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이 자리까지 온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0 14:15
  • 호수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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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연속 출루 기록 경신하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출전한 추신수

 

빅리그 데뷔 14년 차. 그동안 집중 조명을 받는 화려한 커리어의 선수와 거리가 멀었던 추신수(36·텍사스 레인저스)가 2018시즌 전반기 동안 펄펄 날았다. 51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하며 현역 선수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은 물론 생애 첫 올스타전에 출전해 안타와 득점까지 올리며 자신의 가치를 타석에서 입증해 보였다. 전반기 성적도 수준급. 타율 0.293에 18홈런 43타점 62볼넷으로 그동안 전반기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패턴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냈다. 이런 결과가 그를 메이저리그 최고의 별들이 모이는 올스타전으로 안내한 것이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닿고 싶었던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리그별 최고의 실력과 인기를 얻고 있는 선수들이 모이는 이벤트에 속한 추신수는 워싱턴 DC에서 보낸 이틀 동안의 여정이 마냥 설레고 가슴 뛰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 이영미 제공


 

올스타전에서 선보인 ‘출루 기계’의 저력 

 

7월18일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2018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2대2로 맞선 8회초 선두타자로 교체 출장한 추신수는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리그 최고의 불펜 투수로 꼽히는 조시 헤이더(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156km 바깥쪽 패스트볼을 밀어 쳐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인 야수 최초의 올스타 출전 안타와 득점이었다. 더욱이 조시 헤이더는 올 시즌 좌타자를 상대로 53타수 중 3안타만 내주는 등 좌타 상대 피안타율이 0.053인 좌타자 킬러다. 추신수는 그동안 헤이더와 단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었다. 

 

추신수는 이미 그가 얼마나 좋은 투수인지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상대해 본 적이 없어 불안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살짝 걱정스러웠다는 얘기도 전했다. 추신수가 헤이더의 공에 접근하는 방법 한 가지. 그를 왜 ‘출루 기계’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헤이더의 공을 최대한 많이 보려고 했다. 공의 변화나 던지는 각도를 익히려고 공을 보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투 스트라이크 투 볼까지 간 덕분에 안타보다는 공을 맞히는 데 신경을 썼다. 그래서 좋은 타구가 나왔던 것 같다.”

 

추신수가 안타로 만든 공은 97마일(156km)의 패스트볼이었다. 추신수는 상대 전적이 없는 투수를 상대할 때 대부분 초구에 방망이를 대지 않는다. 대기 타석에서 투수의 공을 충분히 본 후 자신의 타석에서도 2개 정도는 지켜보는 편이다. 조시 헤이더와의 맞대결에서도 그런 매뉴얼대로 움직였다. 추신수의 안타는 2대2 동점 균형을 무너뜨린 원동력이 됐고 결국엔 추신수가 속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가 내셔널리그 올스타를 꺾고 승리를 차지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인 추신수는 팀에서 유일한 올스타전 출전 선수다. 지난 시즌 3000안타에 가입하고 골드글러브 5회, 실버슬러거 4회를 수상했던 애드리안 벨트레도 이번에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추신수만 선수단 투표로 올스타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올스타 투표가 실력보다 다분히 인기 있는 선수한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감안하면 선수단 투표로 선발된 추신수로선 그 의미가 꽤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신수는 그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에서 야구하면서 이런 자리까지 온 내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올스타에 오기 전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올스타에 뽑힌 선수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이 선수들 사이에 내가 포함돼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이 메이저리그이고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력과 인기를 얻은 이들만 올 수 있는 곳이 올스타전 아닌가. 이틀 동안 올스타전을 치르며 뭘 했는지도 모를 만큼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마이너리그에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한 덕분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우여곡절 많았던 미국 생활, 그 값진 열매

 

2000년 8월 18세의 나이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추신수. 함께 야구했던 친구들이 롯데 자이언츠 드래프트 1, 2번에 당첨됐을 때 그는 남과 다른 야구 인생을 위해 시애틀 매리너스의 애리조나 교육리그 캠프를 찾았다. 당시 추신수와 함께 비행기에 오른 이들은 추신수 부모님이었다. 아들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주기 위해 애리조나까지 동행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얼마 안 돼 아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믿었다. 40도가 넘는 애리조나의 불볕더위에서 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그늘도 아닌 땡볕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때 특히 어머니가 많이 우셨다. 체구도 작은 내가 외국인 선수들과 뒤섞여 훈련하고 더운 날씨에 그늘도 아닌 땡볕에서 햄버거를 먹는 모습에 굉장히 마음 아파하셨다.”

 

추신수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자신의 목표가 그리 크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랑 언어와 피부 색깔이 다른 선수들과 딱 한 경기만 같이 뛰어보자, 아니 한 타석이라도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보자고 생각했다. 아마 처음부터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노리고 올스타 선발을 꿈꿨다면 그 많은 일들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추신수는 기자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전했다. 그가 마이너리그에 있는 동안 모두 세 차례의 퓨처스리그 올스타에 선발됐는데, 원래는 네 차례나 퓨처스 게임에 출전할 뻔했다는 것. 

 

“2002년과 2004년, 2005년에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 퓨처스 게임에 출전했는데, 마이너리그 퓨처스 게임은 많이 나가봐야 두 번 정도가 정상적인 출전이다. 계속 퓨처스 올스타에 나간다는 건 빅리그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6년에 또 퓨처스 게임 초대 봉투를 받았다. 고민 끝에 반납했다. 그런데 빅리그 데뷔 후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올스타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한번은 그때 퓨처스 게임에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내게 저주가 생긴 건가? 싶기도 했었다. 이번에 1억 달러 이상 받은 선수 중 올스타에 선발되지 않은 유일한 선수가 바로 나라고 해서 더 놀랐다. 이젠 그 꼬리표를 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얼마 전 미국의 야후스포츠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해 “죽음과 세금, 그리고 추신수의 출루만큼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고 보도하며 추신수의 연속 출루 기록에 찬사를 보냈다.

 

7월19일 현재 추신수는 51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며 텍사스 구단 단일 시즌 최장은 물론 현역 메이저리거 최장 신기록을 넘어섰다. 지금으로선 출루만 하면 기록이 경신되고 있는 상황. 

 

추신수와 조이 보토(오른쪽)가 사진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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