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설범 대한방직 회장, 회삿돈 15억 횡령 의혹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6 09:56
  • 호수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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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들 문제 삼자 뒤늦게 납부…경찰 조사서 횡령 사실 시인

 

대한방직 최대주주의 부정행위가 발각돼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최근 관련 사실을 확인하고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방직은 1953년 설립된 국내 대표 방직 기업이다. 한때 국내 최고 재벌기업 대한전선의 계열사였던 대한방직은 방직업 특성상 언론에 많이 이름을 올린 기업은 아니다. 대한방직은 대한전선 창업주였던 고(故) 설경동 전 회장이 세운 회사로, 장남인 설원식 전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그룹에서 떨어져 나왔다. 3남인 설원량 회장은 본가인 대한전선을 물려받았으며, 막내인 설원봉 회장은 대한제당을 분리해 나갔다. 설범 회장은 설원식 전 회장의 장남이자, 설경동 창업주의 직계 장손이다.

 

 

2005년 애경그룹에 땅 팔면서 리베이트 받아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방직업은 경공업 중심인 우리 산업의 핵심 역할을 했다. 하지만 중화학공업, 서비스산업으로 산업의 중심축이 옮겨가면서 하락세를 걷고 있다. 대한방직 역시 최근 실적이 좋지 않다. 공시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매출은 101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9% 줄었다. 더군다나 이 회사는 상반기 36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은 회사의 진짜 위기는 업황에 있는 게 아니라, 경영진의 부도덕성에 있다고 비판한다. 회사 대표이자 최대주주인 설범 회장은 2005년 대구 월배공장을 애경그룹에 시세보다 싸게 팔아, 그 대가로 리베이트를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시사저널이 판결문을 입수한 뒤 사건 전반을 재취재한 결과다. 설 회장은 2005년 서울 영등포 모처에서 회사가 보유한 공장부지 7만9134㎡(2만3938평) 매입을 희망하는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을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의 소개로 만났다. 안 부회장과 채 부회장은 처남매부 사이다. 안 부회장의 부인인 채은정 애경산업 전무의 오빠가 채 부회장이다.

 

서울 여의도 대한방직 사옥 © 시사저널 최준필

안 부회장은 1959년생으로, 1977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설 회장과는 대학 동기동창이다. 이러한 개인적 인연으로 안 부회장이 손위 처남인 채 부회장을 소개한 것으로 파악된다. 판결문에는 “채 부회장이 애경그룹 안용찬 부회장과 함께 대한방직 대표이사 회장인 피고인 설범을 만나 ‘애경그룹에서 대한방직 월배공장 부지를 매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고 나와 있다.

관련 사실은 2008년 검찰이 채 부회장이 애경그룹 계열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두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채 부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고, 1심 재판부는 채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대구 월배공장 부지는 2005년 매각된 곳이다. 2005년 11월7일 공시 자료를 보면, 대한방직은 월배공장 토지와 건물을 861억원에 애경PFV-1(피에프브이원)에 넘겼다. 토지 장부가액은 274억원이었다. 단순 계산해 대한방직은 이 매각으로 약 600억원의 매매차익을 거둔 것으로 나왔다. 당시 공시자료에서 대한방직은 매각대금 가운데 284억원을 우리은행, 하나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는 데 사용키로 했다. 이 부지에 애경그룹 계열사인 애경피에프브이원은 한국토지신탁과 공동으로 시행해 아파트 1881가구(AK그랑폴리스)를 분양했다. 시공사로는 서희건설이 참여했다.

 

이 단지는 당시 대구에서 4년 만에 대규모로 공급되는 아파트 단지로 평가받았다. 대구시 유천동 AK114공인 김미선 대표공인중개사는 “지어진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데다 진천역 역세권에 있어 지하철로 대구 도심까지 15분이면 도착하는 등 입지여건이 좋다”고 설명했다.

 

훗날 애경그룹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되면서 이 계약에 불법적 요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거래에서 양측은 설 회장이 토지를 팔면서 매각대금과는 별도로 39억원을 리베이트로 받기로 합의했다. 리베이트와 매각대금을 합치면 정확하게 900억원이 된다. 다시 말해 이 부지 매각대금 900억원 중 4.3%에 해당하는 금액이 회장 개인의 리베이트로 사용됐다.

 

양사는 ‘39억원은 매매계약 체결 후 3분의 1(13억원), 위 부지에 아파트 건축 공사를 착공하는 시점에 13억원, 아파트 공사가 마무리된 시점에 13억원을 나누어 지급하겠다’고 합의했다. 검찰 조사 결과, 당시 설 회장은 2005년 11월29일부터 12월5일까지 13억원, 2007년 3월경 1억원, 2007년 9월경 1억원 등 총 15억원을 채 부회장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2009년 4월 서울남부지법은 설 회장에 대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 15억원 추징 판결을 내렸다. 애경그룹 채 부회장에게는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이 과정에서 리베이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경영상 배임’이다. 이는 올 3월 열린 대한방직 정기주총에서 큰 쟁점이 됐다. 소액주주들이 주장하는 것은 헐값 매각이다. 애경피에프브이원은 대한방직 부지를 매입한 이후 인근 땅을 추가 매입했다. 그런데 매입가가 큰 차이가 난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애경피에프브이원은 2006년 인근 땅 2만69㎡(6071평)를 3.3㎡당 1145만원에 구입했다. 이는 한 해 전 대한방직 부지 취득가(3.3㎡당 374만원)와 차이가 크다. 공교롭게도 대한방직이 땅을 판 후 3년 만에 AK그랑폴리스가 들어선 땅은 공시지가가 1244억원으로 뛰었다.

 

 

대구 월배공장 부지 헐값 매각 논란도

 

이상한 점은 하나 더 발견됐다. 올 정기주총을 앞두고 소액주주들은 설 회장의 추징금 납부 흔적을 찾지 못하겠다며, 횡령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소액주주 대표 강기혁씨는 “회사에 얼마나 손해를 끼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회계장부를 살펴봤는데 리베이트 15억원이 회사로 입금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검은 되레 소액주주 대표 강씨를 올 4월 200억원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강씨가 대한방직·조광피혁·삼양통상·아이에스동서 주식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종해 부당이득을 200억원 가까이 챙겼다고 봤다.

 

소액주주 대표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설 회장의 도덕성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소액주주들의 주장에 대한방직도 주총을 앞둔 3월14일 “설범 회장은 당시 문제가 되었던 15억원을 2017년 3월13일 회사로 입금했다”고 공시했다. 대주주의 부정행위를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2009년 당시 법원은 ‘피고인이 초범이고 범행 자백 후 잘못을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적극적으로 청탁의 대가를 요구한 바가 없는 점, 수재액 중 일부를 회사를 위해 사용하였고 그 전액을 회사에 반환한 점’을 양형 기준으로 삼았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수뢰한 돈 전액을 회사로 돌려줬다’는 점이다. 판결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법원의 선고에 앞서 설 회장 스스로가 돈을 회사 쪽에 돌려줬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도 소액주주들이 입금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두 사실이 성립되려면 공시 보고서에는 없는 회사 명의 통장이 따로 있었으며 여기다 돈을 넣고 법원 판결을 받은 후 돈을 다시 빼냈어야 한다. 한 소액주주는 “당시 회사가 적자인데도 거액의 추징금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감사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이번 건처럼 대기업 총수가 재산이 있는데도 추징금을 내지 않은 경우는 드문 케이스”라면서 “소액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바로 일시불로 돈을 낸 것은 ‘도덕적 해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방직 관계자는 “‘넣고 뺐다’라기보다 법원의 추징 명령 이후 돈(15억원)을 넣지 않고 있다가 소액주주의 문제 지적 이후 회사 쪽에 입금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소액주주들은 관련 사실을 토대로 설 회장을 검찰에 고소한 상태며, 이 사건은 현재 경찰 조사가 끝난 뒤 서울남부지검으로 결과가 넘어갔다. 시사저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설 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회사 명의의 통장에 돈을 넣은 다음, 나중에 다시 돈을 빼낸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추징금을 다시 빼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명백히 횡령에 해당한다. 나중에 돈을 되돌려줬다고 해도 위법행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의 선처를 기망한 행동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설 회장의 부당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공소시효 문제도 그중 하나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따라서 사건 발생을 기준일인 2005년을 기준으로 삼으면 처벌은 힘들다. 하지만 관련 사실을 알고 처벌 기준을 확정한 법원 판결일(2009년)을 기준으로 잡으면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방직물 제조 공정 모습 © 유튜브 캡처

 

국세청 조사 결과, 차명계좌 보유 사실 확인

 

이와는 별도로 소액주주들은 설 회장의 차명계좌 소유도 문제 삼고 있다. 설 회장은 임직원 차명으로 대한방직 주식 5만1771주(지분율 4.88%)를 보유한 사실이 국세청 조사 결과 드러나 지난해 8월 정정 공시했다.

 

3월 정기주총에서 설 회장 등 경영진과 소액주주 간 표 대결은 경영진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위장계열사 의혹까지 제기하며 경영진 교체를 요구할 계획이어서 경영권을 놓고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감사 선임 여부에 대한 논란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소액주주들은 3월24일 열린 정기주총에서 김아무개 상근감사의 선임건을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대한방직은 4월4일 공정공시를 통해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통해 신규 감사를 선임하겠다”고 밝혔지만, 9월1일 현재 일정 자체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통상 임시주총은 최소 6개월 전 개최 여부를 공시하는 것이 의무다. 소액주주들은 “소액주주가 임시주총에서 신규 감사를 선임하려는 것에 대해 회사 쪽이 부담을 느끼면서 임시주총 개최를 고의로 미루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한상 대한방직 이사는 “공시한 내용이라서 임시주총 자체를 안 열 수는 없다”면서 “현재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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