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꼬이면 北, 결국 '비핵화 마이웨이' 할 수도"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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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난기류 속, 한반도 운명의 일주일 맞아

 

일분일초가 중요해졌다. 북·미 정상회담을 3주가량 앞두고 양측 간 거리를 좁혀야 할 때다. 북한 핵실험장 폐기, 한·미 정상회담 등 수많은 사전 이벤트가 이번주 예정된 가운데 확실한 '한 방'이 절실해졌다. 북·미가 움직이지 않고 한국 정부의 중재 노력도 먹히지 않는다면, 결국 북한이 '비핵화 마이웨이'를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져나온다. 남·북·미는 지루한 기싸움을 이어가느냐, 멈추느냐의 기로에 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예정'대로…비핵화 공조는 '캄캄'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를 취재할 한국 취재진은 5월21일 북한이 지정한 5개국 취재진의 집결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 도착했다. 우리 측 취재진이 풍계리에 갈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한국 포함 5개국 기자들의 취재를 허용하겠다던 북한이 한국 언론 취재진 명단 접수를 21일 오후 6시 현재까지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12일 외무성 공보를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23∼25일 사이 갱도 폭파방식으로 폐쇄하겠다며 중국·러시아·미국·영국·한국 기자들의 현지 취재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18일 남한 정부가 판문점 연락 채널을 통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남측 방북 기자단 명단을 통지하려 했을 때 받지 않았다. 한·미의 맥스선더 훈련 등을 이유로 16일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연기하고, 같은 날 미국 측에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일단 우리 취재진은 이날 중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에 방북 비자를 신청할 예정이다. 비자가 발급되면 22일 미국·중국·러시아·영국 등 다른 나라 취재진과 함께 북한이 마련한 항공편으로 방북길에 오를 전망이다.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경색되면서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5월22일(미국 현지시간) 있을 한·미 정상회담보다는 북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가 관건"이라며 "이번주 이후 상황은 핵실험장 폐기가 예정대로 진행되느냐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를 그대로 진행하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북한은 이미 비핵화를 통한 국제사회 진출 계획을 명확히 밝혔다. 이번 핵실험장 폐기 행사는 비핵화와 평화 추구 의사를 홍보할 절호의 기회다. 

 

실제로 최근 북한이 원산과 길주 사이 철로 보수 공사를 벌이는 정황이 포착됐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국제 기자단이 이동하는 구간이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갱도 폭파 장면 관측을 위한 전망대 설치로 추정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19일(현지시간) 위성사진을 토대로 보도하기도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협상 방향과 관련한 양국의 조율된 입장이 천명되고 오는 25일 맥스선더 훈련도 끝나면 남북과 북·미 관계는 다시 개선의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 실장은 북한이 미국에 대해 상상 이상의 강한 불만을 내비치고 있어 긴장 상황이 재연될 우려도 상존한다고 덧붙였다. 정 실장은 "북한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고, 미 전략 폭격기의 한반도 이동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北, 한·미와 의견 못 좁히면 독자 행보 걸을 가능성도  

 

더 큰 문제는 북한이 한·미와 보조를 맞추지 않고 독자 행보를 걸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5월20일 핵실험장 폐기와 관련한 외무성 공보를 거론하면서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우리 공화국이 주동적으로 취하고 있는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향후 북·미 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이 나름대로 비핵화는 계속 추진하겠지만, 한·미와 다른 방향으로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북한은 한·미 정부가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한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북·미 정상회담 등 계획된 일정은 소화하더라도 독립적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특히 북·미 정상회담과 이후 실무 접촉 과정에서 트럼프 정부가 강경책을 고수할 경우 북한이 '그건 안 되겠다'며 비핵화 마이웨이를 선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화 공조 이탈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정성장 실장은 "이럴 때일수록 남북 정상 간 '핫라인'(Hot Line·직통전화)을 통한 허심탄회한 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미뤄져온 남북 정상 간 통화를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고, 북한은 통지문이나 담화를 통해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할 게 아니라 직접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추진해야 한다"며 "그래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27 남북 정상회담에서 강조한 것처럼 '잃어버린 11년'이 아깝지 않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남북 관계를 안정적이고도 빠른 속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영태 소장도 "남한 정부가 미국에 김 위원장 속내 등을 가감 없이 전달해 북·미 관계를 평화적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 정부의 역할보다 결국 북·​미 간 담판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있다. 고유환 교수는 "지금 국면은 한국의 중재로 풀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북·미 간 담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두 차례나 김 위원장을 만났다"며 "북·미가 충분히 직접 협상, 즉 딜을 할 수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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