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아서 안 돼” 취업 사각지대에 남겨진 30대 구직자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7.14 11:40
  • 호수 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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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한 고용차별금지법…취업시장 나이 제한 여전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져요. 제게 남들과 다른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이 때문인 것 같은데, 제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서울 강북구에 사는 박상훈씨(남·31)는 크게 한숨을 내쉰 뒤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의 일상은 늘 똑같다. 일어나면 커피전문점에 들러 노트북을 켠다. 취업포털 사이트에 들러 채용공고를 확인한 뒤 이력서 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무려 6개 회사에 지원했지만 서류전형에서 모두 탈락했다. 눈높이를 낮춰 비전이 있다고 여겨지는 중소기업까지 지원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박씨는 소위 ‘스펙’ 면에서 다른 구직자들에게 밀리지는 않는다. 중국 내 10위권 안에 드는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다. 원어민 수준에 가까운 중국어 실력을 지녔다. 영어와 일본어 능력도 현지인과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다. 업무 경험도 많다. 중소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조그마한 스타트업 기업까지 차려 운영해봤다.


하지만 박씨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의 말대로 남들보다 취업 준비를 늦게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턴으로 들어간 소규모 무역업체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2년간 묶여 있었다. 회사에서 인정받으면서 자리를 잡았다가 사업 아이템을 통해 소규모 스타트업 기업까지 차렸다. 회사는 일정 규모의 수익을 올리며 성장했지만 대기업 계열사가 유사 사업에 뛰어들면서 어려워졌다. 결국 30살이 된 지난해부터 취업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자신의 스펙과 업무 경험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다고 여겼다. 하지만 자신감은 깨진 지 오래다. 박씨는 여전히 이력서를 쓰며 하루를 보낸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오히려 30대 구직자들에 대한 역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다. 때문에 이 법에 대한 개정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조차 “30대는 안 돼”


취업 과정에서 연령 제한을 둘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지난 2009년부터 시행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용차별금지법)’에 따르면, 모집·채용 과정에서 연령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할 경우 직권으로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제 국내 대형 유통업체인 A기업의 2015년 상·하반기 대졸신입 공채전형 최종합격자 48명 가운데 30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취재 결과, A기업은 내부적으로 30세 이상 채용 규모를 인위적으로 조정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A기업의 2016년 상반기 대졸신입 공개채용 관련 내부 자료에 따르면, 30세 이상은 서류전형 과정에서 일괄 배제하도록 했다. 이 회사의 인사팀 관계자는 “과거에 서류전형에서 30대가 붙은 경우도 가끔 있지만 사실상 면접에서 모두 탈락했다”며 “현업 부서에서 30대 신입사원을 기피하면서 생긴 내부 규정”이라고 밝혔다. 채용 관련 사항은 대외비 사안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A기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연령 제한은 사실상 보편화된 현상이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올해 1월 511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절반 이상(51.2%)은 다른 조건이 우수해도 나이를 이유로 탈락시킨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기존 직원들이 불편해한다(48.3%)’거나 ‘나이만큼 연봉 등 눈높이도 높아서(45.8%)’ ‘조직 위계질서가 흔들릴 것 같아서’(35.3%)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생각하는 연령 마지노선은 몇 살일까. 남성의 경우 30.3세, 여성은 28.4세였다. 이들이 생각하는 대졸신입 사원의 적정연령은 남성 28세, 여성 25.7세였다. 511개 중 201개 기업은 적정연령을 넘긴 지원자조차 꺼린다고 응답했다.

 

법으로 금지됐는데도 이 같은 현상이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용차별금지법에 처벌 규정이 제대로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법에서는 연령차별을 당한 사람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구직자 스스로 연령 때문에 불합격했다는 내용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모집·채용 과정 등 인사 관련 사항을 대외비로 관리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를 들어 불합격했다고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너무 크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 같은 이유로 시정명령을 받은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 설사 특정 연령기준을 설정했다는 점이 밝혀지더라도 고용노동부 장관의 시정명령에 따라 제도를 개선하면 된다.


문제는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에서도 적정연령을 넘긴 30대 구직자들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20대는 청년 고용대책, 40~50대는 중·장년 고용대책, 60대 이상은 노인 일자리 대책 등이 세워져 있다. 30대는 고용 대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서울시가 미취업 청년 가운데 주 근무시간 30시간 미만인 청년에게 사회참여활동비 명목으로 매달 50만원씩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청년활동수당이 중앙정부의 반대로 1년 가까이 갈등을 빚어온 끝에 7월4일부터 접수를 시작했다. 서울시는 지원 대상을 ‘서울에서 1년 이상 거주한 만 29세 이하의 구직자’로 한정했다. 오랜 시간 취업이 되지 않은 구직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만 30세 이상 구직자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 대책의 핵심인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오히려 30대 구직자들에 대한 역차별을 가져왔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은 중소기업에 보조금 등 각종 지원 혜택을 제공해 청년 채용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의 적용을 받는 나이는 시행령에 의해 ‘15세 이상 29세 이하’로 제한돼 있다. 때문에 기업들은 정부의 보조금이나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20대 선발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법·제도조차 외면하는 30대 구직자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취업자는 1년 전보다 3만8000명 줄었다. 반면 20대 취업자는 1년 전보다 6만8000명 늘어났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30대의 취업 문제도 청년 실업만큼이나 절실하다는 의미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2014년부터 시행된 청년의무고용할당제의 경우 연령 상한선을 만 34세로 상향 조정했다. 당초 만 29세로 법안이 설계됐지만 2013년 국회 논의 과정에서 30대 구직자에 대한 역차별이 우려된다며 범위를 확대했다. 당시 30대 구직자들의 반발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는 ‘청년’의 연령 범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유엔에서 규정하는 청년(youth)은 15~24세다. 청년고용촉진법 시행령에서 청년의 범위는 만 15~29세다. 청년의무고용할당제의 경우 만 34세로 확대했다. 과거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를 뽑을 당시 자격은 만 25~35세였다. 청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의 조합원 가입 대상은 만 15~39세다. 


30대 구직자들은 직장에 정착하지 못한 채 취업 적정연령을 넘겨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자신들이야말로 취업 시장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약자라고 항변한다. 지난 2013년 대학 졸업 후 4년째 구직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심아무개씨(남·32)는 “20대 구직자들에게는 취업에 실패해도 기회가 열려 있지만 30대들은 사실상 갈 곳이 없다”며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이종구 한국취업진로학회 회장은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채용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는 치명적”이라며 “특정 연령층에만 혜택을 주는 제도는 고용시장 전반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30대 구직자의 문제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취업에 실패한 30대 구직자들은 점차 소규모 창업에 나서고 있다. 취업문을 뚫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의 무덤을 선택하는 셈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올해 3월 1인 자영업자는 1년 전에 비해 1만7000명 늘어 증가 추세를 보였다. 30대를 제외한 다른 연령대 모두 감소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또한 5년 이내 자영업 폐업률이 84.3%에 달한다거나 1년에 86만 명이 사업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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