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지능에 끝없이 질문 던지는 MIT
  •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 이철현 시사저널e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24 10:40
  • 호수 14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지 르포] 인공지능 연구의 메카 美 MIT…CBMM·CSAIL·미디어랩 삼각편대, 인간 지능 신비 푼다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는 너드(Nerd·세상 물정 모르는 천재) 소굴이죠.” 장수연 MIT 미디어랩 연구원이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편이 개봉되던 지난해 12월에 일어난 소동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스타워즈 신작 개봉을 앞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대학본부 격인 맥크로닌 빌딩 지붕 돔 위에 스타워즈 로봇이 올라와 앉아 있었다. MIT 학생들은 부지불식간에 비밀 회합을 갖고 이런 엉뚱한 소란을 자주 꾸민다.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을 관습에 따르지 않고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눈에 띈다. 장 연구원은 “이런 자유분방함이 창의적 사고로 이어지고 그게 MIT 학풍을 만드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천재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진, 넘치는 자금 지원, 학과 간 공동연구 풍토와 결합하면서 MIT를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연구센터로 만들고 있다.

 

 

“신경과학·인지과학·컴퓨터공학 협력·경쟁”

 

기자는 8월14일부터 19일까지 MIT 산하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두뇌·마음·기계 연구센터(CBMM), 미디어연구소(Media Lab)를 찾았다. 인공지능과 로봇 분야 연구실을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고, 교수와 연구원 등 5명을 인터뷰했다. MIT는 CSAIL을 중심으로 CBMM과 미디어연구소가 삼각편대를 이뤄 인공지능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이 세 곳이 자리한 건물도 도보로 2~3분 거리 안에 몰려 있다. CSAIL이 자리한 레이 마리아 스타터 건물은 교내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CBMM이 들어 있는 건물과 마주 보고 있다. 스타터 건물에서 코흐 생물학 건물 너머 미디어연구소가 들어 있는 와이즈너 건물이 자리한다. 

 

세 연구소는 협력·경쟁하면서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물을 창출하고 있다. MIT 미디어연구소 출신인 스탠 스클라로프 보스턴대 컴퓨터과학 교수는 “MIT는 특히 인공지능 연구 부문에서 신경과학·인지과학·컴퓨터공학이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경쟁하는 학풍을 갖고 있다”며 “이 분위기가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연구기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마다 전문 영역과 특성이 뚜렷하다. CBMM은 신경망 등 인간 지능의 신비를 연구해 기계에 탑재할 방법을 찾는다. 인지과학·생물학까지 아우르며 인공지능 연구에 필요한 기본적 연구 성과물을 축적한다. 이 연구센터는 교수·연구원 등 126명을 아우른다. 교수나 연구원들이 MIT 소속만 있는 건 아니다. 하버드·스탠퍼드·캘리포니아 대학교 등 미국 내 여러 대학 교수와 연구원이 인간 지능의 신비를 풀기 위해 협업한다. 

 

창문 너머로 드러난 MIT 미디어연구소 내부

창문 너머로 드러난 MIT 미디어연구소 내부

 

MIT는 이 기초연구의 성과물을 CSAIL로 넘긴다. 여기서 MIT 연구 체제의 강점이 드러난다. CBMM 교수가 CSAIL 교수를 겸하게 한다. 기초연구 성과물을 바로 컴퓨터과학 영역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토마소 포지오 CBMM 교수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75면 상자기사 참조). 포지오 교수는 CSAIL 교수를 겸하고 있다. 포지오 교수는 신경망 연구와 인공지능 응용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힌다. CSAIL은 이 기초연구를 활용해 알고리즘을 만들어낸다. 시각·언어·상식 등 인간 지능의 다양한 영역을 세부적으로 구분해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구현한다. 미디어연구소는 기업 후원을 받고 상업화할 수 있는 응용기술을 개발한다. 

 

삼각편대의 중심은 CSAIL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구 인원·자원 등이 다른 연구소를 압도한다. 1000명이 넘는 교수와 연구원·학생이 50개 이상의 연구그룹으로 나뉘어 인공지능·시스템·이론 등 3개 영역에서 100건이 넘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인공지능 연구그룹은 생물체의 지능을 연구해 그 결과를 토대로 인공지능을 개발한다. 추론·지각·행동 등 인공지능 모델과 기제를 개발해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다. 

 

CSAIL 교수진은 단연 최고다. 전문 연구회 회원 90명, 맥아더재단 연구원 7명, 튜링상 수상자 7명 등 컴퓨터과학 연구원에게 수여하는 갖가지 지위와 상을 받았다. 인공지능 50명, 시스템 38명, 이론 24명 등 총 교수 115명이 연구를 총괄한다. 그 밑에서 온갖 학위 과정을 밟는 연구원과 학생 1102명이 인공지능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인재들이다. 안드레이 바부 CSAIL 연구원은 박사 후 과정을 밟고 있다. 이 캐나다인 유학생은 이제 갓 서른이지만 인공지능 분야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바부 연구원은 CBMM에서도 연구원 신분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보리스 카츠 MIT 인포랩그룹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카츠 교수는 IBM의 왓슨과 애플의 시리 개발에 기여한 연구자다. 바부 연구원은 특히 머신러닝과 머신비전, 언어 습득을 연구한다. 바부 연구원은 “인공지능 연구에 필요한 신경망 연구와 컴퓨터공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업에 가상현실 게임 투자를 권하고 싶다”

[인터뷰] 인공지능 연구의 ‘살아 있는 전설’ 토마소 포지오 MIT 교수 

 

토마소 포지오(오른쪽 사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교수는 인공지능 연구 분야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MIT 산하 ‘두뇌·마음·기계 연구센터(CBMM)’의 센터장이자 전산·통계학습 연구소(IIT-MIT)와 두뇌과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생물학과 사이버네틱스를 전공한 뒤 1981년 MIT에 합류했다. 그는 인간 행위를 흉내 내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인간 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지능을 학습능력이라고 정의한다. 학습의 본질은 개별 사례들을 보고 일반화하는 능력이라고 판단한다. 신생아는 태어나 별로 본 것이 없어도 자기가 본 것을 차·말 등 특정 범주로 구분하는 능력을 재빨리 습득한다. 포지오 교수는 이런 신경망 기제를 연구해 인공지능을 설계한다. 기자는 8월17일 MIT CBMM 연구실에서 포지오 교수를 만났다. 

 

 

인공지능 연구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인간 지능에 대한 이해다. 어렸을 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매혹됐다. 시간과 공간, 물리학, 상대성이론 등이 흥미로웠다. 인간 정신과 지능도 이에 못지않게 흥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는 어떻게 더 많은 문제를 더 쉽게 풀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인간 지능의 신비를 풀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더 잘 설계할 수 있다고 본다.

 

연구 목표가 이뤄지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겠는가.


인공지능이 (이미) 일자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앞으로도) 증기기관과 기계화가 그랬듯이 (인공지능이) 많은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다. 비행기 조종사, 택시 운전사 등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의사나 투자 자문역도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듯하다. 반면 과학자, 엔지니어, 컴퓨터 설계자는 여전히 살아남는다. 배관공, 정원사처럼 작업 현장에서 온갖 변수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직업군은 줄지 않을 듯하다. 그 중간에 있는 직종은 상당수 없어질 듯하다. 이 탓에 정치·사회·경제적 문제가 조만간 대두된다. 10년 안에 기계가 많은 일자리를 앗아간다. 그럼에도 사회는 더 부유해진다. 사람은 일할 필요가 없어진다. 소득은 늘지만 할 일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이에 정부가 일률적으로 기본 소득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산능력이나 처리용량 면에서는 기계가 인간 두뇌보다 낫다. 다만 우리는 기계의 연산능력을 지능으로 바꿀 알고리즘을 개발하지 못했다. 이 알고리즘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모르겠다. 지난 5년간 머신러닝, 딥러닝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우리는 아이에게 세상 물건의 이미지를 일일이 보여주면서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이미지를 보고 학습하지만 금방 구분하고 분류할 수 있다. 이 신비를 풀어야 한다. 신경과학이 지금까지 성과를 냈다. 다음 단계 발전도 신경과학 연구에서 나올 거다.

 

인공지능 투자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인 듯하다. 기업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기초 투자는 아니다. 미국 정부는 국가 펀드를 운영해 신경과학·인지과학·머신러닝 등 기초과학에 투자한다. 기업이 그것을 따라 할 순 없다. 딥마인드가 가장 좋은 벤치마킹 사례일 듯하다. 가상현실 게임에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다. 물리적 실체가 없어 제약이 없다. 자율주행차는 99.99% 정확해선 안 된다. 99.9999% 정확해야 한다. 자율주행시스템도 주행통제시스템에서 이번에 테슬라 운전자가 사망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물리적 실체를 갖고 있는 영역은 인공지능을 도입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인내심이 부족한 기업이 섣불리 투자할 분야가 아니다.

MIT 컴퓨터과학 인공지능연구소(CSAIL) 내부

첨단기술 분야의 이단아가 주류 자리 차지 

 

미디어연구소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팀은 개인로봇연구그룹이다. 이 그룹을 이끄는 이는 신시아 브리질 MIT 미디어연구소 교수다. 그는 소셜로봇 연구 분야에선 ‘살아 있는 전설’이다. 소셜로봇을 연구하려면 브리질 교수의 저서부터 훑어야 할 정도다. 그는 소셜로봇 상업화에 관심이 많아 소셜로봇 지보를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스타트업까지 창업했다. 기자의 방문 당일에도 그는 지보 사업차 출장 중이었다. 브리질 교수는 개인로봇연구그룹이 수행하는 17개 연구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일부는 매조지했지만 상당수는 진행 중이다. 

 

개인로봇연구그룹에는 14명이 연구하고 있다. 브리질 교수가 좌장이고, 박사 후 과정 1명(박혜원 박사), 박사 과정 7명, 석사 과정 5명으로 구성돼 있다. 박혜원 연구원은 어린이 교육용 로봇, 로봇 사고방식과 호기심 등 2개 이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77면 상자기사 참조). 박 연구원은 “MIT는 학제 간 협업을 중시한다. 개인로봇그룹도 심리학·교육학 등 전문가들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소셜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MIT는 인공지능 영역에서 학제 간 경계를 허물고 공동·협업 연구를 통해 가장 창의적인 연구에 몰두해 왔다. 지금도 첨단기술 연구 분야에서 이단아로 남아 아직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고 있다. 이단아가 주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토마소 포지오 교수는 이에 대해 “인간 지능을 어떻게 정의하겠는가? 연산이라면 컴퓨터가 더 잘하지 않나. 인간 지능은 정의하기엔 애매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이에 신경과학·인지과학·컴퓨터공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협업이 필수다. 인간 지능을 이해할 수 있어야 인공지능 발전도 가능하다. 기계는 결국 인간 사고를 본떠야 똑똑해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MIT는 인공지능 연구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조건 맞는다면 한국 기업과 협업 가능”

[인터뷰] 감성 로봇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박혜원 MIT 미디어연구소 연구원 

 

박혜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연구소 연구원은 앳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연구실을 찾은 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미디어연구소 개인로봇연구그룹 소속으로 어린이와 소통하면서 학습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어린이가 로봇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로봇은 아이로부터 사회적 상호작용을, 아이는 로봇으로부터 언어와 호기심, 그리고 사고방식 등을 배우게 하는 것이 연구 목표다. 박 연구원은 어린이가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를 하면서 겪는 시행착오를 보면서, 게임하는 법을 배우는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박 연구원은 2006년 포스텍 전기전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조지아텍에서 전기전자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MIT 미디어연구소에 합류한 것은 2015년이다.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소셜로봇의 상호작용 연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셜로봇 연구 분야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MIT 미디어연구소에 합류하게 됐다. 그는 신시아 브리질 MIT 교수 지도 아래 인간과 정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감성 로봇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8월15일 MIT 미디어연구소 4층 개인로봇연구그룹 내 연구실에서 박 연구원을 만났다.

 

미디어연구소 개인로봇연구그룹이 개발한 영화에도 출연한 레오나르도(왼쪽)와 박혜원 MIT 미디어연구소 연구원

소셜로봇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 인간 삶 속에 들어와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사회적 자극에 반응하는 로봇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다. 이 로봇은 사회적 요구나 양식에 맞는 행위 양식을 학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로봇이 물건을 집는 단순한 행동을 하더라도 앞에 있는 사람에게 물건을 집겠다는 신호를 자연스럽게 보내, 사람이 놀라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행동 양식 등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싶다.

 

 

아이의 초기 언어 학습과 사회성 습득에 로봇이 인간 교사를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가.

 

피어 모델링(peer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는데, 아이가 로봇을 친구로 여기며 상호작용하는 모델을 통해 언어능력을 학습하고 호기심·마인드셋(마음가짐)을 갖출 수 있다. 로봇이 인간 교사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아이와 로봇 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문장 구조가 정확하지 않고 스토리텔링이 떨어지다 보니 로봇이 어린이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에 더 자연어에 가까운 대화를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클라우드 소싱 방식으로 로봇을 훈련시키고 있다. 로봇 언어인식 행위를 클라우드에 올려 일반인들이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방식이다. 로봇은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에 기초해 학습 모델을 정교하게 만든다. 4~6살 어린이와 함께 하는 작업이다 보니 아동심리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있다.

 

 

만약 국내 대기업이 스타트업 창업을 제안하면 받아들이겠나.

 

투자 조건이 문제다. 해당 기업이 연구·개발을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다면 좋다. 소셜로봇 분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직 초창기다. 기초 연구에만 최소 3년이 걸린다. 지금 당장 플랫폼은 개발할 수 있다. 그 플랫폼에 인공지능을 심는 일이 관건이다. 또 고객 요구나 특성에 맞게 집어 넣어야 할 사양을 선택하고 연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