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 등기시장 불법 브로커 사냥감으로 전락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11.21 09:05
  • 호수 1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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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등기 브로커 사건’ 알고보니…명의 빌려 ‘수수료’ 떼주고 업무 쓸어가

 

지난 2013년 1월부터 경기도 고양시 일산 일대의 법무사들 사이에선 부동산 등기 사건이 자취를 감췄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건이 사라졌다는 아우성은 일산 일대를 시작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 갔다. 인근의 경기도 파주와 인천, 서울 서남권 지역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렸다.

 

의혹의 시선은 법무법인도 아닌 한 개인 변호사사무실로 향했다. 해당 변호사사무실은 경기도 일산, 파주와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부동산 등기 사건을 휩쓸고 있었다. 서울 은평구, 양천구, 구로구, 마포구는 물론 인천까지도 손을 뻗쳤다. 이들은 부동산중개업소들을 찾아 명함을 돌리며 다른 곳보다 알선료를 더 주겠다는 방식으로 사건을 수임했다. 덕분에 이 일대 등기 사건은 해당 변호사 사무실로 몰리게 됐다.

 

© 시사저널 이종현

 

명의 빌린 브로커, 등기 사건 싹쓸이

 

부동산 등기 사건을 싹쓸이한 임아무개씨는 지난 2013년 한 변호사에게 명의를 빌려 법률사무소를 새롭게 열었다. 사무실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한 변호사에게 매달 200만~250만원을 주기로 한 것이다. 과거 변호사·법무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부동산 등기 사건을 맡아 ‘돈벌이’를 시작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본사를 설립한 이후 서울 양천구와 마포구, 경기도 파주시, 인천 등에 지사까지 설립했다.

 

임씨는 사업 규모를 급속도로 키워 나갔다. 사무실을 늘리면서 동료들을 끌어모았다. 2016년에는 중간간부급 사무장만 30명으로 늘었다. 이들 아래 수십 개 팀이 운영됐다. 이들은 팀별로 서울 서남부, 경기도, 인천 일대 부동산중개업소들을 일일이 찾아 영업을 시작했다. 신규 아파트가 들어서면 수천 세대 등기업무를 한 번에 맡을 수 있는 점을 이용, 공인중개사 등과 결탁해 싹쓸이를 한 것이다. 이들의 ‘부동산중개업소 거래 현황’을 보면, 지사 한 곳이 거래한 부동산중개업소는 552곳에 이른다. 본사와 다른 지사들이 관리한 부동산중개업소들을 포함하면 수천 곳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단순히 명의를 빌렸을 뿐 아니라 등기 신청인들을 속여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등기업무 처리 과정에서 보수로 청구해야 할 금액을 세무서에 납부하는 세금으로 둔갑시키거나, 불필요한 항목을 추가해 금액을 부풀리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통상 700원이 필요한 열람 항목에 2만5000원을 청구했다. 인터넷뱅킹을 통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채권할인대행’ 항목에서 대행료로 8만7000원을 받는 식이었다.

 

이들은 2016년 12월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서울과 수도권 일대 3만2313건의 등기 사건을 맡아 114억9000만원 상당의 수수료를 챙겼다. 달아난 주범 임씨의 형을 비롯한 주요 직원들, 명의를 빌려준 변호사와 법무사 등은 11월2일 결국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일각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암묵적으로 손을 뻗쳐 ‘돈벌이’에 나선 변호사와 법무사들의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렸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1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불법·편법 등기신청 업무로 업무정지나 제명, 과태료, 서면경고 등의 조치를 받은 사람은 65명에 달한다.

 

관행처럼 자리 잡힌 알선료도 근본 문제로 꼽힌다. 공인중개사들이 알선료를 받고 특정 법무사나 변호사에게 등기 사건을 몰아준다는 것이다. 집을 산 사람들은 통상 공인중개사가 소개한 법률사무소나 법무사에게 등기 업무를 맡긴다. 수억원이 오가는 거래를 하면서 이사까지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서 수수료 등을 꼼꼼히 따져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등기 업무를 소개받은 법률사무소나 법무사가 공인중개사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소액을 챙겨주는 게 관행처럼 돼 있었다. 당연히 알선료를 더 주는 쪽에 등기 사건을 소개해 주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온라인 경매를 유도해 정해진 수수료보다 낮게 가격을 후려치는 ‘불법 등기 경매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서울시 영등포구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건당 10만원 이상 소개료를 주는 게 관행”이라며 “더 많이 준다고 하는 쪽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하다. © 시사저널 고성준

 

소문 무성했는데, 왜 못 막았나

 

등기 시장은 연간 1조~2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6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처리된 부동산 등기 사건은 1095만6000건에 달한다. 최소 수수료로 계산해도 1조원이 훌쩍 넘는다. 소송 대리권이 없는 법무사들이 주로 등기 업무를 대행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등기 시장에 변호사들이 속속 진입하기 시작했다.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졌다. 변호사들은 사무실 운영이 어려워지자 개인회생, 파산, 경매, 등기와 같이 과거에 접근하지 않던 비소송 영역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변호사까지 뛰어들어 이미 포화된 등기 시장에 무자격 브로커까지 활개 치고 있다. 임씨의 사례처럼 변호사나 법무사 명의를 빌리는 불법이 성행하는 것이다. 지난 7월에는 전직 사무장이 길에서 주운 가짜 자격증을 도용해 10여 건의 등기업무를 처리한 사건도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브로커가 기승을 부릴 때까지 이를 제어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브로커가 개입한 법률사무소를 사전에 제어할 기회가 있었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칙에 따라 사무직원을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신고해야 한다. 변호사 1인당 사무직원 5명까지 채용하는 것이 통례다. 사무직원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면 브로커 사무실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전에 관리·감독을 할 수 있었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사무직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사무 보조 업무보다는 독자적인 활동을 통해 별도의 수임을 받을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관계당국이 알면서도 눈감아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집을 사고팔 때는 본인이 직접 등기소에 신청하거나 변호사나 법무사를 대리인으로 해서 등기소에 권리변동을 신청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당연히 자격이 없는 무자격자들이 서류를 제출할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일선 등기소에선 이들을 걸러내지 못했다. 실제로 임씨 일당은 대부분의 등기 서면을 등기소를 직접 방문해 제출했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별로 수천 건에 달하는 등기 사건을 무자격자가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2015년에도 변호사 명의를 빌려 개인회생 사건을 맡아 부당이득을 챙긴 브로커 일당이 적발됐다. 등기 싹쓸이 사건도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변호사 사무원 고용 제한부터 부활해야”

 

한 법무사는 “브로커들이 한꺼번에 수천 건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제출사무원증이 없는데도 마구잡이로 서류를 접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등기신청 서류에 현금을 끼워서 제출하면 제출사무원증이 없어도 받아준다는 소문도 있다”고 밝혔다. 대한법무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현재 등기시장은 불법 브로커의 손쉬운 사냥감으로 전락했다”며 “자격사 대리인(변호사나 법무사)에 의한 본인확인제도의 법제화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등기 브로커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변호사가 고용하는 ‘사무원의 수’다. 과거 변호사는 1인당 사무원을 5명까지 둘 수 있었다. 하지만 2008년 로펌의 대형화를 유도한다는 이유로 변호사법을 개정하면서 이 규정이 사라졌다. 무제한으로 사무원을 고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후 변호사 한 명이 다수의 사무원들을 고용해 팀 단위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매월 일정액의 대가를 받고 사건을 수임하는 등 브로커를 양산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브로커들이 주로 변호사의 명의를 빌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변호사의 사무원 인원 제한 규정을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는 “실제로 사무원을 수십 명 고용해 개인회생 사건만 전담하는 변호사들이 있다”며 “팀 단위로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게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히려 대형 로펌일수록 변호사 1인당 사무원 수가 적기 때문에 로펌 대형화라는 정책 목표는 실패했다”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조속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수의 변호사들 또한 사무원 수 제한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2017년 5월 한 법무법인이 소·중·대형 로펌 62곳의 변호사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변호사 90%가 사무원 수 5명 제한에 동의했다.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직접 사건을 수임해 관리·감독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정상적인 법률사무소는 5명 이상의 사무원이 필요한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태영 대한법무사협회 전문위원은 “불법 브로커가 성행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며 “그동안 등기 사건이 제출사무원에 의해 합법적으로 접수·처리됐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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