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현장 문화코드 따라잡기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12.05 16:41
  • 호수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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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항쟁’ 민주주의 축제가 되었다

‘11월 항쟁’이라 불리는 한 달의 집회 동안 폭력 시위는 없었다. 광화문광장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스스로의 손으로 치워졌다. 헌정 사상 역대 최다 인원이 참석한 촛불집회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다.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주목받은 것은 또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시위문화다. ‘대통령 퇴진’이라는 엄중하고 무거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하나의 축제로 거듭났다. 특히 전국 190만 명이 모인 지난 11월26일의 5차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문화축제’의 장이 됐다. 노래와 그림과 퍼포먼스가 있는, ‘1박 2일 하야가 빛나는 밤’이라는 이름의 문화제였다.

 

 

© 사진공동취재단


 

퍼포먼스

뮤지컬배우·화백 등 예술가들 동참

 

5차 촛불집회의 장관은 ‘1분간 소등행사’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주제로 열린 이 퍼포먼스는 암흑의 세상과 다르지 않은 대한민국의 어둠을 걷어내는 저항의 행사를 통해 전 국민의 힘을 모으자는 뜻으로 기획됐다. 밤 8시, 광화문광장에 모인 130만 시민들은 카운트다운에 맞춰 모든 촛불을 껐다가 1분 뒤 다시 불을 밝혔다.

 

예술가들도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5차 촛불집회에서는 오소연·정영주 등 뮤지컬배우 32명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 곡 《나 여기 있어요》와 뮤지컬 《레미제라블》 중 민중봉기의 상징인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끈 임옥상 화백은 ‘백만백성’이라는 주제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백만백성’ 퍼포먼스는 검은 아스팔트에 하얀 천을 깔아 직위가 없는 백만 민초들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뜻으로 기획됐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한문까지 500m에 이르는 하얀 천이 깔렸고, 임 화백은 시민들의 발언을 그 위에 담았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된 이후 음악인들은 시국선언을 했고,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캠핑촌을 만들어 노숙을 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 사무국장은 “촛불집회 행사에서도 ‘블랙리스트 3관왕 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블랙리스트에 속했다는 사실이 활동하는 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 정부를 조롱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라 말했다.  

 

 

공연

‘하야하락’ 콘서트 전국 각지에서 열려

 

11월12일의 3차 집회 때는 방송인 김제동·김미화, 가수 이승환·조PD 등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발언과 공연이 이어졌다. 이승환은 자신의 노래 《덩크슛》의 노랫말을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열창했다. 11월19일 4차 집회에서는 전인권·가리온이 공연해 분위기를 북돋웠고, 5차 집회에서는 가수 양희은이 “우리가 해결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많다”며 자신의 히트곡인 《아침이슬》 《상록수》 등을 160만 시민들과 함께 열창했다. 가수 안치환도 무대에 올라 자신의 노래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사를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개사해 불러 눈길을 끌었다. 가수들의 출연은 모두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출연료도 전혀 없다. 음향과 조명 등 무대장치는 시민들의 모금으로 마련됐다.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가 주최한 전국 동시다발 공연 ‘하야하락’ 콘서트도 열렸다. 서울·춘천·제주·부산·대전·대구·강릉 등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하야하 공연은 페이스북을 통해 라이브로 중계됐다.

 

김 사무국장은 “(참가자가) 처음 100만명이 넘었던 11월12일 집회에 공연을 많이 배치했다. (집회에) 처음 나오는 많은 분들이 집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연이 촛불집회의 중심이 될 수는 없다. 연예인들, 가수들도 시민의 한 분으로, 촛불 하나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는 또 “방송 출연 등을 감안할 때 사회적 참여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일 수밖에 없는 연예인들이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내는 자리에 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양희은·전인권씨가 공연할 때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함께 소리치고 노래를 불렀다. 시민들이 다양한 계기를 통해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징물

푸른고래·꽃스티커·LED촛불 등장

 

11월 항쟁의 상징물들도 집회에 의미를 더했다. 광화문광장에는 파란색의 대형 고래 풍선이 집회 현장을 헤엄쳤다. 고래의 등에는 학생들을 상징하는 인형들이 노란 배와 함께 올려졌고, 꼬리에는 노란 리본이 달렸다. 고래 풍선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고래를 타고 가족 곁으로 돌아오길 염원하는 의미를 담아 세월호 관련 단체들이 제작한 것이다.

 

경찰 차벽을 옭아매던 밧줄도 없었다. 대신 평화를 상징하는 ‘꽃스티커’가 차벽에 붙었다. 주로 ‘집회의 차단’을 의미하던 경찰 차벽을 꽃벽으로 승화시켰다. 만들어진 꽃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들도 많았다. 꽃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씨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비용으로 제작했다. 11월26일 집회에는 경찰들이 스티커를 떼어내기 힘들 것을 우려해 떼어내기 쉬운 재질을 사용한 꽃스티커가 붙었다.

 

‘꺼지지 않는 촛불’도 등장했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을 무색하게 하는 LED(발광다이오드)촛불이 등장했다. 스마트폰 ‘촛불’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불을 밝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풍자와 패러디

국정 농단 세태 꼬집어

 

집회 현장에 참여한 시민들은 풍자와 패러디의 형식으로 현 세태를 지적하는 데 동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패러디한 ‘퇴근혜’, 국정 농단 세태를 꼬집는 ‘하야 순시려’, 청와대의 비아그라 구매를 빗댄 ‘하야하그라’ ‘국격을 새우그라’ 등이 쓰인 피켓도 등장했다. 집회 알바를 동원해 보수 집회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어버이연합을 ‘어부바연합’이라고 풍자한 깃발도 나부꼈다. 주최 측은 박 대통령이 여주인공의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주제곡을 틀기도 했다.

 

분노를 쏟아내고 싶은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분노배설소’를 찾아 ‘박근혜 두더지’가 적힌 두더지를 때리는 ‘두더지게임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진을 붙인 펀치 게임인 ‘우병우 때리기’ 게임에도 참여했다. 박 대통령 모형을 체포하는 ‘박근혜 체포단’도 현장에 등장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폭넓은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서 집회문화가 달라졌다. 과거의 집회가 싸워서 이겨야 하는 투쟁의 형식이었다면, 지금의 촛불집회는 하나의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며 “1987년 6월 항쟁 때의 광화문광장은 투쟁이 벌어지는 전쟁터 같은 공간이었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광화문광장은 기존의 콤플렉스를 많이 뒤집으며 문화적 공간으로 거듭났다. 이번 집회는 정권 퇴진이라는 기본적인 사안과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욕구가 투영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공감을 가져가는 것이다. 문화적 행사를 통해 공감의 차원이 커진다”며 “그 형식이 패러디와 풍자가 된 것이다. 현재 시국에 대한 정서나 울분을 풀어내는 데 문화적 틀은 큰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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