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연구원, 한 연구단장 개인에 우왕좌왕
  • 대전 = 김상현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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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 발언만으로 연구단 패쇄 결정했다, 사퇴 번복하자 없던 일로…연구원들 부글부글

 

국내 최대 기초과학 정부출연연구소 기초과학연구원(IBS)이 한 연구단장의 개인 의지에 휩쓸려 연구단 폐쇄를 통보했다가 몇 달 만에 취소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5월 대전의 한 지역 언론사는 IBS 내부 감사를 받고 있는 A 단장이 사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대해 IBS 측은 “A 단장이 사임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나오긴 했지만, 아직 사표를 내거나 공식적으로 거취가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실상은 기사가 나오기 두 달 전, A 단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2017년 3월부터 연구단 해체 수순을 밟기 시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2017년 5월15일 김두철 IBS 원장이 연구단 연구진에게 보낸 메일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 원장은 “A 단장이 IBS를 떠나겠다는 결정을 하고 그 의사를 원장과 연구단에 공표함에 따라 3월부터 연구단 정리를 진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절차를 위해 단장에게 ‘정리계획안’을 받으려 했으나 무산됐음도 전했다. “단장의 퇴직 의사는 거듭 확인됐다”라며 “이번 B 연구단의 경우 우리 연구원의 최고 자문기구이고 신규연구단의 출범을 자문·추인하는 과학자문위원회(Scientific Advisory Board, SAB)를 통해 연구단 정리를 공식화하고자 한다”고 했다. 

 

당시 김 원장이 메일에서 밝힌 연구단 최종 정리·폐지 시점은 2018년 3월31일이었다. 재계약 시기가 된 연구원에 한해서는 2018년 9월30일까지 재계약 시한을 줄 것을 통보했다. 사실상 A 단장dl 사직서 없이 사임 의사를 밝힌 시점으로부터 1년 만에 연구단을 폐쇄하는 상황이었다.

 

김두철 IBS 원장이 A 연구단 연구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원문.

 

갑작스런 연구단 폐쇄 소식에 연구원들 분노

 

B 연구단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단장이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전 사임 의사만 가지고 연구단 정리를 시작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연구원들은 단장의 개인 의사 때문에 준비할 겨를도 없이 자칫 직장을 잃게 될 상황에 부닥쳤다. IBS 지침 중 연구단장 정년 및 연구 중단 시 대응방안에 따르면, 연구단 폐지 결정 시점 후 1년 이내에 연구단을 정리해야 한다. 각 연구단은 단장의 연구를 중심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단장의 부재는 연구 중단과 같은 의미다. 연구단 폐쇄 후에는 계약 기간이 남아 1~2년 더 남아 있어도 의미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연구비 예산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연구단 내에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유수의 해외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하다 IBS와 A 단장의 권유로 한국에 오게 된 과학자도 있었다. 결국, 연구진들은 단장의 사직서 제출과 이에 대한 수리 여부 결정, 대책회의 등과 같은 적법한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폐지를 결정하고 남은 인력과 예산에 대한 계획을 통보한 것에 항의했다. 이들은 기초과학연구원 노동조합와 함께 협상에 나섰다. 이들이 요구한 사안은 △연구원들의 5년 계약 기간 보장, △적절한 연구비 지원과 각자의 외부 과제 참여를 위한 IBS 협조 제도 마련, △독립적인 연구 그룹 보장으로 정리 연구 및 새로운 도약 연구 지원 △보조직 계약의 부당성이 있는 경우에 직위 정상화였다. 

 

한편, A 단장은 연구원들이 IBS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이 단체 메일을 보냈다. 그는 메일에서 “한 가지 분명히 밝혀 둘 것은 사임 의사를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라며 “사퇴 시점은 유동적이긴 하나 2017년 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IBS 측은 2017년 9월 30일 즈음에 사퇴서가 수리돼 확정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A 단장이 연구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원문.

 

 

돌연 사임 번복한 A 단장…자신의 회사 이사직 사퇴 

 

하지만 결국 A 단장은 사퇴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A 단장은 2017년 8월 말 자신이 창업한 기업의 비상임이사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선언을 한다. 표면상 비상임이사 사퇴였으나 회사의 지분은 그대로였다. 이후 IBS와 업체의 협력 연구도 계속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이사직 사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IBS의 내부규정상 연구단 단장은 이해관계가 있는 곳의 겸직을 금지하기 때문이었다. A 단장이 업체의 비상임이사직을 사퇴했다는 것은 연구단 단장직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A 단장은 서울대학교 교수를 겸직했던 2016년에도 IBS 단장직 유지를 위해 교수직 사직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이후로 A 단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전처럼 연구단을 이끌고 있다. IB에서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개원식을 가진 IBS 본원에 연구실을 새로 정비하는 등 본격적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겪는 동안 연구단의 과학자들은 허탈감과 분노에 휩싸였다. 그사이 몇몇 연구진은 타 대학이나 업체로 이직했다. 남은 연구원 중에도 준비가 되는 데로 다른 곳으로 일터를 옮기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인물이 있을 정도다.

 

올해 A 단장이 맡은 연구비는 총 39억원이다. 이 연구단은 출범 첫해 64억5천만원, 2015년 94억4천만원, 2016년 81억2천800만원, 2017년 75억원을 인건비와 인프라구축비 등을 포함한 연구비로 사용했다. 4년간 300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사용한 연구단의 과학자들이 고용불안에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셈이다.

 

IBS 로고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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