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균 “죽기 살기로 부딪치며 존재가치 증명 중”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9 10:00
  • 호수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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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메이저리그 도전 나선 황재균 미국 현지 인터뷰…“아직 다 보여주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황재균(30)은 이번 주에 가장 살 떨리는 일주일을 보낼 것이다. 60여 명으로 시작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한두 명씩 방출되거나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서 25명으로 줄어드는데 아직 ‘컷오프’되지 않은 그는 이 일주일 안에 자신의 미래를 맞이한다. 샌프란시스코와 마이너리그 스플릿계약을 맺은 황재균은 메이저리그 초청선수 신분으로 스프링캠프를 치르는 중이다. 부와 명예가 보장되는 KBO리그 팀과의 FA 계약을 뒤로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 황재균. 치열한 생존 경쟁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그는 “그래도 재미있다”는 말을 인터뷰 때마다 자주 언급했다. 신분적 한계로 인해 25인 로스터 진입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주 포지션인 3루 외에 좌익수, 1루수까지 수비 범위를 넓히며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황재균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콧데일의 한 식당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황재균 선수 © 이영미 제공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난 것 같다. 어느새 캠프가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눈 뜨면 야구장, 야구 끝나면 숙소 생활을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요즘 선수들이 한두 명씩 사라지고 있다. 방출 아니면 마이너리그행(行)인데 선수들의 빈자리를 보며 참으로 살벌한 생존 경쟁을 실감 중이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후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는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만족하는 편인가.

 

“다행히 시범경기 성적이 잘 나오고 있다(3월23일 현재 타율 3할2푼4리에 4홈런, 10타점을 기록. 홈런·타점·장타율·OPS(출루율+장타율) 등이 모두 팀 내 선두권에 올랐다). 그러나 아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보여줄 게 많은데 아직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어느 부분에서 더 보여줄 게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나.

 

“투수하고의 수싸움? 아직은 메이저리그의 투수들을 잘 모르니까 그들을 상대로 한 수싸움을 하지 못하는 중이다. 한국에선 모두 다 아는 투수들이고 그들의 변화구가 휘어 들어오는 궤적을 훤히 꿰고 있어 수싸움을 벌일 수 있지만 여긴 똑같은 커브를 던져도 조금 휘어 들어가거나 많이 휘어 들어가는 등 차이가 크다. 그걸 파악하지 못하다 보니 수싸움을 벌이지 못했다.”

 

타자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부분일 것 같다.

 

“정말 그렇다. 이 정도 높이가 스트라이크라는 개념이 정립되면 확실한 볼에는 방망이가 안 나간다. 그런데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개념 정립이 안 되면서 볼인데도 방망이를 휘두르고, 결국 헛스윙이 된다. 물론 투수도 나에 대한 정보가 없을 것이다. 서로 무(無)와 무의 싸움인데 지금은 투수보다 내가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2016년 6월30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대 롯데 경기. 롯데 황재균이 10회말 삼성 백종현을 상대로 역전 끝내기 솔로 홈런을 때린 후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기를 앞두고 상대 투수의 구질을 계속 체크하지 않나.

 

“투수들이 몸 풀면서 공 던지는 걸 유심히 지켜본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 상대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다 보니 지금은 거의 감으로 치고 있다. 대기타석에서는 주로 타이밍을 맞춰보는 편이다. 어느 시점에 다리를 들어야 하는지 체크하는 동작이 주를 이룬다.”

 

비록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LA 다저스 클레이튼 커쇼를 상대한 적이 있었다(3월8일). 3회 첫 타석이었는데 1루 땅볼 아웃이 됐다.

 

“커쇼의 투구폼이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데 최고였다. 초구를 공략했지만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땅볼 아웃이 된 것이다. 커쇼와의 경기를 앞두고 비디오를 반복해서 보며 그의 투구폼에 타이밍을 맞추는 연습을 많이 했었다. 직접 상대해 보니 내가 연습했던 타이밍보다 약간 빠르더라. (류)현진이가 직구를 치라고 조언했는데 직구도 똑바로 들어오지 않고 휘어져서 들어왔다. 결국 빗맞는 바람에 땅볼이 나온 것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타이밍을 갖고 ‘장난’을 많이 친다. 다리를 빨리 들거나 와인드업하기 전 위에서 한 번 멈추는 등의 방법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에 대한 대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클레이튼 커쇼랑은 꼭 다시 한 번 붙고 싶다. 초구를 상대하는 바람에 그의 공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커쇼의 주무기인 커브를 직접 보고 싶다. 현진이 말로는 시즌 들어가면 커브가 훨씬 더 빨리 떨어진다고 하더라.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졌으면 좋겠다.”

(커쇼를 상대했던 이날 황재균은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1안타는 시범경기 두 번째 홈런이었다. 커쇼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스티브 겔츠를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때렸다.)

 

 

지금까지 미국 애리조나는 KBO리그 팀의 스프링캠프지로 방문했었다. 샌프란시스코 캠프에 합류하기 전 친정팀 롯데 자이언츠에서 훈련을 함께 했는데 그들과 헤어져 샌프란시스코 캠프에 합류하는 과정이 묘한 느낌을 주지 않았나.

 

(롯데 자이언츠의 스프링캠프지가 미국 애리조나 피오리아 스포츠콤플렉스였다. 황재균은 이곳에 미리 합류해 롯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샌프란시스코 캠프를 대비했다. 흥미로웠던 건 지난해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활약했던 롯데의 이대호는 피오리아 스포츠콤플렉스에서 롯데 선수들과 훈련 후 함께 2차 캠프지인 일본으로 이동했고, 황재균은 계속 애리조나에 남아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소화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팀에 있을 때는 애리조나의 스프링캠프지를 빌려 쓰다가 메이저리그 캠프가 시작되면 자리를 내주고 일본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여기서 계속 캠프를 소화하고 있으니 더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만약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서 샌프란시스코가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AT&T파크에서 게임을 치른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만끽할 것만 같다. 그 경기장에서 안타를 생산해 낸다면 더 기분 좋을 것 같고.”

황재균이 1월25일 인천공항에서 출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샌프란시스코의 브루스 보치 감독이 은근히 황재균 선수를 많이 챙기더라. 인터뷰 때마다 좋은 메시지를 많이 담아내면서 말이다.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일부러 말도 걸어주고 장난도 치면서 내가 마음 편히 캠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다. 얼마 전에는 한국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하셔서 내가 자주 가는 집의 상호명을 알려 드렸더니 실제 그곳에 가셔서 해물파전을 먹고 왔다고 하셨다. 나도 초대하려 했는데 가족들이 오는 바람에 같이 가지 못했다고 미안해하시면서 말이다. 과묵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수다도 많으시고, 말과 행동에 ‘명장’다운 여유와 품격이 느껴진다. 수비에서 실수라도 나오면 ‘아직 적응 중인 상태이니 실책에 신경 쓰지 말라’며 다독여주신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항상 내게 좋은 메시지를 전해 주신다. 감독님 머릿속에 나란 선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없는 게 아닌가. 초청선수 신분인데도 날 챙겨주시는 모습에 나도 더 힘을 내서 따라가려 한다.”

(보치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황재균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용기를 북돋워줬다. “선수마다 정답을 찾는 길이 다르다. 브랜든 벨트에게 맞는 정답이 버스터 포지에게는 오답일 수 있다. 황재균도 그렇다. 황재균에게 맞는 답이 있을 것이다. 야구는 똑같은 규칙에서 경기하지만 경기에 뛰는 사람들은 선수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맞춰가면서 야구의 정답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이 처음 팀에 들어왔을 경우 일부러 많은 일들을 시키지 않는다. 그들이 갖고 온 재능들을 우선 다 보여줬으면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바꾸거나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싫다. 황재균 같은 경우도 그렇다. 난 황재균이 갖고 있는 재능을 그대로 보여줬으면 한다. 내가 처음부터 황재균에게 많은 것을 시켰다면 그는 나를 불편한 마음으로 대했을 것이다.” 황재균은 이 내용을 기사를 통해 모두 확인했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고 말한다.)

 

 

기존의 주전 자리가 보장된 선수들과 달리 시범경기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진가를 경기를 통해 보여줘야만 하는 상황이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듯싶은데.

 

“한국에서 뛸 때는 시범경기의 성적은 전혀 중요한 가치 척도가 아니었다. 삼진 먹으면 어떤가. 수비에서 실책이 나온들 또 어떤가. 내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그러나 지금은 실수하면 절대 안 되고, 타석에서 끊임없이 안타를 생산하고 홈런도 치고 도루도 하면서 나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해야만 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즌 개막전을 준비했던 한국과는 달리 지금은 죽기 살기로 부딪치며 나란 선수를 증명해 보이는 중이다. 그 차이가 부담을 주긴 해도 야구하는 건 오히려 이곳이 훨씬 더 재미있다.”

 

시범경기를 치르며 당황했던 적은 없었나.

 

“2월25일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개막전에 5회 교체 투입되고 나서 두 차례 연속 삼진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속으로 큰일 났다 싶더라. 변화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서 내 에이전트인 이한길 대표에게 ‘공이 안 보여. 큰일 났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직구를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서 계속 변화구가 들어오니까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머지 변화구를 공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일 있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훈련장에 나와 전날 내가 타석에 들어섰던 경기 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봤다. 2월26일에도 6회초 수비에서 3루수로 교체 투입됐고, 6회말 시카고 컵스의 짐 핸더슨을 상대로 우측 담장을 넘기는 첫 번째 홈런을 터트렸다. 그때 정말 표현 못할 정도의 짜릿함을 만끽했다. 아침에 비디오 돌려보며 훈련했던 부분이 홈런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나도 그곳 기자실에 있지 않았나(웃음). 홈런이 될 줄 모르고 1루까지 전력 질주했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맞다. 그때 열심히 뛰었다(웃음). 장타가 나오면서 어느 순간부터 선수들이 내게 스윙에 대해 질문을 해 오기 시작하더라. 내가 어떤 자세로 스윙을 하는지, 한국에선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스윙하는지 선수들이 궁금해했다. 내가 조금씩 계속 보여주니까 선수들도 나를 인정하는 듯했다. 내가 야구를 못했다면 그런 질문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느낌이 기분 좋았다. 선수들로부터 인정받는 듯한 그 느낌이.”

황재균과 브루스 보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 © 이영미 제공

미국 진출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강속구에 대비하려고 타격폼을 수정했다고 들었다. 어떤 부분을 수정한 것인가.

 

“전체적으로 다 뜯어고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팔 위치, 레그킥 동작, 서 있는 자세 등을 다 바꿨다. 2016 시즌을 앞두고 겨울 동안 실내연습장에서 개인 레슨을 받아가며 타격폼 수정에 나섰고, 2016 스프링캠프에서 롯데 장종훈 코치의 도움을 받으며 수정된 타격폼을 완성시켜 나갔다. 처음엔 타이밍 잡기가 정말 어려웠는데 시합에 계속 나가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걸 느꼈다. 시즌 초반에는 홈런이 안 나왔다. 마치 ‘똑딱이’ 타자처럼 단타만 쳤다. 조바심을 억누르고 계속 그 타격폼으로 경기에 임했고, 어느 순간부터 스윙이 완전체가 되면서 홈런이 나오기 시작했다. 간결하게 밀어 친 타구가 엄청 멀리 나가는 걸 보며 타이밍만 맞으면 공이 멀리 나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그때 포기하지 않고 잘 참아낸 게 지금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의 타격 코치들은 지금의 스윙폼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던가.

 

“이미 좋은 스윙을 갖고 있어 수정할 부분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시더라. 내 스윙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여기 와서 타격폼은 하나도 안 건드렸다.”

 

류현진, 김현수, 강정호가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메이저리그를 먼저 경험한 선배인 셈인데 이곳에 와서 그들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메이저리그에 정착했는지 알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그 친구들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지 않았나. 내가 그 친구들처럼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스프링캠프를 소화하고 있다면 아무 걱정 없이 살았을 것이다(웃음). 나에 비하면 그 정도는 고생이 아니다. 난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초청선수 신분으로 여기 와 있는 거니까. 단, 그 친구들은 부단한 노력 끝에 메이저리그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건 87년생 동기들에 대해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다. (김)현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강)정호는 중학교에서부터, 그리고 (류)현진이는 프로 들어와서 친해졌다. 그 친구들이 다 미국에서 야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웃음).”

 

황재균은 마이너리그인 트리플 A에서 시즌을 보낼 확률이 높다. 그의 주 포지션인 3루에는 붙박이 주전 선수가 존재하고, 백업 멤버도 이미 차고 넘친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보치 감독이 그를 ‘재능 있는 선수’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부상 선수로 인한 공백이 생길 경우 황재균을 빅리그로 콜업할 계획을 세워뒀다는 소문도 들린다. 메이저리그든 마이너리그든 황재균은 기꺼이 현실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 재미있는 야구를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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