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180조 투자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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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탐색과 실험 통한 창조적 축적으로 이어져야

 

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부진에 대해 청와대 정책실과 기획재정부가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그룹이 신산업 육성과 신규채용 확대를 약속하며 제시한 180조원 투자는 그 자체로 경제 활력의 불씨를 다시 살리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봐야 한다. 이를 의식한 듯 대다수 언론에서는 삼성이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과 찬사를 내놓았다. 인터넷 댓글에서조차 “삼성이 이번에는 진짜 할 일을 했다”는 호평이 이어지며 삼성에 관한 부정적인 댓글을 찾기 어려웠다. 

 

삼성그룹의 180조원 투자 규모는 그 크기만으로도 모든 정량적인 수치, 지표 등을 압도한다. 올해 대한민국의 예산 429조원과 비교해도 무려 42%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언론은 이번 삼성그룹의 투자에 관해 사상 최대 투자 금액, 역대 단일기업 최대 투자라고 칭송했지만 냉정하게 규모로만 봤을 때 언론이 호들갑을 떨 정도로 큰 금액은 아니었다. 이미 삼성그룹은 2015~17년까지 3년간 투자 금액이 150조원을 넘어섰고 올해까지 포함했을 때 최근 3년간 투자 금액도 160조원을 초과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청와대 정책실과 경제부총리가 갈등을 보이며 ‘투자와 고용을 삼성에 구걸하지 말라’는 논란이 있을 때 소문으로 돌았던 ‘삼성그룹의 100조원 투자’ 이야기는 과거 삼성그룹의 투자 규모를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한 후,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에 삼성그룹이 200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투자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돌았다. 이번 발표에서 삼성그룹의 투자 규모보다 먼저 포커스를 맞출 부분은 크게 세 가지이다. 

 

시사저널 고성준 기자

 

첫째, 삼성그룹은 인공지능(AI), 5G, 바이오, 전장부품 등 4대 미래성장사업을 지정했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이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한 이후 정확히 8년 만에 그룹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성장 방향을 확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삼성은 4대 미래성장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해당 분야에만 25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미 삼성은 해당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분야의 국내외 대학 석학, 글로벌 기업의 연구개발진 등을 모두 확보하는 만반의 준비를 기하고 있다. 

 

둘째, 삼성의 채용 규모가 4만명으로 대폭 확대됐다. 7월9일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의 인도공장 준공식에서 “국내에 더 많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로 일자리 창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은 정부의 요청에 화답하기 위해 당초 예정했던 2만명을 뛰어넘는 4만명 채용을 선언했다. 특히, 국내에 투자되는 130조원으로 70만명의 일자리 창출 파급효과가 발생하니 인터넷 댓글에서 삼성을 오랜만에 칭찬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삼성이 산학협력 등 사회적 가치 창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예컨대, 국내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청년 1만명에게 소프트웨어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점, 400억원의 산학협력 규모를 1000억원으로 대폭 확대하는 점, 삼성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을 집중 지원하기로 약속한 점 등은 국내 최고기업에 주어지는 사회적 책무도 성실히 이행해나갈 것임을 국민에게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성장뿐만 아니라 기업의 브랜드 품격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이 180조원을 투자한다고 해서 이를 장밋빛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2010년 이건희 회장 역시 경영 일선에 복귀하며 5대 신수종사업을 발표했고 26조원이 넘는 금액을 해당 분야에 투자했지만 오너의 경영 복귀를 위한 성급한 신수종사업 선정, 장기적인 전망과 치밀한 분석이 부재한 상황에서 투자한 거액은 결국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이번 180조원 투자와 미래성장사업 선정 역시 이재용 부회장의 면죄부와 관련해 명분을 만들기 위한 그룹의 조치라고 보는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히 많다. 

 

또 다른 한계는 삼성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이 여전히 눈에 띄는 투자 금액과 규모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5년간 미국에 33조원을 투자하고 2만명을 고용한 데 비해 삼성은 3년간 국내에 13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고용하기에 삼성이 더 훌륭한 기업이라고 일부 언론들은 보도했으나 이는 삼성을 위해서도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삼성이 확보한 인력을 어떻게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로 육성할 것인지 그리고 산학협력은 1000억원 투자 이전에 어떤 방식으로 유연하게 운영할지를 먼저 밝혔어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대규모 투자 금액, 지속적인 R&D(연구·개발)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을 약속해왔다. 국내 대기업들은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절대 오산이다. 대규모 투자와 인력 확보를 통해 따라잡는 패러다임은 이미 ‘모방추격 성장모델’에서 그 한계가 드러난 지 오래다. 삼성이 8년 전, 신수종사업을 선정하며 26조원을 투자했음에도 태양광 및 LED 사업 등에서 실패를 거듭한 건 투자를 통해 역량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삼성이 올해 선정한 인공지능, 5G, 바이오, 전장부품 등 4대 미래성장사업은 결코 돈이나 인력을 투입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글로벌 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들 산업은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축적된 노하우가 융·복합적으로 요구되는 산업이기에 해외에서는 이들 산업을 ‘투자 규모’가 아닌 ‘융합 축적’의 산업이라고 부르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삼성이 이들 첨단산업을 섣부르게 투자 규모의 산업으로 봤다면 삼성은 8년 전 신수종사업 실패의 전철을 또다시 밟게 될 것이다. 

 

최근 5년간 삼성은 단기수익적 사고에 의거, 종합연구원 중심의 연구 조직을 대폭 축소하거나 경제연구소를 사내 컨설팅 기관으로 변경시키는 등 차세대 연구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삼성의 수익 창출은 거의 15년째 반도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180조원 투자, 4만명 고용, 1000억원 산학협력보다 더 중요한 건 삼성이 앞으로 다양한 탐색과 실험을 통해 성장 역량을 창조적으로 축적하느냐에 있다.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기 성패는 ‘투자 규모’보다 ‘융합 축적’에 있음을 삼성은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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