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 부는 오타니 쇼헤이 열풍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9 15:26
  • 호수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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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개막 10게임 만에 LA 에인절스 투타 겸업 선수로 자리매김

 

야구팬들은 LA 다저스 클레이튼 커쇼를 향해 ‘인간계’가 아닌 ‘신계(神界)’의 투수라고 부른다. 그만큼 완벽한 투구를 펼치고 있다는 뜻이다. 올 시즌에 커쇼한테 도전장을 내민 선수가 있다. ‘외계인설’에 휘말릴 정도로 폭발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24·LA 에인절스)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이도류’ 선수인 그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데뷔 후 연일 화제를 몰고 다니며 인기몰이에 나섰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오타니를 아메리칸리그 ‘금주의 선수’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100마일의 직구에 88마일 변화구를 장착하고 2승 3홈런(4월12일 현재)을 기록한 키 크고 잘생긴 만화 캐릭터 오타니 쇼헤이. 그의 얘기를 들어본다.

 

메이저리그는 오타니 쇼헤이 외에도 다르빗슈 유(시카고 컵스),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마에다 겐타(LA 다저스),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매리너스) 등 일본 투수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오타니가 미국 무대를 노크하기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를 취재하는 일본 기자들은 주로 이 4명의 선수를 돌아가며 취재했다. 그러나 오타니가 LA 에인절스에 입단한 올 시즌부터 넓게 퍼져 있던 일본 기자들이 대부분 LA로 몰려들었다. 오타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기 위함이다.

 

오타니 쇼헤이 LA 에인절스 선수 © 사진=AP연합


 

80여 개 매체 100여 명 기자 몰려

 

LA 에인절스의 스프링캠프가 마련된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선 오타니 쇼헤이 입단 후 연일 신기록이 경신됐다. 창단 후 가장 많은 일본 기자들이 에인절스 캠프를 취재한 것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기자들만 100여 명. 매체는 80여 곳으로 알려졌다.

 

필자와 친분이 있던 일본 여기자 미카는 오타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정말 많은 일본 매체들이 오타니를 취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느 기자도 오타니를 단독 인터뷰하지 못했다. 일본 기자들은 오타니와 인터뷰를 못할 뿐만 아니라 악수도, 가벼운 인사조차 나눌 수 없다. 다저스의 마에다하고는 쉽게 악수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여기선 오타니의 얼굴조차 가까이서 보기 어렵다. 일본에서 자란 빅 스타라 그런지 다르빗슈 때와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을 보내기 전까진 최대한 선수한테 시간과 공간을 주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취재하기가 너무 힘들다. 취재진들이 많아 머리가 아플 정도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오타니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편이었다. 그는 연일 자신에게 향하는 미디어의 취재 경쟁과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엷은 미소를 띤 채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 그런 압박이 있더라도 최대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집중하려 한다.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을 때는 공 하나하나에 신경 써서 던지려고 노력한다. 타석에 들어설 때는 상대 투수의 공에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스윙을 찾아가는 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이 메이저리그다. 처음부터 많은 걸 얻으려고 욕심을 내기보단 주어진 상황을 잘 극복해 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도류’가 아닌 ‘이류’라는 혹평받기도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오타니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투수로 나선 경기에선 2와 3분의 2이닝 9실점으로 평균자책점 27.00을 기록했고 타자로선 32타수 4안타로 침묵하며 타율 0.125에 그쳤다. ‘이도류’가 아닌 ‘이류’라는 비아냥거림이 넘실거렸다. ‘거품 아니냐’ ‘고교 수준만도 못하다’는 혹평도 뒤따랐다. 이와 관련해 오타니는 “지금은 공과 마운드 등 모든 부분에 적응하고 있는 과정이다. 내가 상대하는 타자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구위와 투구 메커니즘을 체크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가능하다면 많은 타자들을 상대해 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발견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정규시즌이 시작되면서 오타니는 반전 야구를 선보였다. 투수뿐 아니라 우려했던 타석에서까지 맹타를 이어가며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로 등극한 것이다.

 

오타니는 투수 데뷔전이었던 4월2일 오클랜드전에서 6이닝 3피안타(1홈런) 6탈삼진 1볼넷 3실점을 기록하며 시범경기에서의 부진을 깨끗이 씻어냈다. 100마일에 육박하는 포심 패스트볼과 전매특허와 같은 고속 스플리터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이 기세를 몰아 4일 타자 데뷔전인 클리블랜드전에서는 1회 첫 타석 2사 2, 3루에서 3점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상대 투수는 통산 피안타율이 0.180에 불과했던 클리블랜드의 조시 톰린이었다. 에인절스 동료들은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오타니를 외면하다(데뷔 첫 홈런을 장식한 선수에게 행하는 의식) 오타니가 선수들에게 다가가 기쁨을 나누려 하자 모두 달려들어 환호를 보내며 오타니의 데뷔 첫 홈런을 축하했다. 같은 날 오타니는 멀티히트까지 작성했다. 3회에 내야 안타, 8회에 중전 안타를 치는 등 하루에만 3안타를 몰아쳤다.

 

오타니는 일본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부터 투타 겸업에 대해 숱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모두가 걱정했던 건 체력이었다. 투수조에서 투수들과 연습하다가 어느 순간 타자들이 수비 훈련하는 곳에 합류하는 오타니의 모습은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오타니는 이런 시각에 대해 분명한 의지를 나타냈다.

 

“체력은 전혀 문제가 없다. 만약 어려움을 느꼈다면 이런 방식의 야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로선수는 자신의 의지보다 구단의 생각이 중요하다. 만약 구단이 선수의 투타 겸업을 싫어한다면 난 구단의 선택을 따라야 한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투수와 타자 중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냐고. 아직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 계속 공도 던지고 타격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팀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했던 게 투타 겸업을 보장해 주는 팀이었다. 그 팀이 LA 에인절스였다.”

 

오타니 쇼헤이가 4월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2018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홈런을 바라보고 있다. © 사진=AP연합


 

오타니는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시즌 종료 직후 포스팅 제도를 통해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다.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27개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오타니는 27개 팀에 6개 항목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답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6개 항목은 △오타니의 투수·타자로서의 능력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나 △선수 육성 시스템 메디컬 트레이닝 방식 △선수들의 훈련 방식에 대한 철학과 시설에 대해 설명해 달라 △마이너리그와 스프링캠프 시설에 대해 묘사해 달라 △오타니가 각 팀의 연고 도시에 어떻게 문화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대책을 상세히 설명해 달라 △오타니가 팀 문화에 어떻게 잘 녹아들 수 있는지 비전을 제시해 달라 △오타니가 왜 이 팀에서 행복하게 뛸 수 있는지를 설명해 달라였다.

 

오타니와 에이전트는 1차 서류 심사를 통해 7개 구단을 추렸고, 7개 구단과는 오타니가 직접 참석한 상태에서 면접을 치렀다. 7개 구단은 LA 다저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애틀 매리너스, 시카고 컵스, LA 에인절스, 텍사스 레인저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LA 다저스는 오타니와의 면접에서 임팩트를 주기 위해 팀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리더 저스틴 터너, 로버츠 감독을 대동하고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브루스 보치 감독을 비롯해 리더 버스터 포지를 데려갔다. 모두 비시즌 휴가를 즐기고 있는 팀의 리더를 일본인 투수로부터 면접을 ‘당하는’ 자리에 동반한 것이다. 이후 클레이튼 커쇼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거대한 시간 낭비였다”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30개 팀 중 27개 팀에서 쏟아진 러브콜

 

오타니가 시범경기에서 부진했을 때 메이저리그에서 그에게 냉소적인 시각을 보낸 것도 면접 해프닝이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오타니의 부진과 관련해 메이저리그 선수들 인터뷰 때마다 좋지 않은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필자가 접한 한 메이저리그 선수는 “만약 오타니가 투타로 모두 성공한다면 메이저리그 선수들 모두 옷을 벗어야 한다”고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오타니가 타석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배경에는 타격폼 수정이 존재한다. 오타니는 원래 오른 다리를 들고 치는 레그킥 타법을 선호했다.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자 3월27일 마지막 시범경기였던 LA 다저스전부터 다리를 들지 않는 타격 자세로 바꿨다. 그리고 데뷔 첫 타석부터 홈런을 터트리며 3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올린 것이다. 이에 대해 오타니는 “비디오를 통해 타격폼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100마일 이상의 빠른 볼에 대처하려면 레그킥 타법을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코치의 도움으로 짧은 시간에 타격폼을 수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가 오타니한테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타격폼을 수정했고 데뷔 첫 타석부터 홈런을 날리는 파워와 배짱은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KBO리그에서 뛰는 한 선수는 필자를 만나 “오타니처럼 짧은 시간에 레그킥을 없애고 몸통 회전으로만 스윙하면서 홈런을 생산해 내는 건 상상이 안 되는 일”이라며 “오타니는 달라도 뭐가 다른 선수인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4월9일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했던 오타니는 7회 1아웃까지 퍼펙트 피칭을 펼쳤다. 하지만 이후 마커스 세미엔에게 좌전 안타를 허용, 아쉽게 퍼펙트가 무산됐다. 완벽에 가까운 투구를 펼쳤던 오타니는 이날 시즌 2승을 올렸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퍼펙트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매 타자에게 집중했다”는 소감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최고의 투구를 했던 것 같다. 노히트는 의식했지만 퍼펙트는 생각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안타가 나올 거라 예상했기 때문에 안타 맞은 이후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했다. 사실 캠프에서 힘든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정규시즌 등판에서 이토록 좋은 모습을 보일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매일 좋아지려고 노력한다. 아직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간들이다. 남은 긴 여정을 떠올리며 벽에 부닥칠 때마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


오타니 쇼헤이(왼쪽)가 연습 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사진=LA 에인절스 제공


 

감독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오타니의 진가”

 

오타니의 활약에 에인절스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시아 감독은 오타니의 강철 마인드를 높이 평가했다.

 

“오타니는 시범경기 동안 메이저리그 투수들, 타자들을 파악하고 조정(수정)에 들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흡수력이 뛰어나다는 걸 느끼고 있다. 실력뿐 아니라 정신력이 무서울 정도다. 시범경기 동안 극심한 부진에 빠졌을 때도 그는 열심히 공을 보고 있고 메이저리그를 배운다고 말했다. 엄청난 압박과 부담을 견뎌내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오타니의 진가라고 말할 수 있다.”

 

LA 에인절스는 오타니를 영입하면서 홍보팀에 일본인 직원을 새로 채용했다. 그레이스 맥나미라는 여성으로 오타니 전담 직원이다. 그는 노모 히데오가 LA 다저스에 입단했을 때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일하게 됐는데 노모 덕분에 박찬호하고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레이스 맥나미는 오타니의 야구 실력 외에 인성에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자존심 강한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이에서 오타니는 쉽게 어울릴 수 없는 캐릭터다. 수많은 미디어들이 오타니를 쫓아다니고 오나티한테만 인터뷰 요청이 몰려드는 등 오타니 신드롬으로 인해 다른 선수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타니는 선수들과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오타니가 먼저 선수들에게 살갑게 다가간다. 마운드와 타석을 벗어난 오타니는 24살 나이의 어린 청년일 뿐이다. 성격이 부드럽고 친절한 편이라 선수들도 오타니를 좋아하고 챙긴다. 팬 서비스에도 열린 마인드를 갖고 있어 홈 팬들은 물론 원정 팬들도 오타니 이름을 부른다. 메이저리그에선 아주 낯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오타니는 이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치고 던지는 게 다른 선수한테는 재주로 보일 수 있지만 나한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단이 허락하는 한 계속 마운드와 타석을 오갈 수 있는 선수로 인정받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오타니의 바람이 현실로 이뤄진 셈이다.

 

한편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김선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오타니 쇼헤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감을 나타냈다. 

 

“정말 적응력이 뛰어난 선수다. 100마일의 빠른 볼과 스플리터는 쉽게 대응할 수 있는 공이 아니다. 오타니의 빠른 볼과 변화구는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다. 억지로 구속을 올리려는 투구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파워를 자랑한다. 타석에서도 빼어난 스윙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바깥쪽보다는 몸쪽 대처 능력을 지켜봐야 하는데 워낙 야구 지능이 뛰어난 선수라 이 부분도 곧 대응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상만 없다면 오타니의 상승세는 시즌 후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야구인으로서 이런 선수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게 매우 흥미롭고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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