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 간 분열’이 트럼프 시대 北 전략
  •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2.22 14:31
  • 호수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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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서로 견제하기 위한 주변국 견인정책 강화할 듯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지금의 국제정세를 ‘초불확실성 시대’라고 말한다. 2016년 6월 브렉시트(Brexit)가 그 단초를 제공했다면, 2017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은 초불확실성 시대의 서막이 열렸음을 공식화했다. 트럼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미국 국내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강조하는 새로운 고립주의를 대외정책의 핵심기조로 내세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보호무역정책을 앞세울 것이고,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선택적 군사력 강화기조를 강조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러한 정책기조는 기본적으로 ‘각자도생의 생존논리’를 강화하면서 국제질서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2월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기자회견 하고 있다. © EPA 연합

동북아 정책, 트럼프 안보 1순위 될 것

 

한국전쟁 전후 동북아시아 정세는 1951년 미·일 동맹을 근간으로 형성된 샌프란시스코 체제(The San Francisco System)를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21세기 접어들면서 중국의 부상(浮上)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 요인이 됐다. 오늘날 동북아시아 정세는 현상 유지와 현상 타파라는 미국과 중국 간 세력경쟁 구도로 변해 가는 양상이다. 적어도 동북아시아에서 미·중 양국은 모두 역내 국가들을 자신의 우호세력으로 만들기 위한 이른바 ‘주변국 견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미국과 일본의 동맹을 확인한 것도 이런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향후 본격적 경쟁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주변국 견인정책’의 성과를 하나의 전략 자산으로 삼고자 할 것이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통해 위대한 미국을 다시 건설하겠다는 트럼프 정부의 군사안보 정책의 전략적 초점도 동북아시아에 집중될 것이다. 특정 지역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트럼프는 취임사를 통해 “오래된 동맹을 활성화하고 새로운 동맹을 형성하겠다”는 점과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트럼프 정부의 입장은 아태지역에서 양자 동맹 강화와 한·미·일 동맹, 미·일·호주 동맹, 미·일·호주·인도 연합과 같은 소다자주의 안보협력체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정책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트럼프 정부는 유럽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북아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축하고자 할 것이다. 즉,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의 재균형 정책을 수정·발전시켜, 변화된 상황에 부합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 버전 2.0을 동아시아 정책의 기본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동북아시아 안보정책에서 현재 표면적으로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북한의 핵문제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실패로 규정한 트럼프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필요할 경우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대북 선제타격론을 강조한 바 있다. 2월12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한 트럼프 정부와 미 의회의 입장은 보다 강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트럼프 정부는 “분명히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며 “점증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을 막기 위해 동맹의 포괄적 역량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입증을 발표했다. 추가적으로 사드(THAAD)를 비롯한 미사일방어체계 개발 및 배치와 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미·일 정보공유도 강화할 것임을 내비쳤다.

 

북한은 2016년 두 번의 핵실험과 연이은 중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탄두의 표준화·규격화·병기화를 추구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의도 파악이나 간보기 차원보다는 보다 완전한 핵보유국 지위를 달성하기 위한 자체의 기술적 실험의 성격이 강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북한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핵 숙제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성공이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향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미국이 인내할 수 있는 임계점(Red Line)을 넘어서는 것이자, 미 조야(朝野)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북 선제타격론이 현실로 옮겨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北, 옛소련 전략 모방

 

그러나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이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무엇보다도 핵능력의 고도화를 추진하는 북한의 전략적 의도 때문이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북한은 대북제재 국면을 타개하고 미국과의 핵군축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바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실험발사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미 실험발사에 성공해 그 능력이 입증된 스커드·노동·무수단 미사일의 핵병기화를 실전배치하는 행보를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현재 북한의 핵능력은 한국과 일본 등 미국의 핵심 동맹국가들을 사정권에 두고 있지만, 미국 본토는 북한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미 동맹국가들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의 실전배치를 통해 북핵 위협을 둘러싸고 미국과 동맹국가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이를 더욱더 부채질하는 것이 자신의 전략적 의도에 더 부합할 것이다. 즉, 국제정치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동맹 딜레마(Alliance Dilemma)를 부각시키는 가운데, 향후 북한은 추가적으로 주기적인 탄도미사일 발사를 통해 종국적으로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해 나갈 것이다. 핵미사일의 사정거리가 갖고 있는 이러한 전략적 함의(含意)는 지난 냉전 당시 소련의 핵 군비증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사례다.

 

자신의 핵능력이 소련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었던 1950년대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새로운 전망(New Look) 정책에 근거해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대량보복전략을 공개 천명했다. 이러한 미국의 핵전략에 대해 소련은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미사일 능력을 발전시키기보다는, 우선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인 나토(NATO) 유럽 국가들을 목표로 한 ‘SS-4’ ‘SS-5’ 중거리핵미사일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는 자신의 전략핵무기 개발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있을지도 모르는 선제공격을 미국 동맹국가들을 인질로 삼아 이를 저지하겠다는 소련의 전략적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소련은 1960년대 초반부터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본격적으로 개발해 1970년대 초반 미국과 군사적 완화를 이끌어냈고 전략무기제한협상(SALT)이라는 핵 군비통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했을 경우 미국의 선제타격론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북으로부터 있을지도 모르는 핵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의 생존과 국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확실히 담보해 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의 가장 큰 장애물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될 확률이 높다. 북한의 의도이자 노림수가 여기에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월12일 북한의 신형 중장거리 전략탄도미사일(IRBM)인 ‘북극성 2호’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美, 선제타격 쉽지 않아

 

문제는 대북 선제타격론이 아니라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강 대 강’ 대치국면이 동북아 정세를 소용돌이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당분간 선제타격론을 앞세운 강력한 제재를 비핵화 해법으로 내세울 것이다. 북한 역시 추가적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면서 ‘평화협정-핵군축’ 프레임을 강조할 것이다.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강 대 강’ 대치국면은 ‘제재-평화협정 병행’ 프레임을 내세운 중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세력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북한은 부정할 수 없는 지정학적 자산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안정관리를 위해 무엇보다도 비핵화를 위한 평화협정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나 고삐 풀린 북한의 불안정한 자율성을 용인하거나 지속적으로 인내할 수만은 없다. 미·중 세력경쟁의 구도에서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자산이 중국에게 난제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북아 정세 구도는 한국에 매우 어려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현재 한국은 북핵 해법으로 미국과 더불어 ‘강력한 제재-비핵화’ 프레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프레임은 일견 타당성을 갖고 있으나 문제는 한반도가 핵 위협과 공포의 최전방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보 없는 평화가 ‘사상누각’이라면, 평화 없는 안보는 한반도를 끝없는 군사대결의 실험장으로 내몰 것이다. 안보와 평화는 동일한 가치이자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에 안보와 평화가 균형을 잡고 같이 갈 수 있는 우리의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비핵화 대화를 재개해 제재 국면을 완화하거나, 이를 해결해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을 확산시켜 나갈 수 있는 우리 나름의 북핵 해법과 동북아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의 핵전략에서 파생될 수 있는 동맹 갈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한·미 동맹 관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불확실한 동북아 정세를 우리의 눈으로 올바르게 인식해 북한 비핵화 및 새로운 남북관계를 열어낼 수 있는 우리의 해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비록 한반도가 미·중 강대국 정치의 구조적 공간으로 편입되어 우리의 안보외교 자율성이 제한받는다 할지라도, 미·중 양국이 ‘주변국 견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자율성 공간을 넓혀줄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호연지기의 안보외교전략 구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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