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와의 전쟁’ 선포한 연예계 스타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19 15:33
  • 호수 14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액 벌금에 실형 선고도… ‘정신적 살인’ 행위에 사법부도 강경 분위기

신년 초, 아이유의 소속사가 지난 연말 11명의 악플러(악성 댓글을 상습적으로 만드는 네티즌)들에게 벌금형이 내려졌음을 알리며, 앞으로도 ‘선처 없는 강력대응’을 천명했다. 트와이스의 소속사도 ‘악성 게시글의 수위와 양이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악플들을 취합해 고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연예계 스타들이 악플에 대한 강경 입장을 보이면서 악플러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엔 연예인들이 헛소문·비방 등을 이른바 ‘유명세’로 감내해야 했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든 이후 헛소문과 비방이 악플이란 형태로 바뀌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연예인들은 강경대응(법적 대응)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선처 없는 강경대응’이 주류를 이룬다. 지난해에 이정재·김준수·박해진·유빈(원더걸스)·강소라·남보라·신세경·수빈(달샤벳)·양지원(스피카)·블락비·박시후·한예슬·제시카 등이 악플러들을 잇달아 고소했다. 수지는 2014년에도 고소를 했었는데, 지난해에는 38명을 무더기 고소했다. 서유리는 악플만 저장하는 4테라 용량의 하드디스크를 운용한다고 기염을 토하며 악플러 고소로 지난 연말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리고 새해 들어 당대 최고의 아이돌들이 강경대응을 천명한 것이다. 그야말로 ‘악플러와의 전쟁’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연예인 목숨까지 위협한 악플

 

과거 1970년대 인기 MC 허참과 함께 콤비 진행자로 유명했던 정소녀 관련 괴소문이 있었다. 봉고 대통령의 흑인 아이를 출산했다는 얘기가 삽시간에 퍼져 범국민적 뒷담화의 대상이 됐던 것이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헛소문이었는데도 이로 인해 정소녀가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아예 연예활동 자체를 못하게 될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일이 커졌는데도 당시 정소녀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 시절 분위기가 그랬다. 연예인에 관한 소문이 퍼져도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고 여겼다. 괜히 본인이 나섰다가 이슈를 더 키울 수도 있기 때문에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또 그때는 소문이 그렇게 폭발적으로 확산될 때가 아니어서, 시중의 소문이 입에서 입을 통해 연예인 귀에까지 들어왔을 땐 이미 돌이키기 힘든 수준이 돼버린 경우가 많았다.

 

PC통신 시대를 거쳐 인터넷 시대에 소문은 악플이 되었고, 2004년에 ‘악플러’가 국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외계어로 지목되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즈음에 온라인 매체들이 연예기사를 쏟아내며 악플의 온상으로 자리 잡았다. 문희준이 백만 악플의 주인공으로 초창기 악플 대상의 왕좌에 올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악플을 그저 네티즌 놀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김구라는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악플 내용 수준의 인터넷 방송을 했다가 그 후 10여 년간 대상자에게 사과하는 사과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과를 받아준 문희준은 ‘문보살’로 불린다. 비가 2006년에 괴소문을 퍼뜨린 악플러들을 고소할 때만 해도 당시 네티즌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악플도 관심인데 연예인이 유난을 떤다’는 식이었다. 당시 한 정신과 전문의는 악플 대처법으로 ‘묵묵부답’, 즉 대응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사람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2007년에 가수 유니가 악플 등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했는데, 심지어 유니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에까지 조롱·비방·성희롱 등 온갖 악플이 달려 충격을 줬다. 이때부터 네티즌 사이에서 악플에 대한 자정운동이 일어났다. 같은 해에 정다빈이 악플 등의 원인으로 자살했고, 뉴욕타임스가 한국의 인터넷 발달과 자살이 연관 있다며 유니와 정다빈의 추모관 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8년, 최진실 자살 사건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바로 이해에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조가 악플 문제의 심각성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그래도 이때까진 강경대응 기조가 아니었다. 2011년엔 송지선 아나운서가 자살했고, 2010년 즈음엔 타블로가 악플과 괴소문으로 인해 죽음까진 아니지만 가정 파탄 수준의 피해를 입었다.

 

 

처벌 약했던 게 악플러들 키웠다는 지적도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악플에 대해 강경대응·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래서 2013년에 백지영이 자신의 유산 소식에 악플을 단 네티즌을 고소하자 응원이 이어졌던 것이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과 결혼한 김가연이 악플러와의 전장에서 스타로 떠오르기도 했다. 스스로 컴퓨터를 활용해 악플러들을 한 명 한 명 잡아내고, 심지어 해커의 도움을 받아 미국에 있는 악플러까지 찾았다는 말에 네티즌이 환호했다.

 

그래도 연예인 입장에선 일반인을 처벌받게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어서, 아이유 등 많은 연예인들이 쉽게 합의해 주며 선처받게 했다. 박해진은 악플러와 함께 연탄봉사를 하며 용서해 주기도 했다. 그러다 도저히 이대론 안 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 최근 들어선 ‘선처 없는 강경대응’이 기본 기조로 굳어진 것이다.

 

연예인들이 가장 고통을 호소하는 악플은 성적 수치심과 가족을 건드리거나 헛소문을 퍼뜨리는 경우다. 수지는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사진을 올린 사람을 고소했고, 송혜교는 스폰서 헛소문, 서유리는 가족에 대한 악플로 고소를 결정했다. 시스타의 다솜은 “아빠 생신인 오늘 ‘에미애비 XXX’이라는 표현은 정말 참기 힘드네요. 지난 6년 동안 잘 참아왔는데 이젠 정말 힘이 듭니다. 죽을 것 같아요”라고 호소했다.

 

고소를 하더라도 처벌이 강하지 않았던 것이 악플러들을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루머 유포나 명예훼손 행위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가능하지만, 간단한 벌금형이 일반적이었다. 2008년 고소영의 루머를 퍼뜨린 악플러들은 대법원에서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5년 임창정의 가정사 관련 루머를 퍼뜨린 악플러들은 80만원, 2015년 손연재 비방은 100만원이었다. 그래서 솜방망이 처벌이 키운 ‘정신적 살인’이란 말도 나왔다.

 

그러나 이젠 법원도 달라진다. 지난해 송혜교 악플러에겐 벌금 300만원이 선고됐다. 앞으론 징역형까지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지난해 허지웅에게 심각한 악플을 쓴 악플러가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사법부도 악플러와의 전쟁을 개시한 셈이다. 앞으로 악플러들이 설 땅은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터넷 명예훼손을 과도하게 적용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일각에선 무조건 고소하고 합의금을 뜯으려는 ‘합의금 장사’가 나타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