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우산 의존 말고, 北과의 적극적 대화 필요”
  • 김경민 기자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5 16:33
  • 호수 147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독 인터뷰] ‘노벨평화상’ 받은 핵무기폐기국제운동 팀 라이트 아시아본부장

 

“핵무기가 실제 사용됐을 경우에만 치명적이라고 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 없다. 핵무기가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의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핵무기는 세계에 광기를 조달하며 궁극적으로 인류를 식민지화한다.”

 

‘시드니 평화상’을 수상한 인도의 사회운동가이자 소설가 아룬자티 로이의 1999년 저서 《생존의 비용》은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핵무기는 사용 여부를 떠나 그 존재만으로도 인류 평화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지난해 7월7일(현지 시각) 유엔에선 핵무기 전면폐기와 개발금지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국제조약이 채택됐다. 이른바 ‘핵무기 금지조약’이다. 이 조약은 기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대체하는 것으로, 핵무기의 사용·보유·생산·실험·배치·운송 등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인류의 평화’를 목표로 하는 새 조약 채택 뒤엔 숨은 공로자가 있다. 국제 비정부기구연합체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다. 핵무기 폐기를 위해 2007년 발족한 이 단체는 101개국에 468개 협력단체들을 갖고 있다. 지난해엔 유엔의 핵무기 금지조약을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새로운 조약이 국제사회에 대한 핵무기 위협을 한 단계 완화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지만, 현실성 논란도 있다. 이 조약 채택 당시 유엔 회원국 3분의 1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데다, 공식 핵보유 5개국(미국·러시아·영국·중국·프랑스)과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4개국(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북한)도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19일부터 조약에 참여하는 51개국이 공식 서명에 들어갔지만,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현재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는 ‘핵무기 핑퐁’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핵 드라이브에 또 한 번 시동을 걸었다. 그는 1월30일(현지 시각) 국정연설에서 국방예산 증액을 촉구하며 “적대행위”를 막기 위해 핵무기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음 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유엔 사무총장에게 “미국의 핵전쟁 도발 책동을 완전히 중지시켜 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상황은 여전히 위태롭게 굴러가고 있다. 시사저널은 1월말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의 팀 라이트(Tim Wright) 아시아본부장에게 서한을 보내 최근의 북핵 이슈와 한반도 상황에 대해 물었다.

 

2017년 노벨평화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팀 라이트 핵무기폐기국제운동 아시아본부장 © 사진=Xinhua 연합

 

핵무기폐기국제운동은 핵우산이란 개념 자체에 반대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핵무기가 가진 핵 억지력이 상당하다고 보는 시각도 많은데.

 

“핵우산이란 개념이 성립하려면 핵무기의 존재가 전제된다. 핵무기 보유는 때론 그 자체로 핵무기 사용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우리 단체가 핵우산 개념을 반대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의 핵우산 의존을 그만둔다면 핵무기 축소라는 전 세계적 목표 실현에 더 강력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다. 일각에선 핵우산이 핵무기화를 둘러싼 북한의 위협적인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핵우산이 어떤 방향으로든 북한 정권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근거는 없다. 핵 억지력에 기대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핵무기 폐기 및 축소를 바라는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입지만 감소시킬 뿐이다.”

 

 

한국은 주권국가로서 비핵화 문제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정학적 문제 등 외부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미-북 간의 고조된 긴장감은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지구적 사활이 걸린 문제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이 긴장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해 적절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북한 양국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도록 촉구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새로운 유엔 핵무기 금지조약에 서명하고 비준에 참여함으로써 이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일본과 중국도 한반도 비핵화에 있어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아베 일본 정부는 비핵화 문제에 있어 강력한 리더십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의 여론이 비핵화라는 대의명분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단 점이다. 중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을 멈추도록 설득해야 한다. 또한 중국 스스로도 오랜 시간 미뤄온 핵무기 축소 의무를 완수해야 할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평화적인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될까.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는 모두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다. 둘 다 비핵화라는 전 지구적 목표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른 국가들과 함께 비핵화 목소리를 높이고 관련 행보를 이어가야 한다.”

 

 

북한은 극단적인 군사정책을 취하고 있다. 국가 명운을 여기에 걸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핵무기를 버릴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는 국제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핵무기 축소를 위한 압박 과정 속에서 성취될 수 있다. 지난해 채택된 새로운 유엔 핵무기 금지조약은 이런 드라이브에 추동력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조약에 따르면, 지구상 어느 국가에서도, 어떠한 형태의 핵무기도 허락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우리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길 바란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동계올림픽이 한반도 문제에 긍정적인 고리가 될 수 있을까.

 

“평화를 위한 유일한 해법은 지속적인 대화뿐이다. 이런 점에서 평창올림픽은 매우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 북한 선수들의 참가 소식은 한반도 평화에 있어 매우 반가운 진전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