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vs 민사판례연구회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12.19 09:20
  • 호수 14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원 내 거대 학술단체, 정권마다 반복되는 ‘사조직’ 논란

 

법관 사회는 직역(職域)의 특성상 개인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지 않는 게 통례다. 곧잘 인용되는,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경구(警句)는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야 하는 그들의 직업적 소명임과 동시에 법원 조직의 특수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최근 개인을 대신해 법원 내 학술단체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법원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되면서부터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두 연구회 출신들이 중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유남석 헌법재판관과 박정화 대법관도 기용됐다. 11월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김영훈 서울고등법원 판사가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국 판사 3000여 명의 임용·승진·배치·평가 등의 업무를 총괄 담당하는 자리다. 법조계 안팎에선 사실상 ‘우리법연구회 시대로 불렸던 노무현 체제의 부활’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 보수정권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주요 요직을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인사들이 차지했다. 양창수 전 대법관도 임용 당시 민사판례연구회 회장이었고,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황식 전 대법관·국무총리, 김용덕 대법관 등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승승장구했다. 법원 내 인사권을 쥐고 있는 대법원 법원행정처 요직에도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홍승면 전 사법지원실장 등 민사판례연구회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민사판례연구회. 올해 1월 법조계의 최대 화두였던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또한 이들의 힘겨루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들 단체는 법원 내 대표적인 학술단체로 꼽히지만 정권에 따라 주요 요직에 전면 배치되면서 ‘법원 내 사조직’ ‘법조계 하나회’라는 비판까지 듣고 있다. 법조계 주변에서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연 법조계의 주도권이 보수 성향의 민사판례연구회에서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로 넘어간 것일까. 이들 조직의 실체를 집중 추적해 봤다.

 

© 시사저널 고성준

 

우리법연구회, 盧·文 정부에서 승승장구

 

1988년 6월10일 밤 9시 서울 서교호텔 인근의 맥줏집에 4명의 소장판사가 모였다.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실무수습을 받고 있던 시보 한 명도 동석했다. 이들은 6·29 선언 이후 사법부 수뇌부의 개편을 주장하는 성명을 내기로 뜻을 모았다. 닷새 뒤 서울·수원·부산·인천 지역 소장판사 430여 명은 대법원장 선임 문제와 관련, ‘법원 독립과 사법부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했다. 김용철 대법원장을 퇴진시키고 그 후임으로 이일규 대법원장을 취임케 한, 이른바 ‘2차 사법파동’은 이렇게 탄생했다. ‘맥줏집 회동’을 가진 이들은 하나같이 29·30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당시 김종훈(인천지법), 유남석·이광범·한기택(이상 서울민사지법) 판사와 사법연수원 2년 차인 심규철 시보였다. 이와 별도로 법학도서 읽기 모임을 갖고 있던 강금실 판사 등 4명의 소장판사는 1988년 10월9일 첫 법이론 세미나를 갖는다.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법학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1년 뒤 이 모임은 우리법연구회란 정식 학술단체로 출범한다. 회칙을 만든 사람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우리법연구회는 창립 이후 매월 한 차례 월례 세미나를 갖고 헌법, 노동법, 경제법 이론을 개관하는 모임을 이어갔다. 회원들은 각자 자신이 발제한 주제의 논문을 발표하는 한편 법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시사적 문제들을 요약·정리해 토론해 왔다. 국가보안법, 북한헌법, 사상(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 근로기준법 등 토론 주제로 삼았던 영역은 무척 다양했다.

 

1993년 25명에 불과했던 우리법연구회 회원은 1998년 90여 명으로 늘었다. 1995년 이전에 가입한 5명을 제외하곤 더 이상 변호사를 신규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판사 모임으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 아닌 판사들도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모임의 구성원들도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법연구회는 회비(월 1만원)로만 운영됐으며, 외부 지원은 전혀 받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2월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법연구회는 노무현 정부 이전까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자생적 모임이었다. 이들 단체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노무현 정부 때다. 법무부와 대법원 요직에 우리법연구회 출신 멤버들이 중용됐기 때문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시환 전 대법관, 김종환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모두 우리법연구회 멤버였다. 법원 내에선 자연스레 당시 정부와 성향을 같이하는 사조직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법원에 이런 단체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부장판사급 이상은 모두 탈퇴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후 주요 멤버들이 탈퇴하면서 해체됐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법원 내 학술단체로 등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멤버 일부가 2011년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새롭게 만들면서 후신(後身)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남석 헌법재판관이 임명되면서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자연스레 ‘법원 내 하나회’란 꼬리표도 뒤따랐다.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법관이 학술 연구 등을 목적으로 단체 활동을 하는 것을 적극 장려해야 한다”며 “사조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유 헌법재판관도 “우리법연구회는 법원 내 학술단체로 기능하고 있고 발족 당시 편향적인 사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며 “판사들은 어떤 활동을 해도 편향된 시각에서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한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는 법원 내부망에서 가입 버튼만 누르면 들어갈 수 있는 학술단체”라며 “어디 소속인지로 판사 개인의 성향을 분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알려진 한 판사는 “얼마 전 언론에서 내 이름을 거론하며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라고 적었더라”며 “가입한 뒤 회비만 내고 세미나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나를 쉽게 분류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6월19일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외압 논란을 계기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소집됐다. 2003년과 2009년에 이어 세 번째다. © 사진=연합뉴스

 

적폐로 몰리는 ‘민사판례연구회’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와 대척점에 있는 민사판례연구회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흔히 ‘보수 엘리트 판사 모임’으로 알려진 조직이다. 《민법》 시리즈의 저자인 곽윤직 서울대 법대 교수의 제자 10여 명이 1977년에 만들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초 학계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회원들이 사법시험을 통해 판사로 임용되면서 법원 안에서 ‘이너서클’ 조직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민사판례연구회는 초창기부터 사법연수원 기수별로 2~3명만 뽑았다. 임용 성적이 손가락 안에 드는 우수한 소수에게만 은밀하게 가입을 권유했다.

 

이들의 학술지인 《민사판례연구》는 2001년 12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을 만큼 학술 가치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민사판례연구회는 폐쇄적인 조직의 특성에 빗대 ‘법조계의 진짜 하나회’라는 비판도 함께 받았다. 기존 회원의 추천을 통해 신입 회원을 은밀하게 영입하는 방식이 과거 군의 ‘하나회’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우리법연구회와 전혀 달랐다. 회원의 대부분이 서울대 법대 출신이며, 초창기 여성 회원을 배제했다. 교수들도 다수 활동하긴 했으나, 이들도 역시 서울대 법대를 나와야만 가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회원들이 민사판례연구회 소속인 사실도 공개하기를 꺼렸다.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비판이 계속되자, 민사판례연구회는 2010년 무렵 기존에 고수하던 신입 회원 영입 방법을 변경했다. 판사가 가입을 신청하면 심사를 거처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신입 회원 자격도 비서울대·여성 등으로 넓혔다.

 

민사판례연구회는 여전히 ‘에이스 학술단체’로 여겨지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용훈 전 대법원장 등이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민사판례연구회는 법원 주요 요직을 대부분 차지했다. 2012년 11월부터 2014년 9월까지는 대법관 14명 가운데 6명이 속하기도 했다. 사법부의 또 다른 권력 조직인 법원행정처에서도 민사판례연구회 출신들이 다수 활동했다.

 

특히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판사들은 대부분 법원을 떠난 뒤 김앤장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연스레 민사판례연구회에는 해당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다수 가입돼 있다. 대형 로펌이 소위 에이스 판사들을 영입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전관예우의 통로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최근 민사판례연구회 소속을 적폐(積弊)청산 대상으로 보는 분위기도 있다. 최대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가 이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변협은 “2015년 2월 연구회의 소속 회원 현황에 따르면, 연구회는 다수의 전·현직 대법관과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판사를 비롯해 특정 대형 로펌 소속의 다수 변호사로 구성돼 있다”며 “연구회가 고위 전·현직 판사들의 사조직으로 전락해 법관 순혈주의와 엘리트주의의 폐단을 낳고 전관예우의 통로가 되는 것을 심히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사판례연구회는 폐쇄적 사조직화와 연고주의를 탈피해 학술단체로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올해 초 터진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은 이들 조직 간의 견제 과정에서 나왔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논란 자체가 국제인권법연구회 모임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특정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해 관리한 문건이 존재했다면, 그 자체로도 파괴력이 엄청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가조사를 진행한 뒤 사법부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특정 단체 출신들이 대거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 뒤에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출발점은 2015년 8월이다.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소모임에서 법원행정처가 강력히 추진하던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찬반 토론을 벌였다. 대법관이 직접 심리하지 않는 상고심 사건을 맡을 법원을 별도로 설립하자는 주장에 대해 참석자 18명이 반대하고 1명이 찬성했다는 내용을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게시했다. 법원행정처는 해당 주제들이 과거 진보 성향 판사 모임 우리법연구회와 비슷하다며 이들을 주시했다. 윤리감사관실에서는 해당 활동이 법관 윤리강령 등에 어긋나는지를 검토하기도 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규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년 임기 내내 “해당 활동은 오해와 부작용 소지가 있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올해 1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주재한 실장회의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학술대회 취소 △내부행사로 축소 △국제인권법연구회 조치 등을 담은 대응방안이 보고됐다. 특히 대법원 간부가 연구회와 관련해 행사 연기와 축소 등 부당한 지시를 내린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더 큰 의혹이 제기됐다. 복수의 판사들로부터 판사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일종의 파일을 관리했고, 이 파일에는 비밀번호가 걸려 있다는 내용이었다.

 

법원 안팎을 뒤흔든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을 놓고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법원이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명단을 관리했다는 의혹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였다. 스모킹건으로 여겨졌던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나온 반쪽짜리 결과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블랙리스트는 없지만 찍힌 판사들은 있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도출한 셈이다. 이에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이 구성되고 법원행정처 컴퓨터 등 추가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법원행정처 컴퓨터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서다. 조사결과에 따라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학술모임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면 사법부 전체가 편향적으로 흐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관은 내년 1월2일 퇴임하는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의 후임으로 안철상 대전지방법원장과 민유숙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임명 제청했다. 일단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자를 배제하면서 한숨은 돌린 상황이다.

 

하지만 내년 2월 정기인사 때 ‘태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제기된다. 당장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인사총괄심의관 자리에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김영훈 판사가 앉게 됐다. 정기인사 과정에서 특정 단체 소속의 인사가 대거 중용되거나 배제될 경우, 법원 사조직 문제는 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