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28일 김영란법 시행 첫날 가상 시나리오
  • 류여해 수원대학교 겸임교수・법률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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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16일 제정안이 발표된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3월27일 공포됐다. 5월9일 시행령이 발표되기까지 3년 9개월이나 걸렸던 김영란법이 드디어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이 글은 김영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9월28일부터 발생하게 될 우리 사회 풍경을 미리 들여다본 것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첫날인 9월28일 벌어질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다. 

 

김영란법은 음식물은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으로 상한선을 규정해놓고 있다. 해당 금액 ‘이하’인지 ‘미만’인지에 대한 논의도 계속 됐다. 그런데 금액의 상한선은 ‘이하’로 해석되는 것이기 때문에  5만원 짜리 상품권은 가능한 범위로 들어간다.

 

자, 이제 ‘음식물 3만원’이라는 규정이 잘 지켜지는지 식당으로 한번 가보자. 3만원 즉 일인당 3만원을 어떻게 맞춰 접대하고 있을까. 

 

식당에 들어 선 순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 식당에는 ‘김영란법 메뉴’가 있습니다.” 

 

식당의 메뉴가 바뀐 것이다.  ‘김영란법 메뉴’라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식사의 메뉴가 3만원에 맞춰져 구성돼 있다. 다른 식당도 마찬가지다. 사방에 김영란법에 얽매인 메뉴 구성들이다. 3만원에 신경 쓰다 보니 오히려 전체적으로 밥값이 더 비싸진 느낌도 든다.

 

 


 

 

‘김영란법 메뉴’ 등장

 

고민할 것도 없이 그냥 고르면 되니 구매자 입장에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식당의 배려가 돋보인다. 

 

식당이 멤버십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도 늘어났다. 가입비를 낸 뒤 식사를 할인받는 제도가 도입이 된 것이다. 예를 들면 가입비 3000만원을 내면 원래 10만원 짜리 또는 20만원 짜리 메뉴를 3만원에 먹을 수 있다.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하다. 

 

역시 아이디어 천국이다. 또 다른 식당에선 메뉴와 함께 술을 시킬 때 서비스 차원에서 계산기로 초과되는 범위를 미리 알려주고 있다. 영수증을 두 개로 나눠서 끊어주기도 한다.

 

신종아르바이트도 나왔다. 식당에 메뉴를 주문한 사람 수에 이름만 빌려주는 아르바이트가 등장했다. ‘머리수’만 대여해주는 식이다. 또 다른 식당에선 식당에 들어간 손님을 모시고 온 운전기사들까지 인원수에 포함시켜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그러니 정작 식사를 한 사람은 5명인데도 기사까지 10명분 즉 30만원까지 주문해도 되는 것이다.

 

 

‘이름’ 빌려주는 신종 아르바이트 성행

 

백화점으로 가봤다. 여기는 더 놀랍다. 모든 선물이 5만원에 맞춰 구성돼 있다. 특이한 것은 선물을 배달시킬 때 ‘명의 대여자’가 있다. 백화점에는 은밀하게 아르바이트생들이 대기하고 있다. 백화점 직원은 대수롭지 않게 “걱정하지 말고 한사람에게 여러 사람의 명의로 물건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무엇이 필요하신가요?”라고 말을 한다. 역시 친절하다. 주문하려고 하는 것은 차(茶) 세트인데, 예전 같으면 다기(茶器)와 차를 한 박스에 포장해 두고 판매를 하곤 했는데 이젠 다기 5만원, 차 5만원 따로 구성돼서 다른 사람 명의로 보낼 수 있도록 선물이 구성돼 있다.

 

더 기발한 것은 선물을 받을 아파트의 경비아저씨 명의로 선물을 받도록 해주는 시스템도 등장한 것이다. 고급아파트에서는 선물을 받아주는 아르바이트생까지 고용하고 있다. 전적으로 입주자를 ‘배려’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서비스다. 뇌물을 근절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편법이 다양하게 생겨났다. 성매매를 근절하려 했더니 유사 성매매가 극성을 부린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 여기서도 발생한 것이다.

 

경조사비는 어떨까. 경조사비는 10만원으로 규정됐다. 그러자 ‘뜻밖의’ 고민이 생겨났다. 원래 5만원 정도 가볍게 축의금을 내곤했는데 김영란법에서 10만원을 규정하고 나니 오히려 최저기준이 10만원으로 상향조정되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 정도도 내지 않느냐’는 오해를 받느니 그냥 10만원을 내자는 주의로 다들 분위기가 형성돼 버린 것이다. 

 

결혼시즌에 은근 부담도 된다. ‘10만원을 한 달에 3번 정도 내면 그것도 큰 금액인데…’라는 고민마저 생겼다. 

 

부하직원의 위로・격려・포상 등의 목적이라면 1인당 3만원에 한정짓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을 다들 기가 막히게 이용하는 모습도 보인다. 회식의 이유가 온통 ‘포상’이다. 

 

회식 자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직원 회식이 아니다. 직원은 한명이고 나머지는 접대 분위기다. 거래처 상무님도 보이고, 뭔가 석연찮지만 회식이라고 주장하는데 뭐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우기면서 접대하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냥 믿어주는 척하고 지나간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엔 국회의원이 빠져있다, 아니다 논란이 많았는데 실상은 빠진 것도 아니고 안 빠진 것도 아니다. 즉, 공익목적의 민원전달만 예외로 인정되며 나머지 조항은 그대로 적용된다는 조문 때문이다. 민원전달에는 더 큰 액수의 뇌물(?) 또는 접대를 받아도 된다는 것인데, 결국은 이게 더 문제 아닐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국회의원 적용 여부엔 허점 많아

 

직무와 관련이 없는 사람에게 금품을 받을 때에는 이 법의 한도를 지킬 필요가 없다. 즉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직무와 관련 없는 사람을 대신 시켜서 전달하면 된다는 것이다.

 

공직자는 청렴결백해야 한다. 공직자가 뇌물을 주고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농축산 산업은 이 법의 시행으로 말미암아 산업 자체가 망가질까, 식당들은 장사가 안 될까, 울상을 지었다. ‘여의도 앞의 주유소는 기름 값이 제일 비싸다’는 잘 알려진 우스갯소리는 결국 남의 돈으로 주유를 하니 비싸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여의도 식당이 비싼 이유는 다들 자기 돈으로 안 사먹기 때문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었다. 

 

명절이면 선물상자 2만원대 이하도 충분히 많이 나와 있는데 도대체 누가 사기에 5만원이면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지. 김영란법이 시행된 9월28일 오늘도 경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다들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밥을 먹으면서도 속으로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맘껏 먹지 못하고 3만원이라는 숫자에 계산을 하느라 바쁘게 머릿속이 복잡할 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을 이야기 하는데 낯설어 하고 있다. 안 받고 안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과한 금액의 식사도 도가 지나친 것도 당연한 소리다. 골프계가 말이 많더니 입구에서 몰래 돈 봉투를 쥐어 주는 편법이 시작됐다. 가명으로 골프장에 예약한 뒤에 골프를 치고 가버리면 된다.

 

김영란법의 시행이 여러 가지 이유로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이런 부정과 부패에 의해 경제가 유지가 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경제가 아니다. 오히려 부패가 없어지고 사회가 투명해지고 노력만큼 얻는다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현금이 오갈 때는 정말 제대로 밝히기도 힘들다. 아름다운 법이 탄생될 때 박수를 쳤는데 왜 이제 와서 이 법이 이렇게 힘든 것으로 둔갑했는지 모르겠다.

 

오늘(9월28일) 하루 김영란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따라 다녀보니, 역시 갖은 풍선효과와 편법이 다양하게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된 것 같다. 

 

이 법을 다시 폐지하는 것이 옳을까? 이 법 하나로 경제가 무너진다면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가 뇌물에 의지해 성장한 나라란 말인가? 위헌이라고 탄생된 법을 바로 사장시켜버리는 것이 옳은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법은 도덕으로 도저히 통제가 안 될 경우를 상정해 최소한의 도덕을 규정해둔 것이다. 이것만은 꼭 지키라고. 

 

김영란법의 탄생은 한편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가 ‘뇌물공화국’이라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청렴한 공무원은 그 나라를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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