과 비교해보면 금액은 42%, 중량은 28%나 늘어났다. 향정신성 물질인 필로폰 밀반입의 경우 11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마약 밀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 유통되는 마약을 국내에서 직접 제조한 경우는 드물다. 외국에서 제조한 마약을 국내로 밀반입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중국·홍콩 등지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향하는 중계 밀수 루트가 주를 이뤘지만, 지난해에는 아프리카→아랍에미리트(UAE)·독일→한국→미국 루트로 이어지는 신종 마약 카트(Khat) 밀수, 캐나다→한국→대만 루트의 대마초 밀수가 처음으로 적발됐다. 중국 남부나 홍콩 등 주요 필로폰 공급지 외에 캄보디아에서 밀반입된 필로폰이 다수 적발되기도 했다. 신종 마약뿐 아니라, 마약 루트까지 확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약을 직접 국내로 밀반입하는 루트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여행자를 통해 들여오는 수법이다. 지난해 1월 홍콩에서 인천공항에 입국한 여행객 A씨는 복부에 비닐로 포장된 마약을 숨겨 들여오다가 관세 당국에 적발됐다. 여행자들은 여행가방이나 여행물품뿐 아니라 몸속 등에 마약을 숨기는데, 그 방법도 계속 진화 중이다.

둘째, 국제우편으로 들어오는 경우다. 앞서 언급한 ‘신의 눈물’도 손세정제로 위장해 국제우편을 통해 반입했다. 찻잎 마약도 국제우편을 통해 주문한 잡지책 중간에 마약을 숨겼다가 들통났다. 최근 3년 동안 마약류가 국제우편을 통해 인천세관으로 들어온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셋째, 국제택배도 마약 밀반입의 통로로 이용된다. 지난 3월 12억원 상당의 마약류를 중국에서 들여와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들의 반입 경로는 국제택배였다. 이들은 SNS 등을 통해 GHB(일명 물뽕), 비아그라, 여성 흥분제 등을 주문한 후 중국에서 1리터 단위로 담아 국제택배로 들여왔다. 지난해 6월 경기 부천 원미경찰서가 검거한 마약사범은 8억원 상당의 마약을 미국·중국·홍콩 등지에서 화장품이나 영양제로 위장해 국제특송을 통해 들여왔다. 지난해의 경우 개인 특송화물로 위장해 적발된 소량 밀수도 1년 전보다 81% 늘어났다. 이 밖에 수입 화물과 선원을 통한 마약 밀수도 2014년 260g에서 지난해 52kg으로 200배나 급증했다.

국내로 들여온 마약은 SNS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퀵서비스를 통해 전달된다. 이런 방식의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다 보니 10~20대 젊은 층의 마약사범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추세다. 마약을 투약한 사회 계층도 다양해지고 있다. 경찰에 적발된 마약 투약자들의 면면을 보면 대학생·회사원·주부뿐 아니라 의사·교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마약의 국내 유입이 급증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은 국제 마약 조직이 한국을 집중 공략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통 여건이 좋은 게 원인이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SNS 발달로 개인 간 마약 밀매가 용이해지면서 마약 유입과 유통이 그만큼 쉬워진 데도 원인이 있다. 서울 용산 이태원지구대 뒤쪽 나이지리아 거리에는 국제 마약 조직이 암약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프리카 지역의 값싼 대마초를 대량으로 밀반입하거나 한국인 여성을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하고 있다. 국정원 등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곳이다.

관세청은 각종 마약의 국내 밀반입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마약 위험관리 포털을 새로 구축해 마약 우범 정보를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활용하는 한편, 마약류 불법 거래 사이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국내 밀반입을 관세 국경에서 원천 차단한다는 것이다. 단속의 실효성은 미지수지만 마약 유통을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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