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감옥에 갇힌 한국인 여성의 절규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30 14:41
  • 호수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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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사업가, 한인마피아로 몰려 8개월째 옥살이

지난 2013년 12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개봉돼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평범한 주부였던 장아무개씨는 남편 후배의 부탁으로 수리남에서 금강원석을 받아 프랑스까지 운반하기로 하고 파리 오를리공항에 도착했다. 

 

장씨는 공항 세관원에게 제지를 당했고, 가방에 있는 소지품에서 시가 30억원에 달하는 코카인이 발견됐다. 남편 후배가 운반을 부탁한 것은 금강원석이 아니라 마약이었던 것이다. 장씨는 국제범죄조직의 마약운반책으로 검거돼 재판 없이 프랑스령(領) 외딴섬에 있는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 후 2년 동안 악몽 같은 수감생활을 했고, 2006년 11월에야 겨우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북아메리카에 위치한 멕시코에서 제2의 ‘집으로 가는 길’이 재연되고 있다. 멕시코 산타마르타 아카티틀라 교도소에는 한 한인 여성이 8개월째 수감돼 있다. 이름은 양현정(38). 얼마 전에는 그의 자필 옥중서신인 ‘누군가에게 보내는 글’이 외부에 공개되기도 했다. 

 

양씨는 여기서 “인신매매와 성매매 알선이라는 멕시코에선 살인보다 더 무서운 죄목으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며 자신의 진짜 직업은 ‘애견 옷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양씨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이 나라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제가, 총으로 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스러운 3시간을 지내고 강제로 차에 실려 갔고, 그곳에서 72시간 동안 수갑이 채워진 채 물·음식, 화장실도 못 가게 하며 성희롱까지 당하고 영문도 모른 채 교도소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양씨는 자신은 8개월째 악몽 속에 살고 있다며 주멕시코 대사관의 경찰영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런 억울한 저의 이야기와 현재 소송 내용, 뭐가 진실인지 알고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한국 영사마저도 저의 편이 아닌 엉터리 거짓투성이 멕시코 검찰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인 여성 양현정씨가 강제 성매매와 감금 혐의로 멕시코 교도소에 8개월째 수감돼 있다. 양씨는 억울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룸노래방 회계장부 정리하다 연행

 

양씨는 왜 멕시코 사법 당국에 체포돼 교도소에 수감된 것일까. 일단 사건의 발단이 된 8개월 전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에서 애견사업을 하던 양현정씨는 지난해 11월22일 결혼을 앞둔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멕시코에 입국했다. 이곳에서 예정된 개인 일정을 소화한 양씨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동생 남자친구의 부탁을 받았다. 

 

멕시코시티 후아레스구의 한인 룸노래방인 W의 회계장부를 엑셀로 정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올해 1월16일 새벽 양씨가 장부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얼굴에 복면을 쓰고 기관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멕시코 경찰 50여 명이 들이닥쳤다. 이곳에서 암암리에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은 것이다. 

 

당시 가게 안에는 양씨 외에 한국인 여종업원 5명과 손님인 한인 남성 2명, 그리고 멕시코인 3명 등 총 11명이 있었다. 경찰은 이들을 모두 검찰청으로 연행했다. 이 중 여성 종업원들과 한인 남성 손님들은 조사 후 풀려났지만, 양씨와 현지인 남성 관리자는 구속됐다. 현행 멕시코 성매매관리법은 성매매 관련 매수자와 매매자는 처벌하지 않고 성매매를 지시한 자만 처벌하도록 돼 있다. 며칠 후 멕시코 검찰은 “인신매매 희생자 한국 국적의 여성 5인을 구출했다”는 수사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모든 범법행위를 주도한 주범으로 양씨가 지목됐다. 양씨는 강제 성매매와 감금 혐의로 구속돼 산타마르타 아카티틀라에 수감됐다. ‘엑시시오르’ 등 현지 유력 언론들은 검찰이 성착취 여성들을 구출했다며 대서특필됐다. 양씨와 멕시코인 관리자의 눈만 가린 사진을 내보내기도 했다. 양씨는 하루아침에 이국땅에서 한인마피아의 거물급 조직원으로 둔갑됐다.  

 

멕시코 언론은 룸노래방 W의 건물과 양현정씨와 멕시코 관리자의 사진을 보도했다. © 멕시코 방송 보도 캡처


현지 대사관 경찰영사와 책임 공방 

 

그러나 멕시코 검찰의 수사 과정에는 강압이 있었다. 멕시코 검찰이 양씨를 구속한 것은 한국인 여종업원 5명의 진술서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이들이 진술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현지어를 모르던 여성들은 검찰이 내민 스페인어로 된 진술서의 내용을 손님으로 연행된 한국인 박아무개씨를 통해 파악했다. 

 

여기에는 인신매매·구금·감시·매춘·성착취 등 사실과 다른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양씨와 멕시코 관리자가 한인 여성들을 강제로 구금하고 성매매를 시켰으며 화대를 갈취했다는 내용이었다. 5명의 여성들은 허위 진술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멕시코 검찰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진술을 핑계로 30여 시간 동안 잠도 재우지 않았다.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하며 “죽일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속옷을 갈아입는 여성들의 방문을 남성 수사관이 불시에 열어젖히고는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성들이 서명을 거부하자 물을 주지 않았고,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도 금지시켰다. 멕시코 검찰이 서명을 받기 위해 인권유린을 자행했다고 양씨를 포함한 한국 여성들은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다. 

 

현지 교민 등에 따르면, 멕시코에는 한인마피아가 없다. 멕시코 검찰이 성착취를 당한 피해자라고 지칭한 여성들은 카카오톡 등 휴대전화 메신저 등으로 한국의 지인이나 외부인들과 자유롭게 대화가 가능했고, 인근 한국식당 등의 CCTV에 이들 여성들이 시간에 관계없이 식사를 하고 거리를 돌아다닌 것이 촬영됐고, 교민들 다수가 이들을 알거나 봤다고 말한다.  

 

한국 여성들이 끝까지 서명을 거부하자 멕시코 검찰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이미 작성된 1차 조서에 서명하고 잘못된 부분은 추가로 작성해서 그 조서(1차)에 첨부하는 식으로 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은근한 협박을 했다. 즉 5분의 시간을 준다며 그 조건을 수용하고 서명한 다음 보강 진술 후 석방되든지 아니면 위증죄로 일괄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현지어와 법체계를 전혀 몰랐던 한국 여성들에게 믿을 수 있는 것은 한국대사관뿐이었다. 만 하루가 지난 후 이아무개 영사(총경)가 통역을 데리고 검찰청을 찾아왔다. 멕시코 검찰의 제안을 받은 한국인 여성들은 의심을 풀지 않았다. 서명과 동시에 석방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은 매춘부가 돼야 하고, 양씨는 구속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영사에게 멕시코 검찰의 제안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약속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영사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한국 여종업원 5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조서에 사인했다. 이 대목에서 양씨 등 한국 여성들과 이 영사의 얘기가 달라진다. 양씨는 옥중서신에서 “영사님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강요해서 한국 여성 5명을 매춘부로 만들고, 저를 인신매매 알선이라는 강력범죄자로 만들었다”며 영사를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당시 한국 여성 중 한 명이었던 정아무개씨도 이 영사가 “진술서는 다시 쓰면 되니 우선 서명하면 된다”고 했고, 이 말을 믿고 서명했다고 말한다. 정씨가 2월1일 대통령·외무장관·경찰청장 앞으로 낸 탄원서를 보면 좀 더 구체적이다. 정씨는 “언어 하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36시간 이상을 감금당했고, 더더욱 억울한 건 제가 하지도 않은 성매매 및 매춘을 했다는 그들이 만든 허위 진술서에 서명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라며 “한 가닥 희망이라고 믿고 있었던 영사님이 오셨고 당연히 대한민국 자국민을 위해 오신 줄 알고 기뻐하고 있었는데 영사님마저 저희에게 서명을 강요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또 “영사님이 저희랑 한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서명한 진술서는 그대로 판사님에게 넘어갔다. 이로 인해 저와 제 친구들은 매춘 아닌 매춘부가 되었고, 양씨는 어이없게 악덕 포주가 돼 구치소에 수감 중”이라고 밝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경찰영사가 자국민보다는 오히려 멕시코 검찰을 도운 것이 된다. 멕시코 한인사회에서도 교민과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야 할 영사가 무성의로 일관했다며 성토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현지에서 30년 이상 물류사업을 하고 있다는 홍금표 ‘팬 트랜스’ 대표는 ‘아시아엔’에 기고한 글에서 양씨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원인을 “경찰영사의 무능과 무성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경찰영사의 1차조서 서명 보증이 양씨가 구속된 결정적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 영사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하게 항변한다. 그가 멕시코 현지 한인 언론사인 ‘엘코레아노’에 밝힌 입장을 보면 “서명을 강요했다는 말은 사실 무근이며 대한민국 영사가 국민에게 서명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검사가 1차 진술을 빨리 마무리해야 하고 미비한 부분이 있다면 2차 진술을 받아줄 것이라고 영사 앞에서 약속한 것이기에 믿어도 된다고 말한 것이다. 영사는 주재국의 사법기관 앞에서 ‘서명을 하라’는 직권 발언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러한 권한도 없고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해도 그에 대해 책임질 능력도 없는 자리다”라고 해명했다. 

 

이 영사는 자신이 멕시코 검찰청에 갔을 때의 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도착했을 때 끌려온 양씨가 수갑을 차고 있었다. 수갑을 좀 풀어달라고 요청해 수갑을 풀고 조사를 받도록 했다. 물론 그다음엔 통역 이외엔 영사인 저도 말은 물론 제대로 운신도 못하게 할 정도로 분위기는 삼엄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양씨 석방을 위해 영사가 할 수 있는 조력을 다했고, 지금도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도 허위 진술서에 의한 자국민 구속을 막지 못한 대사관의 책임을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양씨 “하루빨리 가족에게 가고 싶다”

 

지금은 누구의 책임론을 따지기에 앞서 양씨의 석방이 최우선 과제다. 현재 양씨는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허위 진술서에 서명함으로써 범죄 혐의를 인정한 것이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본 재판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헌법소원 이의제기에 해당하는 ‘암파로(Amparo)’를 진행하고 있다. 구속 적법성에 대한 심리를 통해 ‘무죄’나 ‘혐의 없음’이 나오면 곧바로 풀려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 경우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멕시코 법원의 인권침해 관련 양형기준에 따라 최대 105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양씨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는 “하루라도 빨리 제 진짜 직업과 이름 그리고 가족을 찾게 해 달라. 이 악몽에서 하루라도 빨리 깰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며 고국에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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