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쓰고 남은 전기로 도시 전력 확보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9.27 15:10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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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가 개발한 국내 최초 ‘양방향 충전기술’, 도시 스마트 그리드 핵심 기술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가 원자력에서 친환경 에너지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어떻게 유지·관리하느냐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이미 생성된 에너지를 어떻게 저장·보관하는가도 친환경 에너지 시장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에너지 저장 장치(ESS)’다. ESS 기술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분야다. 특히 최근 허리케인 ‘하비(Harvey)’와 ‘어마(Irma)’처럼 기상 이변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필요시 비상전력을 해당 지역에 신속하게 공급해야 하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ESS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전기차 4대면 하루 20가구에 에너지 공급

 

올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열린 자동차 행사의 메인 주제는 ‘전기차’ 또는 ‘에너지 저장 장치 기술’이다. 중국 전기차 메이커 ‘BYD’는 지난해 ESS 생산 규모를 188㎿h로 늘렸고, ‘테슬라’도 ESS 생산량을 2015년 40㎿h에서 지난해 186㎿h로 키웠다. 테슬라는 2014년부터 미국 네바다주 스토리 카운티에 세계 최대 규모의 리튬-이온 전지공장 ‘기가팩토리’를 건설 중이다. 약 60억 달러(약 6조6000억원)가 투입될 기가팩토리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모터스 CEO(최고경영자)는 “테슬라의 미래는 기가팩토리에 달려 있다”며 공장 건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양방향 OBC’ 개념도 © 현대모비스 제공·연합뉴스

ESS 기술의 발전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스마트 그리드 기술과 결합되면서 양방향 전략 송배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 누구나 쉽게 에너지를 생성·보관할 수 있으며, 스마트 그리드를 통해 자신이 확보한 전력을 국가나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시장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런 기술적 변화는 이미 상당부분 현실화된 상태다.

 

단적으로 전기차에 쓰고 남은 전력을 도시 전력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국내 최초로 현대모비스가 개발한 전기차 탑재형 양방향 충전기(양방향 OBC·Bi-Directional On Board Charger)가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기술은 V2G(Vehicle To Grid) 구현을 위한 핵심이다. 개념은 간단하다. 충전식 전기차를 전력망과 연결시켜 주차 중 쓰고 남은 전기는 전력망으로 다시 송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기차는 이동수단인 동시에 에너지 저장 장치가 된다. 현대모비스가 개발한 양방향 OBC 기술을 활용하면, 차량이 공급하는 전력을 가정이나 마을 등에서 비상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허리케인 하비나 어마처럼 자연재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자동차에 남아 있는 전기를 모아 비상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기차 한 대에 충전된 전력량은 얼마나 될까.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4대면 20가구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비상시 이보다 많은 전기차가 전력 송전에 참여할 경우, 여유 전력을 활용해 대규모 정전사태를 막을 수도 있다. 한 해 정전으로 생기는 산업계 피해액이 연간 6500억원인 걸 감안할 때 이번 현대모비스 기술의 경제적 가치는 굉장히 크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V2G 적용 차량이 약 10만 대 보급될 경우, 화력발전소 1기 발전용량인 약 500㎿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보급된 자동차의 20%만이 주행하고 나머지는 주차 중인 것을 감안하면 전기차를 통한 유휴전력 확보는 그만큼 더 유리하다. 실제로 일본·덴마크·미국·중국 등지에서는 V2G 시범사업이 한창이다.

 

현대모비스가 관련 기술을 개발한 것은 2015년부터 한국전력공사가 추진한 ‘V2G 실증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현대모비스는 이 사업에서 양방향 OBC 개발을 담당했다. 일반적으로 V2G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충전식 친환경차, 양방향 OBC, 양방향 충전소, 방전 요금체계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중 전력 변환의 핵심인 ‘양방향 OBC’는 시범사업 외에는 양산 사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관련 기술 업계에서는 미개척 분야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국내에서 양방향 OBC를 친환경차에 탑재해 안전 성능을 검증하고 실증사업을 통해 상용화 수준으로 개발한 것은 현대모비스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개발된 현대모비스의 양방향 OBC에는 어떤 기술이 적용됐을까? 이번 ‘양방향 OBC’에는 직류·교류를 양방향으로 변환하고 전압과 전력 주파수 등을 전력망과 동기화하기 위해 AC↔DC 컨버터, 승압·강압 컨버터 등 ‘양방향 전력제어 회로’가 적용됐다. 현대모비스는 가상 전력 시나리오에 따른 실차 검증을 올해 초부터 7월말까지 진행했다. 아울러 한전의 실시간 전력데이터와 연동한 실차 검증을 8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실차 검증은 전용 충전소가 배터리 효율과 용량 등 차량의 전력 상태를 진단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은 전력 공급량·비용·부하량 등을 분석한 가상의 시나리오에 따라 최적의 V2G 스케줄을 만드는 단계다. 이렇게 되면 차량은 이 데이터 신호를 받아 정해진 일정에 따라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게 된다.

 

 

8월부터 한전 실시간 전력데이터와 연동

 

관련 기술이 상용화에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부피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에 있어 부품의 크기는 차체를 키워 연비를 낮게 만드는 주범이다. 현대모비스의 ‘양방향 OBC’가 주목받는 이유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 부품 크기는 기존 아이오닉 친환경차의 단방형 충전기와 동일한 크기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충·방전 출력은 모두 전기차에 적합한 6.6kW급이다. 안병기 현대모비스 친환경설계실장(이사)은 “V2G는 2020년부터 국내에서도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양방향 OBC 크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에너지 손실률도 한층 더 낮추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대모비스 관계자도 “향후 모빌리티 시대에는 수많은 전기차들이 동시 충전을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한 전력 부하량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V2G는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는 이번 기술 개발로 2025년까지 30조원(약 267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글로벌 V2X(Vehicle To Everything) 시장에서 기술 선점 효과를 누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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