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이 딸 사퇴시킨다?… “족벌경영 인식의 방증”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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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조현민 가만히 있는데 아버지가 나서서 해임 발표… “한진그룹을 가족기업으로 인식”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조현아(44)‧조현민(35) 등 두 딸의 직책을 모두 내려놓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열흘 전 불거진 조현민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회장이 일방적으로 해임의 뜻을 드러낸 것이다. 이를 두고 임원에 관한 법적절차를 무시한 ‘족벌경영’이란 비판이 나온다. ‘갑질’ 비판 여론을 의식해 내놓은 자구책이 또 새로운 비판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조 회장은 4월22일 사과문을 통해 “저는 조현민 전무에 대해 대한항공 전무직을 포함하여 한진그룹 내의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하고,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도 사장직 등 현재의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는 이사진 사퇴의 결정권을 회장 본인이 다 쥐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다.

 

 

2017년 9월19일 오전 경찰청으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영종도 호텔 건립 비용을 전용 자택을 회사자금으로 수리, 개축했다는 혐의로 소환되 청사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조양호 회장, “조현아·조현민 사퇴시키겠다”

 

하지만 상법에 따르면, 등기임원의 해임은 주주총회 결의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조현민 전무는 ‘조에밀리리(Cho Emily Lee)’란 영어 이름으로 칼호텔네트워크 등 한진그룹 계열사 3곳의 대표이사(등기임원)에 등재돼 있다. 조현아 사장의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직도 등기임원 자리다. 법적으로 이 둘의 해임을 결정할 수 있는 주체는 그룹 회장이 아니라 각 회사의 주주총회다. 

 

조 회장은 주주총회를 전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그는 칼호텔네트워크를 100% 자회사로 둔 한진칼의 최대주주다. 단 한진칼에 대한 조 회장의 지분율은 17.84%에 불과하다. 친족 등 우호지분을 모두 더해도 30%가 채 안 된다. 나머지 70%는 국민연금과 한국투자신탁운용, 그리고 소액주주 등이 나눠 갖고 있다. 즉 이들이야말로 칼호텔네트워크 주주총회에서 임원의 인사권을 쥔 실질적 오너인 셈이다. 



임원 해임은 주총 걸쳐야…회장 혼자 마음대로 못 해

 

다만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고도 등기임원이 물러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당사자가 직접 사임하겠다고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논란 당사자인 조현아 사장과 조현민 전무 본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조 전무는 4월15일 직원들에게 사과 이메일을 보냈지만, 여기에 사퇴하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잘못한 임원은 거취를 표명하지 않았는데 정작 회장이 나서서 수습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김경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회계사)는 “분명 문제인식을 느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아버지가 딸의 임원직 사퇴 여부를 언급한 걸 두고 “경영권 남용”이란 분석도 있다. 고학수 서울대 법대 교수는 “조양호 회장이 오너라 해도 상법상의 절차까지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니다”라며 “한진그룹 전체를 가족기업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 회장 개인의 사과문을 통해 딸의 사퇴가 정해진다면, 그 반대로 회장 개인의 의사결정을 통해 (딸이) 아무 직위로나 언제든 복귀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걸 공식 선언한 셈”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2017년 7월27일 오전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인천 중구 운서동 대한항공 정비격납고에 마련된 차세대 항공기 '보잉 787-9' 기내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조원태 사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한진그룹 전체를 가족기업으로 인식”

 

일례로 조현아 사장은 ‘땅콩 회항’ 파문을 일으킨 뒤 2014년 12월 대한항공 부사장 등 그룹 내에서 맡고 있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때는 본인이 직접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후 올 3월29일 조 사장은 칼호텔네트워크 주주총회에서 사장(등기임원)으로 선임됐다. 그 배경엔 조양호 회장의 지지가 있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4월23일 모두발언을 통해 “족벌경영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것은 조씨 일가가 아니라 투자자이고 주주들”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조 사장이 경영 복귀를 앞둔 시점은 공교롭게도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종양제거 수술을 받은 날이었다. 그는 땅콩회항을 폭로한 뒤 극심한 스트레스로 종양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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