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머리로 익히지 말고 입에 붙여라”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6 15:52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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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철재 변호사가 들려주는 영어 공부의 ‘비법 아닌 비법’ 《보통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영어책》

 

“블랜치와 소피아는 모두 60대에 접어든 여인이다. 소피아는 자만심이 강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다. 블랜치가 ‘내가 근무하는 미술관에서 희귀한 골동품을 찾는 일을 맡게 됐다’고 소피아에게 말했다. 그러자 소피아가 대답했다. ‘보나 마나 네가 ‘슈인(shoo-in)’인데.’”

 

갑자기 박장대소가 터졌다. 기자는 당황해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이철재 변호사는 “‘shoo-in’은 원래 승부조작으로 우승한 말을 뜻하는데 요즘은 ‘쉽게 이긴 승자’를 뜻한다”고 했다. 즉 블랜치가 골동품 취급을 받을 만큼 늙었으니, 골동품 찾는 일에도 제격이라는 내용의 유머다. 이 변호사는 “이 유머를 한 번에 알아들었다면 영어를 정말 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의 영어 실력은 아닌 셈이다. 그래도 이 변호사는 전혀 실망할 필요 없다는 위로를 건넸다. 이런 비유적 표현은 미국 문화까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변호사는 “언어라는 게 진공 상태에서 불쑥 생겨난 게 아니라 문화를 토대로 형성됐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영어를 잘한다. 그런데 숙어나 관용구까지 알아들으려면 좀 더 들어가야 한다. 문장의 뜻은 알겠는데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의 소설도 읽고, 역사도 알아야 한다.”

 

‘영어 속성 마스터 노하우’쯤을 기대한 기자의 맥을 빠지게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철재 변호사는 “그런 게 있다면 ‘단기속성 다이어트’ 같은 과장 광고”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영미권 문화를 굳이 공부하려 하지 말고 계속 가까이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변호사이자 법학 박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국내 유명 사설학원 등에서 회화강의도 했다. 그는 “영어는 암기과목이 아니다”며 “그냥 잊어버리고 찾아보길 반복하며 끊임없이 입에 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리로 영어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뇌를 거치기 전에 튀어나올 수 있도록 되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철재 변호사 © 시사저널 최준필


 

“‘영어 속성 마스터 노하우’란 없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영어를 보는 눈이 트인다고 한다. 그 예로 이 변호사는 본인의 경험을 들려줬다. “중학교 1학년 때 ‘마인(mine)’이란 단어를 배웠다. 하루는 영어로 파인애플을 써보려고 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면 되지만, 그땐 영어사전도 잘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계속 생각했다. ‘마인과 파인의 발음이 비슷한데, 단어를 조금 바꿔서 애플과 붙이면 안 될까’라고.”

 

결국 그는 단어 ‘pineapple’의 철자를 사전에서 찾아보지 않고 맞혔다. 이 변호사는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슬슬 규칙이 보이기 시작한다”며 “규칙을 알면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고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끔 혼잣말도 영어로 한다”는 이 변호사의 영어 실력은 원어민 수준이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못하는 건 아니다. 국내 언론기사의 잘못된 단어를 집어낼 정도로 국어 실력이 월등하다.

 

“영어 교육만큼 우리말 교육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외국어를 하나 배우는 건 또 하나의 영혼을 얻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다만 풍요로움은 두 영혼을 모두 끊임없이 갈고닦을 때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말도 잘 모르는데 영어부터 하려고 뛰어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이철재 변호사는 올 3월 조금은 특별한 영어책을 냈다. 제목부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영어책》이다. 이는 유용한 영어 표현이나 문장이 전화번호부 식으로 나열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에세이에 가깝다. 이 변호사는 책을 통해 “단어 하나, 문법 하나를 설명하는 데도 필자의 경험이나 영어권 역사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곁들였다”고 소개했다. 다음은 책의 한 구절이다.

 

“며칠 전 영화를 봤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옷을 차려입고 기다리는데 신랑이 길이 막혀 식장에 오지 못하고 헤매는 이야기였다. 휴대폰이 흔하지 않던 시절의 영화라 신랑은 연락할 길도 없어 그냥 빗속을 뛰어가기 시작하고, 신부는 대기실에 앉아 자기 어머니에게 ‘I think he’s got cold feet’이라고 말한다. ‘cold feet’, 즉 차가운 발(足)은 ‘겁, 공포, 달아나려는 자세’다. ‘He’s got cold feet’은 신랑이 나타나지 않자 어머니에게 ‘신랑이 결혼에 겁이 나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철재 지음 이랑 펴냄 320쪽 1만5000원


 

“외국어를 배우는 건 영혼을 얻는 것”

 

이 책의 핵심은 에필로그의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반복을 즐기라”는 것. 이왕 반복해야 한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이 변호사는 미국 공영라디오 방송인 ‘NPR’을 추천했다. ‘npr.org’에 들어가면 NPR의 모든 뉴스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다. 대본도 함께 올라와 있다. 이 변호사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단어를 알아도 발음을 몰라서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면서 “연습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NPR의 프로그램을 자주 듣다 보면 강세와 장단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영어발음은 굉장히 나쁘지만, 강세와 장단이 정확해 의미 전달에 무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에 이런 유머가 있다. 3개 국어를 하는 사람을 영어로 ‘Trilingual’이라고 한다. 2개 국어가 가능한 사람은 ‘Bilingual’이다. 그럼 1개 국어를 하는 사람은 영어로 뭐라고 할까. 정답은 ‘American’이다. 외국어를 배우려 하지 않고 오로지 영어만 하는 미국인을 조롱하는 농담이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해도 해도 안 된다고 불평하는 이유는 본인의 실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며 “영어 앞에 당당해야 할 사람은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했다. 처음에 ‘shoo-in’을 못 알아들어 의기소침했던 기자에게 힘을 불어넣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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