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중개업소에 빗발친 “집 팔아 달라”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rke@sisajournal-e.com)
  • 승인 2017.08.07 13:30
  • 호수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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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초고강도 부동산 대책에 강남 재건축아파트 소유자들 전전긍긍

“불러주는 계좌로 얼른 ‘출발비’ 입금하세요.” 그동안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 일대 공인중개업소에서는 출발비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주택시장이 호황기일 때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수천만원 올라 있으니 실소유주인 매도자가 변심하고 계약 장소에 안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이럴 때 매수희망자가 매도자의 변심을 막을 겸 실소유주 통장에 소액을 먼저 입금시켜주는 일종의 거마비를 출발비라고 부른다.

 

주택시장이 뜨거웠던 열흘 전만 해도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는 이런 행태가 빈번히 발생했다. 매수희망자로선 억울해 할 일이지만 본인도 나중에 같은 방식으로 되팔면 그만이기 때문에 순순히 응하는 편이다. 수년간 이런 행태가 횡행한 것은 주택시장에서 재건축 아파트 집값만큼은 반드시 지금보다 오를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보통의 부동산과 달리 강남 재건축은 사려는 이들이 줄을 서 있는 만큼 팔고 싶을 때 팔아서 바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수자가 불합리한 행태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 중 하나였다. 한마디로 강남 재건축은 매도자가 절대 우위에 있는 시장이었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 발표 직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정부는 8월2일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통해 서울 강남 4구 등 11개 구와 세종시를 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날 오후 서울 개포주공 1단지에서 한 시민이 공인중개업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강남 재건축, 1억원 내린 급매물도 등장

시장 분위기는 한순간 반전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피자 발언’이 신호탄이 됐다. 문 대통령은 7월27일 저녁 청와대에서 가진 기업인들과의 호프미팅에서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의 피자 경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문 대통령이 구 부회장에게 ‘피자 CEO’로 알려진 이유를 물었고, 구 부회장은 LG전자에 근무할 때 일 잘하는 공장에 피자를 보낸 일화를 소개하며 “피자 받은 공장이 일을 더 잘한다”고 피자 경영효과를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문 대통령은 “우리도 피자를 한번 돌리자”면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향해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한 판 쏘겠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네”라고 대답했다. 강남 재건축 시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양상을 보이자 문 대통령이 피자 경영 발언으로 8월 말로 예정돼있던 주택시장 안정화 종합대책 강도를 미리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른바 ‘지라시’가 돌기 시작했다. 8월 말이 아니라 수일 내에 강남 일대를 투기과열지구로 묶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를 줄여 거래량을 규제한다는 발표가 나올 것이란 내용이었다.

 

일정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일주일간 휴가를 가 있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예정보다 닷새나 앞당겨 복귀하면서, 8월2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초고강도 부동산 규제안이 발표됐다. 문 대통령의 피자 한 판 발언이 나온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발표된 대책은 소문보다 고강도이고 적용범위는 넓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6·19 부동산 대책이란 첫 번째 잽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자 두 번째엔 초강력 펀치를 날렸다는 비유가 인용될 정도다. 김현미 장관은 대책을 내놓으며 “주택시장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 집을 거주공간이 아닌 투기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새 정부의 철학을 확실히 드러냈다. 집값 급등의 주범인 투기수요는 잡고,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선전포고인 것이다. 정부의 집중 표적은 강남의 재건축·다주택을 보유한 투기수요였다.

 

따라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완화했던 부동산 규제를 다시 옥죄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서울 25개 전 자치구와 과천시, 세종시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유예기간도 없이 발표 다음날부터 일정사업단계를 지난 재건축·재개발 단지 조합원의 입주권 거래(조합원 지위 양도)를 금지했다. 다주택자의 LTV와 DTI는 최대 30%까지 낮아져 대출을 최대한 받아 집을 여러 채 보유하는 갭투자자의 시장유입을 원천 봉쇄했다. 강남 등 서울 11개 자치구와 세종시에는 투기과열지구와는 별개로 투기지역으로 지정하는 규제까지 더해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를 10~20%포인트 올렸다. 즉 거래규제, 금융규제, 조세규제까지 모든 규제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외에도 청약제도 개편 및 자금조달계획 제출 등 당장 가능한 대책들을 총망라했다.

 

대책이 발표된 2일 오후부터 현재까지 강남 재건축단지 일대 공인중개업소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중개업소 대부분이 휴가 중이라 휴대전화로 문의를 받는 가운데, 소수 업체는 집을 빨리 팔아달라는 소유주의 성화에 못 이겨 출근해 업무를 보는 곳도 더러 있다. 강남구 개포동 M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대책 발표 전에는 매수 문의 전화가 많았는데 어제부터 집주인들의 매도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한꺼번에 총망라한 대책이 발표되면서, 내용 파악이 쉽지 않은 상당수 소유주들이 매도가 가능한지 여부부터 재건축은 추진되는 건지 등 다방면의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견고한 가격형성을 뽐내온 강남 재건축 시장이 졸지에 흔들리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27억원을 넘어섰던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전용 84㎡는 대책 발표 직후 1억원 정도 가격을 낮춘 급매물이 등장했다. 옆 단지인 신반포3차·경남아파트도 호가를 5000만원 떨어뜨린 매물이 나왔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도 가격을 5000만~1억원 낮춘 급매물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매수희망자들은 좀 더 분위기를 지켜보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추격매수를 하려던 이들이 느긋한 자세로 바뀌면서 벌써부터 거래절벽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8·2 대책 발표 후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대책의 효과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분석이 많다. 단기간 조정에는 성공할 수 있어도 장기적 집값 안정화를 위해선 추가로 보완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대책이 거래규제에만 초점을 두고 있어서란 이유에서다. 국토부는 서민을 위한 주택공급을 확대하고자 수도권 교통 요지에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규 공공주택지구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장기적 가격 상승을 막기는 힘들 수도”

다만 택지 규모 등 구체적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수급 불균형이 제대로 해소될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 과거 수요규제에 방점을 두고 정책을 펼쳤던 노무현 정부 집값 잡기의 실패 전례와 똑같다는 비판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자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며 2003년 ‘5·23 대책’을 시작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규제를 쏟아냈다. 이번 대책으로 발표한 투기과열지구 지정, 투기지역 지정, 양도소득세 강화, 분양권 전매 제한, 분양가 자율화 폐지, LTV·DTI 강화 등도 노무현 정부 때 모두 도입됐던 것들이다. 그러나 집값이 잡히긴커녕 더 급등하면서 노무현 정부 임기 5년 동안 서울 아파트 값이 56% 상승했다. 결국 정부도 주택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이 등락을 반복하는 단편적 현상에 집중하는 정책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 방향과 목표를 설계하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단기적인 시장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나 재건축 후 분양 적용 등으로 주택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다시 가격 상승이 재연될 우려도 있다”고 분석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역시 “현재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근본적 상승 원인은 주택공급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노무현 정부에서도 규제책을 다 동원했지만 1년 뒤 결과는 제법 높은 상승폭이었다. 단기적 충격파에 의한 시장 냉각을 유도해 급상승을 막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승을 막기는 힘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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