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부인 스캔들 감추려 북핵 위기 조성하나
  • 이규석 일본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0 15:54
  • 호수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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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에 스캔들’ 이후 북핵 위기감 더 조성하는 듯

 

일본 아베 정부가 모리토모학원(森友學園)에 국유지를 헐값 매각한 문제를 놓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恵) 여사가 어느 정도 직접 개입했는지, 아베 총리 본인의 개입은 없었는지 여부가 다시 일본 정치의 핫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사회가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토지 거래에 있어 아베 정부와 모리토모학원 간 ‘검은 커넥션’ 의혹을 풀기 위해선 아베 총리 부부의 개입 여부가 명백히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4월28일, 일본 최대의 황금연휴인 골든위크(올해는 4월29일~5월7일까지 최대 9일간 연휴 가능)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제1야당인 민진당 조사팀은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전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을 상경시켜 도쿄도 내에서 청문회를 열었다. 가고이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양원(兩院)의 예산위원회에서 증인신문을 했던 3월23일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이번 청문회에 출석한 가고이케 입에서 아베 총리와 아키에 여사가 관련돼 있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다. 이 증언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아베 총리에게는 또다시 혹독한 정치 위기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부인 아키에 여사(오른쪽)가 개입된 것으로 알려진 ‘아키에 스캔들’이 재점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EPA 연합

“아키에 끼어들자 토지 교섭 신속 진행”

 

아베 총리는 골든위크가 끝나는 5월8일과 9일, 중의원과 참의원에 나가 ‘아베 내각의 기본자세’를 주제로 모리토모학원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한다. 야당은 아키에 여사도 참고인으로 소환해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 하고 있다. 또 검찰이 조사에 나섰으며, 회계검사원(會計檢査院)도 재무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월28일 열린 청문회에서 가고이케 전 이사장은 아베 총리에게 불리한 내용을 쏟아냈다. “모리모토학원이 2017년 4월 개교 예정의 초등학교(오사카부(大阪府) 도요나카시(豊中市) 소재) 건설계획을 처음 상담한 상대는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였다.” “아키에 여사와 도쿄도 내의 호텔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아키에 여사는 ‘아베 신조 사무소’의 비서를 대동하고 있었다.” “2014년 모리토모학원의 쓰카모토 유치원에서 아키에 여사가 강연했을 때 도요나카시의 그 초등학교 건설용지로 아키에 여사를 안내했다.” “그 후에도 재무성과의 토지 교섭 내용을 아키에 여사에게 적시에 보고해 왔다.” “아키에 여사와의 전화 교신은 셀 수 없을 정도로 그 횟수가 많았다.”

 

가고이케가 증언한 내용 중에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재무성과의 토지 교섭 과정에서 2015년 9월5일 아키에 여사가 새로 개교할 초등학교(도요나카시 소재)의 명예교장으로 취임하는 일이 결정되자, 토지 거래 교섭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말한 부분이다. 이는 아키에 여사가 어떤 형태로든 개입했고, 그로부터 재무성 측이 아키에 여사의 심중을 헤아려 움직였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고이케가 정부로부터 토지를 임차해 오사카부 도요나카시에 초등학교 건설공사를 시작한 것은 2015년 5월이다. 그해 9월에는 아키에 여사가 이 초등학교의 명예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런데 2016년 3월24일, 모리토모학원 측은 이 학교용지를 임차가 아닌 매매로 하자고 재무성에 요청을 넣었고, 급기야 2016년 6월20일 감정가로부터 8억 엔 이상 깎은 파격적인 금액인 1억3400만 엔의 헐값으로 토지를 구입하는 매매계약을 성사시켰다.

 

일명 ‘아키에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가고이케 야스노리 모리토모학원 이사장이 3월23일 일본 도쿄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 뉴시스

“日 ‘손타쿠’ 문화가 빚어낸 비극”

 

일본 정부가 이 모리토모학원 측에 물심양면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준 것에 대해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의 봉건영주형 다이묘(大名) 문화에 연원하는 ‘손타쿠(忖度) 문화’가 빚어낸 일본의 현대적 비극이라고 꼬집었다. ‘손타쿠’란 상대의 의중을 헤아려 움직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다. 최근 아키에 스캔들이 터지면서 유행어로 등극하기도 했다.

 

골든위크가 끝나면, 이 모리모토학원 문제를 둘러싼 야당 측과 언론의 공세가 다시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아키에 스캔들 이후 정국운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부추겨 국민들의 눈을 돌려놨다. 골든위크 기간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메이 영국 총리를 만나 ‘북한 포위망’을 더 압박하고 글로벌리즘과 자유무역을 더 활성화하려 했다.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외교와 내정으로 정국을 전환하면서 아키에 정국의 막을 내리려고 했던 아베 총리의 시나리오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키에 스캔들의 향방은 야당이나 일부 미디어보다는, 메이저 언론과 시민단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일본의 메이저 언론들은 아베 정권과 대치할 기개가 엿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심지어 아키에 의혹을 숨기기 위해 총리 관저가 부추기는 북한 위기에 편승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도 북한이나 중국에 의해 촉발되는 국가 안보에는 신경을 쓰지만, 아키에 스캔들에는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 것 같다.

 

이에 국회는 6월의 회기를 소득 없이 끝낼 수도 있다. 모리토모학원을 둘러싼 아키에 스캔들이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시민단체들이 서로 연대해 조직적인 투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1960년대 안보투쟁 이후 정치에 참여하고 투쟁하는 진보계의 시민단체 수가 줄어들었다. 우익의 투쟁단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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