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엄습한 ‘마천루의 저주’
  • 노경은 기자 (rke@sisabiz.com)
  • 승인 2016.07.25 15:16
  • 호수 139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랜드마크72’로 워크아웃된 경남기업 이어 제2롯데월드·엘시티도 최근 분양 악재 잇달아

초고층 건물이 세계적으로 화제다. 국내에서도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건물들이 갖가지 건축 관련 기록을 쏟아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초고층 건물들이 굴욕의 상징으로 전락하고 있다. 초고층 건물 건설업체들이 상장폐지되거나 경영진 자살, 경영권 분쟁, 검찰수사 등 온갖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탓이다. 분양 실적이 최악인 탓에 분양받은 물건을 손해 보고 다시 내놓는가 하면, 아예 분양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금융비용만 떠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마천루의 저주다. 일찌감치 초고층 건물을 올린 나라와 기업마다 어김없이 위기나 불황에 시달렸다. 그 마천루의 저주가 지금 한국에도 엄습하고 있는 듯하다.

 

 

왼쪽부터 서울 제2롯데월드, 베트남 하노이 경남 랜드마크72


 


롯데 “아마도 분양은 내년으로 넘어갈 것”


앤드루 로런스 도이체방크 분석가는 지난 100년간의 사례를 분석해 1999년 가설 ‘마천루의 저주’를 내놨다. 과거 사례를 보면, 초고층 빌딩 건축은 경제위기를 예고했다는 것이다. 초고층 건물은 돈줄이 풀리는 통화정책 완화기에 착공해 경기 과열로 인한 거품이 꺼지면서 결국 불황을 맞는다는 논리다. 통설이긴 하나 마천루의 저주를 확인할 만한 사례는 많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국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건설기업 가운데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을 지은 뒤 회사가 파국을 맞은 사례가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고(故) 성완종 전 회장이 이끌었던 경남기업이 꼽힌다. 이 회사는 해외건설업 면허 1호를 보유한 곳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베트남 하노이에 최고층이자 세계 최대 총면적(60만9673㎡)을 자랑하는 빌딩 ‘랜드마크72’(72층·350m)를 세웠다. 당시 사업비로만 1조2000억원을 투입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분양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회사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결국 65년 전통의 경남기업은 지난해 4월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됐고, 자원개발 비리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뒤를 이어 롯데도 마천루의 저주에 시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난 2010년 10월, 롯데그룹이 국내 최고 123층(555m) 제2롯데월드타워를 착공한 이후 크고 작은 인재(人災)가 발생했다. 서울 송파구 일대에서는 수년간 싱크홀이 발견되면서 해당 건물의 미흡한 건축공법 탓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기에 건물 안전성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부터는 신동빈·신동주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촉발됐다. 얼마 전부터는 롯데그룹 전체를 대상으로 한 고강도 검찰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공사는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 타워크레인도 사라지면서 타워가 모양새를 갖추고 외형을 드러내고 있다. 스카이워크 돌출 부분의 마감도 하나둘 진행되고 첨탑부 마감도 거의 완료돼가고 있다. 문제는 분양이다. 김치현 롯데건설 사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올해 중 제2롯데월드 내 프라임 오피스와 레지던스 오피스텔을 분양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들이 잇따르면서 분양 움직임이 전면 중단됐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아직 파악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며 “아마도 분양은 내년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국내 빌딩이나 주거물은 착공 전 분양하는 게 관례다. 자칫 제2롯데월드 타워는 준공하고도 분양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내년 부동산시장을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최고 호황기를 기점으로 차츰 꺾여 공급물량이 쏟아지는 2018년에는 바닥이 우려된다. 이 탓에 제2롯데월드 같은 초고가 분양 매물이 팔려나갈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서울의 한 수익형빌딩 중개업체 관계자는 “빌딩이나 상가도 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경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호황이냐 불황이냐에 따라 분양실적이 좌우된다. 롯데건설이 경남기업의 ‘랜드마크72’처럼 미분양 사태로 회사가 휘청대지 않도록 분양시기를 정하는 것도 분양 성패의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더샵 조감도


 

해운대 ‘엘시티’, 마이너스 피 매물만 쌓여


부산 해운대의 ‘엘시티 더샵’ 역시 마천루의 굴욕을 톡톡히 겪고 있다. 이 건물은 지난해 국내 최고층(85층)이자, 평당 최고가 아파트 분양으로 명성을 드높였다. 지난해 하반기 분양 당시 청약 발표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수천만원씩 웃돈이 붙어 거래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평가받았다. 지금은 인기가 사라져 웃돈을 받지 않고 분양권만 팔겠다고 내놓은 매물만도 수십 건에 달하지만 거래 문의는 뚝 끊겼다. 오히려 ‘마이너스 피(minus fee·단타를 노린 청약자가 매물을 내놓았지만 인기가 없어 거래가 되지 않자, 자신이 매수자에게 오히려 돈을 얹어주는 형태의 거래)’ 매물만 쌓여가고 있다.


분위기를 들어봐도 지난해 이곳의 인기는 거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엘시티 사업장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엘시티 오피스텔을 분양하고 있다. 지난해 분양한 엘시티 아파트 전매권이 잘 거래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발길을 돌리는 투자자나 실수요자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국토부의 올 상반기 해운대 엘시티 더샵 거래 현황 자료를 보면, 1월부터 7월 현재까지 총 122건 무더기 전매 사태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43%에 해당하는 53건은 웃돈 없이 거래됐다. 심지어 지난 2월과 3월에는 청약 당첨자가 각각 자신의 돈 2000만원과 3000만원을 매수자에게 얹어주고 엘시티 분양권 족쇄를 털어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