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사는 ‘미운’ 1인 가구가 바꾸는 TV 지형도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4 14:48
  • 호수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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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가 성공한 이유

 

1인 가구 또는 싱글족이 많아지면서 TV도 기민하게 대처한다. MBC 《나 혼자 산다》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제목에서부터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2013년 설날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방송가 경쟁 격화로 파일럿을 통한 새로운 시도가 빈번해졌고, 특히 명절 기간에 집중적으로 파일럿이 방영된다. 그래서 명절마다 수많은 파일럿이 경쟁하지만 정규 편성에 성공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나 혼자 산다》는 방영되자마자 시청자들의 호응이 크게 나타나 바로 정규 편성이 확정됐다.

 

김태원·김광규·데프콘 등 혼자 사는 남자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내용이었다. 독거남의 쓸쓸하고 ‘짠’한 모습에 시청자들이 공감했다. 대충 끼니를 때우는 모습, 외로움을 달래고 적막함을 깨기 위해 TV를 켜는 모습,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마치 나를 보는 듯하다’는 시청자들이 속출했다. 

 

프로그램은 예능적인 재미보다 혼자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공감을 얻는 데 주력했고, 그 과정에서 김광규·육중완과 같은 깜짝 스타가 생겨났다. 아이돌 스타의 화려한 일상보다 이런 무명 연예인들의 안쓰러운 일상에 시청자들이 더 동질감을 느꼈다. 그만큼 이들의 모습이 이 시대 독거족의 모습을 생생하게 대변했던 것이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 MBC 방송 캡쳐

 

무명 연예인의 안쓰러운 일상에 시청자들 공감

 

그렇게 공감을 통해 잔잔한 인기를 얻으며 ‘중박’ 프로그램 정도로 시작했는데 의외로 점점 호응이 커져 갔다. ‘2018 올해의 브랜드 대상’에서 ‘올해의 관찰예능프로그램상’을 수상했고, 올 4월과 5월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 《무한도전》이 사라진 지금 MBC를 대표하는 간판 예능의 위상에까지 오른 느낌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는 특화된 시청자층을 타깃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 간판 프로그램이 될 정도로 혼자 사는 문화가 보편화된 것이다. 

 

초창기에는 쓸쓸한 독거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 프로그램의 PD는 “예전에는 혼자 사는 사람 하면 자발적이라기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1인 가구가 됐다는, 쓸쓸하고 처량한 이미지가 있었다. 근데 요즘은 혼자 사는 사람도 많아졌고 자기 라이프를 즐긴다는 인식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래서 초창기엔 쓸쓸한 모습이 많았지만 요즘은 밝은 모습을 많이 담는다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가 최근에 집중하는 것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관계 맺기, 인생 즐기기’다. 전현무·기안84·한혜진·박나래·이시언·헨리 등 고정 출연진이 서로 우애를 나누며 마치 유사 가족처럼 가까워지는 과정과 그들의 유쾌한 생활 모습을 그린다. 혼자 산다고 했을 때 떠오르는 그늘진 느낌이 없어지고 당당한 삶의 한 형태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나 혼자 산다》가 방영된 5년 동안 그렇게 세상은 달라졌다.

 

2013년 방영된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도 1인 가구와 관련이 깊다. 이 프로그램은 1인 가구 트렌드에 ‘먹방’을 접합해 혼자 사는 식탐 남녀들의 생활을 그렸다. 이 식탐 남녀들은 혼자 살아서 외롭고, 그래서 더 배고픈 사람들이었다. 뭔가 애잔한 느낌을 주는 독거 남녀의 식탐인 것이다. 이 드라마도 2013년 당시 《나 혼자 산다》와 함께 환영받았고 5년이 지난 지금도 시즌3가 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건재하다.

 

이 두 작품의 성공 이후 방송은 1인 가구 트렌드에 더 적극적으로 조응했다. SBS 《룸메이트》, 올리브TV 《셰어하우스》 등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을 담았다. JTBC 《나홀로 연애중》은 삼포 세대 싱글족을 대변했다. 이 프로그램의 PD는 “싱글족 500만 명 중에 연애하는 사람의 비율이 30% 미만이라는 기사를 봤다. 연애하고 싶어도 돈이 없고 시간도 없어 상황이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이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E채널 《별거가 별거냐》, MBN 《따로 또 같이 부부라이프-졸혼수업》 등은 졸혼으로 중·노년의 나이에 1인 가구가 되는 상황을 그렸다. KBS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는 백일섭이 졸혼남으로 등장했고, 김승현이 미혼부(未婚父)로 옥탑방에서 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줘 크게 호응을 받았다. tvN 《숲속의 작은 집》은 숲속에서 홀로 거주하며 소소한 만족을 느끼는 모습을 담았다.

 

1인 가구의 증대는 음식 방송에도 영향을 미쳤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종원이 혼자 사는 남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리방법을 선보여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런 흐름은 tvN 《집밥 백선생》, 올리브TV 《오늘 뭐 먹지?》 등으로 이어졌다. 최근엔 올리브TV 《밥블레스유》가 혼자 사는 ‘언니’들의 우정과 호탕한 먹방을 선보인다.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 © SBS 방송 캡쳐

 

《미운 우리 새끼》가 정점을 찍은 1인 가구 예능

 

SBS 《미운 우리 새끼》가 1인 가구 프로그램의 정점을 찍었다. 10%에서 20% 초반 사이를 지키는 놀라운 시청률이다. 20%를 넘긴 것은 현존 예능 프로그램 중 《미운 우리 새끼》가 유일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미운 우리 새끼’란 결혼 적령기가 지났는데도 가정을 꾸리지 않고 혼자 사는 아들을 가리킨다. 이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건 혼자 사는 자식 때문에 걱정하는 부모님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의 어머니까지 TV에 등장시켰다. 연예인 아들이 철없이 행동할 때나 쓸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 ‘아유 쟤가 왜 저래’라는 식으로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크게 공감했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독거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저마다의 삶은 1인 가구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상민이 궁상맞은 모습으로 짠내 나는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자기만의 허세와 낭만을 잃지 않는 생활 태도를 보여줬을 때 호응이 극에 달해 20% 시청률을 훌쩍 넘겼다. 요즘엔 이혼해 독거남이 된 임원희가 언뜻 보면 쓸쓸한 듯하지만 유유자적 만족스럽게 사는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다.

 

삼포를 넘어 ‘N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인간관계 등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정을 꾸리겠다는 의지가 약해진 시대다. 가정을 꾸려도 이혼, 기러기 가족 등의 이유로 다시 홀로 되는 사람이 많다. 1인 가구가 대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트렌드를 따라가는 TV의 특성상 앞으로 1인 가구 현상이 더욱 많이 TV에 반영될 전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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