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초반 100일, 마크롱의 명운 달렸다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5.15 10:08
  • 호수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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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신임 대통령, 6월 총선 과반 획득 못하면 ‘연정’ 불가피

 

‘마크로노믹스(Macronomics)’. 5월14일 정권을 이양받고 공식 출범한 프랑스의 새로운 정부 에마뉘엘 마크롱의 경제정책 기조를 일컫는 말이다. 마크롱 신임 대통령 이름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어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미국의 ‘트럼프노믹스’, 그리고 러시아의 ‘푸티노믹스’에 이어 세계 5위의 경제대국 프랑스 경제정책의 새로운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았을 때보다 젊은 39세라는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나이로 국가수반의 자리에 오른 마크롱은 미국의 트럼프로 대변되는 ‘극우 포퓰리즘’의 유럽 상륙을 막았다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화려한 승리의 기쁨도 잠시, 이제 그의 앞에 남은 과제는 결코 녹록지 않다. 그가 만든 정당 이름 ‘앙 마르슈(‘전진’이라는 뜻)’처럼,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발목 잡힌 프랑스를 조속히 ‘전진’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일요일 근무 허용’으로 대표되는 그의 경제정책들은 올랑드 정부가 소속된 사회당 기조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나아가 마크롱이 사회당이 공들여 만든 ‘35시간 근무제’에 ‘개혁’의 칼을 들이대면서 사회당 내부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인이 5월7일(현지 시각) 파리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당선 기념 인사를 하고 있다. © AP연합

 

노동법 등 마크롱式 개혁에 노조 반발

 

프랑스 경제전문가 마리 비에노의 분석에 따르면, 마크로노믹스는 먼저 ‘정부 지원 정책’과 ‘투자를 통한 경제 활성화 방안’의 절충이다. 우선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은 지속적으로 감축한다. 대표적인 예로 올랑드 정부에서 야심 차게 추진했던 ‘고용창출을 위한 세금공제(CICE)’ 제도를 지속하되 이를 간소화할 전망이다.

 

반면 교육·차세대 에너지·농업 등의 분야에는 500억 유로, 한화로 약 62조원을 향후 5년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의 재정 부채를 3%로 잡기 위해 12만 명의 공무원을 감축한다는 계획도 마크로노믹스의 한 축이다. 가장 예민한 사안인 ‘노동법 개정’에 관한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사회정책에 대한 재협상’의 이름으로 노동법을 수정해 프랑스의 경제 체질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이러한 개혁을 ‘어떻게’ 추진할지다. 프랑스 언론은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초반 100일에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마크롱 신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개혁 드라이브를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러한 시나리오에 필수적 조건은 오는 6월11일로 예정된 프랑스 하원 선거에서의 승리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과반수 의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원의 과반을 차지한다고 해서 만사 오케이는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프랑스 노조 FO(노동자의 힘) 사무총장 장 클로드 말리는 “우선 지켜보겠지만, 마크롱이 의회 동의 없이 행정명령을 통해 노동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노조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랑드 정부 당시 고용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추진됐던 ‘엘 코므리 법안’은 의회 반대를 피하기 위해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될 경우 의회의 표결을 거치지 않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헌법 49조 3항을 동원해  통과시켰다. 이때 의회는 24시간 안에 내각의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있어, 당시 프랑스 하원이 정부에 불신임안을 제출했지만 다수인 집권 사회당에 밀려 좌절됐다. 통과 후 노조 등 좌파 세력의 반대 시위는 강경기조로 돌아섰다.

 

마크롱 지지자들이 거리에 나와 당선을 축하하고 있다. © EPA연합

 

마크롱, 프랑스를 ‘전진’시킬 수 있을까

 

향후 내각 인선 또한 마크롱 정부에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미 ‘앙 마르슈’라는 새로운 정치집단을 통해 기존 정치세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했지만 마크롱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노쇠한 기존 정치인 일색이다.

 

현지 시각 5월8일 올랑드 내각의 수장을 지낸 마뉘엘 발스 전 총리는 “사회당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마크롱의 신당 앙 마르슈 후보로 다음 총선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앙 마르슈는 전직 총리의 합류 의사에 대해 어떠한 입장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올랑드 내각 각료 중 처음으로 공개 지지를 선언했던 장 이브 르 드리앙 국방장관 역시 차기 초대 총리직 물망에 올랐지만, 그를 입각시킬 경우 ‘전진’이라는 앙 마르슈 슬로건에 반해 후진을 하는 모양새에 가까워져 간단치 않은 문제다.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대통령 출신 당이 과반을 확보할 경우 여당이 주도하는 내각이 꾸려지지만 야당이 과반을 획득할 경우 총리를 비롯한 조각권(組閣權)을 상대 당에 넘겨주는 것이 관례다. 프랑스 특유의 ‘동거 정부’가 구성되는 것이다. 미테랑 대통령(좌파 사회당) 시절 시라크 총리(우파 대중운동연합)와 시라크 대통령 시절 조스팽 총리(좌파 사회당) 커플이 대표적인 동거 정부 형태였다. 이때 대통령은 외교에만 관여할 뿐 내치는 총리가 맡는다.

 

물론 내각과 함께 각료 회의는 주재하지만 외로운 처지가 된다. 미테랑 대통령 시절 시라크 총리와 그의 각료들의 기세등등함에 둘러싸인 미테랑 대통령을 두고 “노쇠한 왕 같았다”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마크롱이 만든 앙 마르슈는 이제 갓 탄생한 신생 정당이다. 6월 총선에서 과반을 획득한다면 마크롱에게 강한 우군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연정’이 불가피해진다.

 

5월11일 마크롱 대통령의 캠프인 앙 마르슈는 총선에 출마할 428명의 1차 공천자 명단을 공개했다. 이 중 마크롱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했듯이 절반인 214명이 여성 후보로 채워졌다. 또한 52%의 후보자가 비정치인 출신이다.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겠다며 내세운 공약을 우선은 이행한 것이다. 평균 연령 또한 46세로 기존 하원의원 평균 연령 60세보다 훨씬 낮다.

 

앙 마르슈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마크롱 대통령이 향후 내각 인선이나 선거 과정에서 얼마나 독립성을 지켜낼지는 미지수다. 이미 대선전에서 연대했던 중도 우파 수장 프랑수아 바이루나 우파 후보였던 프랑수아 피용, 그리고 퇴임 대통령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프랑수아 올랑드까지 여전히 프랑스 정계엔 정치 9단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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