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테러 정보도 ‘흘리는’ 미국의 정보 불감증
  • 김회권 기자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2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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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이스라엘, 트럼프 정부와 정보 공유에 불신 커져

 

'흘리기'

 

미국 정부가 정보를 취급하는 방식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5월22일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 사건은 약 8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미국 팝가수 아리아나 그란데의 콘서트가 끝난 직후 발생했기에 청소년들의 희생이 컸다. 비극적인 테러가 발생하자마자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던 영국 정부는 미국 정부를 향해 분노의 화살을 쏴야했다. 중요한 수사 정보들이 영국이 아닌 대서양 건너편 미국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테러가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NBC뉴스는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초기 사망자 숫자를 20명이라고 전했다. NBC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미국 언론들도 영국 정부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는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공격 방법은 자살 폭탄 테러였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3일, NBC뉴스와 CBS뉴스는 영국 수사 당국이 알고 있었지만 아직 밝히지 않은 용의자의 이름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미국 언론이 보도한 자살폭탄 테러의 용의자는 리비아계 영국인 살만 아베디(22)였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모든 건 사실이었다.

 

NBC뉴스 등 미국 언론들은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영국 수사당국이 밝히지 않은 맨체스터 테러 관련 정보를 미리 보도했다. ⓒ NBC뉴스 화면캡쳐

 

“다른 루트를 통해 정보가 유출되는 것은 화나는 일이다”

 

22명이 사망한 자살폭탄 테러였다. 여기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됐고 그래서 영국인들의 분노가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다. 게다가 이런 테러는 단독범의 소행인 경우가 드물다. 폭탄을 터트린 용의자의 주변에는 동료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테러 직후 미국 쪽에서 흘러나온 정보들은 테러의 배후를 알아내려는 영국의 정보원과 사정기관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었다. 23일 미국의 언론들이 테러 용의자의 이름을 보도하자 영국 경찰이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될 우려가 있다”고 성명을 낸 이유였다. 

 

영국 정부도 나섰다. 앰버 러드 내무장관이 24일 언론 앞에 섰다. 미국의 언론들이 용의자를 포함해 사건의 양상을 미국 정부 취재원을 인용해 줄기차게 보도하자 그가 직접 나서서 ‘입 가벼운’ 미국 정부 관계자를 비판했다. BBC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영국 경찰은 수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정보의 흐름을 제어하고 싶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다른 루트를 통해 정보가 유출되는 것은 화나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측을 향해 경고했다. “이런 일(정보 유출)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동맹국(미국)에 명확하게 전달했다.” 

 

영국의 전직 정보기관 수장은 뉴스위크의 취재에 이렇게 말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왜 비밀을 지켜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않는다. 개인의 점수를 따기 위해 말해버리는 일이 너무 많다.” 맨체스터 테러는 서로 민감한 정보를 공유해 왔던 영국과 미국의 친밀함에 파열음을 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영국 수사 당국보다 먼저 정보를 공개해버린 미국 정부 관계자의 충동적인 행동은 향후 양국의 관계를 보다 신중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정보 불감증 사례는 또 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기밀 정보를 누설했다는 의혹을 받는 당사자다. 동맹국과도 공유하지 않았던 이슬람국가(IS) 관련 기밀정보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유출한 사건이 불거졌고 이로 인해 특별검사가 임명됐으며 심지어 탄핵 사유가 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중이다. 기밀정보를 미국에 제공한 쪽은 이스라엘로 알려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발 정보를 러시아가 알게된 셈이다. 앞서 뉴스위크의 취재에 응한 영국 전직 정보기관 수장은 이렇게 말했다. “유럽과 이스라엘은 미국처럼 최고 기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미국은 일급비밀을 알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수천 명이나 된다. 이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스라엘도 영국처럼 분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목숨 걸고 얻은 정보를 자랑스럽게 흘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성의함 때문이었다. 특히 문제가 된 부분은 잠입해 있는 이스라엘 정보원의 신원이 노출돼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이 제공한 정보를 러시아에 제공한 사건이 벌어지고 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공교롭게 이스라엘 순방길에 올랐다. ⓒ 사진=AP연합

 

오바마 정부의 경고, “트럼프 정부와 정보 공유하지 마라”

 

흥미로운 건 이런 부분에 대해 경고가 이미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일간지 예디오트 아흐로노트는 “지난 1월 오바마 정부가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트럼프 정부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도록 충고했다”고 보도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이스라엘이 어렵게 얻어낸 정보가 러시아 정부로 흘러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 정부의 실책에 이스라엘 정부는 분노를 표출하진 않고 있다. 오히려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카츠 이스라엘 정보장관은 “우리는 미국 정보기관에 전폭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 이란과 IS 등의 위협에 대해 앞으로 양국간 협력을 계속 심화시킬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트럼프'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평정심이 진짜일까. 미국 의회 전문매체 더 힐은 아비그도르 리버만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회견을 인용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보교환규정이 수정됐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수정 내용을 밝히진 않았지만 리버만 국방장관은 “미국 측과 명확히 해야 할 사항 등을 점검했다. 일부 규정을 손봤다”고 말했다. 맨체스터 테러의 배후라고 주장하는 IS. 그들에 대한 정보 공유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가 왔지만 미국의 가벼운 입이 동맹국 간 불신의 장애물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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