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대통령’도 대통령 서강대 과후배?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10.04 08:05
  • 호수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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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서강대 후배 장호성 총장, 대한체육회장 출마하자 ‘쑥덕쑥덕'
이른바 ‘대한민국 체육계 대통령’이라 불리는 통합대한체육회장 선거가 10월5일 치러진다. 통합대한체육회장은 연 4000억원의 예산을 주무르고, 엘리트와 동호인들을 합쳐 600만 명에 이르는 등록 선수들을 관리하는 총책임자다. 올림픽을 비롯한 모든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한국 체육계를 대표한다. 이번 선거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한 이후 첫 수장을 뽑는 선거이니만큼 체육계 안팎의 관심이 뜨겁다.

이번 선거에 출사표를 내민 후보는 총 5명. 가장 먼저 출마 선언을 한 장정수 전 민주평통 운영위원을 비롯해 장호성 단국대 총장, 이기흥 전 수영연맹 회장, 전병관 경희대 교수, 이에리사 전 의원이 등록을 마쳤다. 50명의 대의원들이 회장을 뽑던 과거 방식과는 달리 1만5000명의 선거인단 중에서 무작위로 뽑은 1500여 명이 한날 한곳에 모여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바뀐만큼 그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런데 이번 선거가 체육계의 축제가 됐으면 하는 체육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선거 날이 다가올수록 각종 외풍 논란이 거세지며 선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9월23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체육회장선거 공명선거실천 결의대회에서 후보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기흥, 장정수, 장호성, 전병관 후보자. © 뉴스1
장호성 “정부로부터 제안 받은 적 없다”

공식 후보 등록일이었던 9월22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에도 장정수 전 위원과 전병관 교수 등을 제외하고는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가 없었다. 돌연 체육계 내부에서 장호성 단국대 총장과 오지철 전 TV조선 사장의 출마설이 돌면서부터 청와대 개입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후보 등록 2~3주 전까지만 해도 전혀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그러다 갑자기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청와대에서 밀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체육계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부는 통합대한체육회 선거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으나, 체육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결국 정부에서 낙점한 인사가 회장이 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후보 등록일이 다가와도 정치권과 연관된 인사들이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새로운 인물이 당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결국 장호성 총장이 후보로 나서면서 이런 기대감은 사그라진 분위기다. 오지철 전 사장은 최근 불편해진 현 정권과 조선일보 간 관계가 변수로 작용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장 총장이 오해를 사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서강대 전자공학과 후배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70학번, 장 총장은 75학번으로 5년 선·후배다. 장 총장은 박 대통령 이외에도 현 정권 인사들과도 두루 친분이 있어 ‘문화체육관광부가 그를 낙점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장 총장이 체육계는 물론 정계에도 발이 넓어 현 정부 인사들과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장 총장은 이런 소문에 대해 “정부로부터 (체육회장 선거 출마와 관련한) 제안을 받은 적도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대통령의 같은 과 후배라는 ‘딱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를 살 만한 경력이다.

이 전 회장의 경우 대한체육회 내부 사정에 가장 밝은 인물로 꼽히며, 조직 동원력에서도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정통 체육인 출신은 아니지만 대한카누연맹회장과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지냈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2012 런던올림픽에 한국선수단장을 맡아 체육계 인맥이 넓다. 다만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맡을 당시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각을 세운 바 있다. 또 이 전 회장은 2010년부터 수장으로 있었던 대한수영연맹이 온갖 비리와 내부 갈등으로 대한체육회의 관리단체로 지정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에리사 전 의원의 경우 지난 대한체육회 선거에 출마했다가 김정행 대한체육회 공동회장에게 한 표차로 낙선한 경력이 있다. 인지도 면에서도 가장 앞서고, 박 대통령과도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세 사람 중 누가 회장이 돼도 후폭풍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장 총장의 경우 친(親)정권 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가 당선되면 문체부가 결국 체육계 관리를 더욱 쉽게 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통합을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통합대한체육회장을 선출하기 위해선 산하 종목별 단체들이 먼저 통합을 해야하는데, 이미 그 과정에서부터 내분이 불거져 소송으로 비화한 단체가 한둘이 아니다. 가뜩이나 정부가 무리하게 나서서 오히려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장 총장의 당선은 체육계 내부에서 뒷말이 나올 소지가 있다.

대한체육회장 선거 뒤 후폭풍 일 듯

이 전 의원이나 이 전 회장의 경우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출마가 가능해졌는데,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당선될 경우 본안 소송 여부에 따라서 당선이 무효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원은 ‘과거 2년 동안 정당 당원이었거나 공직선거법상 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을 경우 체육회장 선거에 나올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 규정에 따라 출마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대한롤러스포츠연맹 박종덕 전 홍보이사가 이 규정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9월22일 서울동부지법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 전 의원도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전 회장의 경우 통합대한체육회 이사회가 지난 6월 개정한 회원종목단체 규정으로 인해 후보 등록이 어려웠다. 당시 이사회는 관리단체로 지정된 종목 회장의 자격상실 여부 조항을 개정하면서 ‘한 달간 소급’이라는 항목을 삽입했다. 이 전 회장의 경우 3월19일 수영연맹회장직에서 사퇴했지만 관리단체 지정일(3월25일)로부터 소급해 한 달 이내에 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후보 자격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이 대한체육회를 상대로 낸 후보자 지위인정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서 후보 등록이 가능해졌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당선될 경우 주무부처나 낙선자 중에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이럴 경우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하지만 3파전이 치열해질 경우 의외로 표가 갈려 장 전 위원이나 전 교수 같은 다소 약세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장 전 위원의 경우 우리나라 체육계의 고질적 관행에 엮여 있지 않고, 정치권 외풍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체육계 내부에서는 장 전 위원이 의외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후보자 기탁금만 7000만원에다 선거에 드는 비용도 결국 혈세로 충당되는 상황에서 친정부적 인사가 당선될 경우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이라는 문체부의 주장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정·재계 거물들이 명예직처럼 맡아왔던 자리마저도 정부가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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