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에 없었던 김정은의 약속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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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확인 거친다…남북 표준시 통일 합의
2018 남북 정상회담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파격’과 ‘허심탄회’다. 예상을 뛰어 넘은 적극적인 모습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베일에 감춰졌던 지도자, 인민을 굶주리게 만든 독재자는 불과 12시간 만에 이미지를 변신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담은 판문점 선언을 남기고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김 위원장 스스로 북한의 핵실험장 폐쇄를 국제 사회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예전엔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렸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수많은 선물 폭탄을 안겨야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아무런 요구도 없이 김 위원장 스스로 먼저 ‘전문가·언론인 초청’ 카드를 꺼내들었다. 2015년 주체성을 강조하며 바꿨던 표준시를 자신들이 되돌리겠다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 당일에 공개되지 않았던 이야기는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입을 통해 세상 밖으로 알려지게 됐다.


김정은 “核실험장 폐쇄 후 전문가·언론인에 공개”

4월29일 윤 수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북부 핵실험장 폐쇄를 5월 중에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를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북으로 초청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사인한 뒤 서로 포옹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김 위원장은 해외 언론의 분석을 의식한 듯 “못 쓰게 된 것(핵실험장)을 폐쇄한다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 실험시설보다 더 큰 두 개의 갱도가 있고, 이는 아주 건재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즉시 환영 입장을 밝혔고, 양 정상은 (전문가·언론인 초청이) 준비되는 대로 일정을 협의키로 했다.

앞서 북한은 4월20일 개최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핵실험과 (ICBM 대륙간탄도로켓) 시험발사를 중단한다는 결정을 채택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이후 풍계리의 지하 핵시설이 추가 실험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분석 기사를 보도했다.


김정은 “결코 무력 사용 없다…우발적 충돌 방지 조치 필요”

김 위원장은 “​앞으로 무력 충돌은 결코 없다”​고 확언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우리와 대화해보면 내가 남쪽이나 태평양상으로 핵을 쏘거나 미국을 겨냥해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終戰)과 불가침(不可侵)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말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조선전쟁(6·25 전쟁)의 아픈 역사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한민족의 한 강토에서 다시 피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결코 무력 사용은 없을 것임을 확언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우발적 군사충돌과 확전(擴戰) 위험이 문제인데, 이를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방지하는 실효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남북 ‘시간통일’…서울-평양 시곗바늘 만난다

아울러 남북은 현재 30분 차이가 나는 남북의 표준시 역시 통일하기로 했다. 윤 수석은 “북한의 표준시각을 서울의 표준시에 맞춰 통일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당시 “평화의집 대기실에 시계가 두개가 걸려 있었는데, 하나는 서울시간, 다른 하나는 평양시간을 가리키고 있어, 매우 가슴이 아팠다”며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측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해도 좋다”고 밝혔다.

남북은 기존에 모두 동경(東經) 135도를 기준으로 하는 ‘동경시’를 썼다. 하지만 2015년 8월 북한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 표준시를 빼앗았다”며 일제 잔재 청산을 내세워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새롭게 ‘평양시’를 만들었다. 그 때부터 북한은 기존에 사용하던 표준시간을 남한보다 30분 늦춰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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