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언론, 트럼프를 파국으로 몰고가다
  • 이철재 미국변호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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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변호사가 보는 재밌는 미국] 특검과 언론의 협상, 그리고 매케인의 죽음


미국에서 수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려고 줄을 서면 계산대 주변에 여러 잡지가 꽂혀있다. 신문을 반으로 접은 크기의 이런 종류의 잡지들을 수퍼마켓 타블로이드(Supermarket Tabloid)라 부른다.

주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 가령 켄터키 어느 시골에 외계인과 지구인의 혼혈아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나 유명인들의 가십 기사를 싣는다. 또 한편으론 유명인들의 스캔들 스토리를 독점 계약하고 그 이야기를 사장시켜버려 유명인들의 뒤를 봐주는 역할도 한다.

기삿거리를 독점 계약하고 사장시키는 행위를 잡아서 죽인다는 뜻으로 캐치 앤 킬(Catch and Kill)이라고 한다. 스캔들 기사를 독점 계약할 때 제공자에게 돈을 지불한 뒤 ‘절대 다른 곳에 발설하지 말고 다른 신문사에 되팔지도 말라’는 조항을 넣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타블로이드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내셔널 인콰이어러(National Enquirer)라는 잡지다.
 

미국의 타블로이드 연예주간지 '내셔널 인콰이어러' ⓒ 연합뉴스



지난주 목요일, 미국을 뒤흔든 속보 하나

지난주 목요일인 8월23일(미국 시간) 저녁, 잠자리에 들려는데 스마트폰에서 각 언론사 속보가 쉴 새 없이 뜨기 시작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발행인 데이빗 페커(David Pecker)가 특별검사 팀으로부터 면책(Immunity)을 받았다는 기사였다.

면책은 수사기관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자 주 용의자가 아닌 사람에게 어떤 안건에 대해 솔직히 모든 이야기를 해 주면 그 건에 관련된 당신의 죄는 묻지 않겠다고 하는, 용의자와 검찰 사이의 합법적 거래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조사하던 특별검사 팀도 클린턴과 백악관에서 관계를 가진 모니카 루인스키에게 모든 상황을 거짓 없이 진술한다는 조건으로 면책을 줬다.

수퍼마켓 타블로이드의 발행인이 무엇 때문에 면책을 받았으며, 왜 그것이 속보로 뜨고, 그 다음 날인 금요일 하루 종일 뉴스 사이클을 지배한 걸까? 이를 알기 위해선 시간을 되돌려 그 전날인 수요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수요일 오후, 특별검사 팀으로부터 8개 죄목에 대해 기소를 당한 마이클 코엔(Michael Cohen)이 뉴욕 맨해튼의 연방 법정에 나와 죄를 모두 인정했다. 그는 자칭 트럼프의 해결사(Fixer)이자 개인 변호사다. 특별검사 팀과 사전에 합의해, 죄를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감형을 받기로 한 것이다.

이미 합의를 했는데 판사 앞에 굳이 나온 것은 공식적으로 죄를 인정하고 특별검사와의 합의 사항에 대해 판사의 재가를 받기 위해서다. 이를 플리 딜(Plea Deal)이라고 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상 죄를 묻지 않는 면책과 달리, 플리 딜은 나중에 형을 선고받아야 한다.

수사에 큰 도움을 줬다면 형식적인 벌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감옥에 가게 될 수도 있다. 면책과 플리 딜의 공통점은 미국 수정헌법 5조가 보장하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 권리’를 더 이상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뭐든 묻는 대로 모두 대답해야 한다. 만약 일말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당장 면책이나 플리 딜은 무효가 되고 정식 재판을 받아야한다.

 


‘트럼프의 해결사’ 코엔의 폭탄 고백

마이클 코엔이 맨해튼 법정에 나가 순순히 죄를 인정한 순간, 약 600km 떨어진 버지니아주 연방 법정에선 다른 사람이 유죄 평결을 받았다. 트럼프의 대선캠프 의장(Chairman)을 맡았던 폴 매너포트(Paul Manafort)다. 그는 2주 넘게 탈세, 외환법 위반 등 18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매너포트가 기소된 주 이유는 검찰이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문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의 탈세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매너포트의 배심원 중 한 명인 트럼프의 절대 지지자는 “10개 죄목에 대해선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지만, 나머지 8개 죄목은 수많은 증거 자료가 나와 유죄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이와 같은 고백은 ‘미국 관영통신사’란 비아냥을 사는 트럼프의 사랑방, 폭스 뉴스에서 최초 공개됐다. 여태 “모든 것이 나를 음해하려는 마녀사냥”이라던 트럼프의 말을,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가, 트럼프의 사랑방에 찾아와 부정한 것이다.

다만 매너포트의 혐의는 트럼프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 반면 마이클 코엔의 경우는 트럼프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트럼프와 관계를 가졌던 에로배우 스토미 다니엘스(Stormy Daniels)와 플레이보이 모델이었던 캐런 맥두걸(Karen McDougal)에게 대선 2개월 전 입막음용 돈을 지급했던 사안이 죄목에 들어갔기 때문. 수사가 진행되면 선거자금법(Campaign Finance Act) 위반 등 트럼프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미국의 선거자금법은 상당히 복잡하고 애매한 부분이 많다. 역대 많은 대통령과 후보들이 이 법을 어겨 벌금을 물었다. 대부분 돈을 받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잘못 받거나, 너무 많이 받고 이를 제 시간 내에 돌려주지 못해서 문제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 캠프도 3억원 가량의 벌금을 문 기록이 있다.

트럼프의 경우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법을 어긴 정황이 있다. 입막음용 돈을 비밀리에 지급하기 위해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니엘스에게 돈을 건넸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마이클 코엔과 짜고 캐런 맥두걸로부터 가십 독점 기사화 권리를 산 뒤 이야기를 사장시켰다. ‘캐치 앤 킬’을 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랜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왼쪽)이 8월21일(현지시간) 뉴욕 연방법원을 떠나며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미 언론은 이날 코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성관계 추문과 관련한 '입막음 돈' 지급 등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감형을 받는 '플리바게닝'을 선택했다고 보도했다. 코언은 앞으로 검찰수사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으로 보여,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연합뉴스


트럼프는 능동적으로 법을 어겨

트럼프는 “나중에 입막음용 돈을 내가 다 갚아 선거 자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허나 미국의 선거자금법은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대선 2개월 전 큰 가십거리를 사장시킴으로써 트럼프의 당선에 도움을 준 그 자체를 선거 기부 행위로 본다. 재능 기부와 비슷한 의미라고 보면 된다.

기업은 후보나 선거운동 본부에 현금이든 재능이든 직접 기부 할 수 없다. 때문에 이는 선거자금법 위반이다. 적법이었다 하더라도 이런 기부 행위가 오고간 것을 전혀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 의무’를 위반했다. 게다가 법정에서 코엔은 “두 여인에게 입막음용 돈을 준 것은 트럼프의 직접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나아가 그는 트럼프와 자신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 내용을 일부 공개하기까지 했다. 코엔이 연방 범죄를 인정하면서 트럼프를 공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막음용 돈 지불 건의 중심에 서 있는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발행인이 검찰로부터 면책을 받은 것이다. 모든 언론사가 앞다퉈 속보를 스마트폰에 쏘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트럼프의 입장은 확고하다. 모든 것이 마녀사냥이고 자신을 음해하려는 민주당의 음모라고. 그러나 이번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 그를 임명한 법무차관 로드 로젠스타인(Rod Rosenstein), 러시아 선거개입 수사를 멈추지 않아 해임된 짐 코미(Jim Comey) 전 FBI 국장 모두 공화당 출신 인사들이다. 그들은 단지 당색과 상관없이 법에 따라 일을 할 뿐이다.


트럼프 진영,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다

특검이 도입되고 일이 여기까지 온 것은 무엇보다 트럼프의 자책골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자신의 작은 왕국과도 같은 사업체 안에서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통치했다. 또 몸에 밴 오만함, 개인의 작은 사업체와 국가를 구별하지 못하는 몰상식, 법치와 공민학(公民學, Civics)에 대한 절대적인 무지, 모르는 걸 배우려는 의지의 부족 탓이다. 법치의 도리를 모르니 이말 저말 생각나는 대로 트위터에 올려왔다. 그것들이 모여 특검 사태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 트럼프 내각의 법무부 장관 제프 세션스(Jeff Sessions)는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관련 수사를 맡지 않겠다(Recusal)고 선언했다. 그 자신이 대선 기간 중 러시아 정부 인사를 만난 것이 드러나서다. 너무도 당연한 처사였지만, 트럼프는 세션스가 자신을 배신했다며 노발대발했다. 세션스가 알아서 수사를 끝내 주길 바라며 법무장관에 임명했는데 손을 떼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트럼프는 트위터와 언론에 떠들어댔다.

약 두 달 뒤인 지난해 5월8일, 트럼프는 FBI 국장 짐 코미를 전격 해임했다. 그 다음 날엔 미국 NBC 저녁 뉴스 앵커 레스터 홀트(Lester Holt)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내가 코미에게 국가안보자문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에 대한 러시아 관련 수사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코미가 이를 거절해 화가 나 해고했다”고 밝혔다.

법무장관이나 FBI 국장은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다. 법적으론 대통령의 입에 그들의 해고 여부가 달린 게 맞다. 허나 대통령이 법무부와 FBI의 고유 수사영역을 침범한 것도 모자라, 자신과 관련 있는 수사에 외압을 가하다 뜻대로 되지 않자 법무장관을 비난했다. 한 발 더 나아가 FBI 국장을 해고했다.

이는 민주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참고로 클린턴 대통령 시절 법무장관이었던 자넷 리노(Janett Reno)는 1994년 클린턴의 보좌관이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임명된 특검의 임기를 계속 연장해줬다. 때문에 리노는 클린턴이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장관이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끝내 리노를 해임하지 않았다. 오히려 클린턴 2기 들어 내각이 대폭 교체될 때도 리노는 클린턴 내각의 최장수 장관으로 남았다.


“내 임무는 대통령이 아닌 나라에 충성하는 것”

사법기관은 임명권자로부터 절대 독립이 보장돼야 한다는 게 미국 법치주의의 전통이다. 하지만 그 전통은 트럼프가 짐 코미를 해임함으로써 깨졌다. 지난해 5월17일 법무차관 로젠스타인은 로버트 뮬러를 특별검사로 임명했다. 다른 죄목은 몰라도 그동안 트럼프가 트위터나 언론사에 떠들고 다닌 것만 모아도 이미 사법방해(Obstruction of Justice)에 가깝다. 법무장관과 FBI 국장을 자신의 수족으로 여기는 조폭 두목 같은 발상으로,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며, 국가의 중대사인 러시아 대선 개입 수사를 망치려는 대통령. 특검을 도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트럼프의 언사는 그래도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언행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던 전 CIA 국장 존 브레난(John Brennan)의 비밀정보 사용 허가권(Security Clearance)를 박탈했다. 1970~80년대 군부 독재 하의 대한민국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법무장관 세션스는 수사에서 손을 뗐다는 이유 하나로 트럼프로부터 끝없이 공개적으로 조롱을 당하고 있다. 결국 그는 “나의 임무는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수호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다. 내가 있는 한 법무부의 러시아 수사는 절대로 정치 기류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쉽게 말해 자신의 보스인 대통령을 들이받은 것이다.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금요일이 가고 숨 가쁜 한주가 끝나가려나 하던 찰나, 이번엔 특검팀이 트럼프 재단의 자금관리 이사(CFO) 알렌 와이셀버그(Allen Weisselberg)를 면책했다는 속보가 나왔다. 마이클 코엔이 지급한 입막음용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캐려면 그의 증언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특검 외에 뉴욕주 검찰청도 트럼프 재단을 수사 중이다. 트럼프는 만약 자신이 탄핵된다면 대통령의 사면권을 이용해 스스로를 사면하겠노라 호언장담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자기 자신을 사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아무도 그 답을 정확히 모른다. 대법원까지 가서 싸워봐야 할 사안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통령의 사면권은 연방법에 저촉된 죄에 한해서만 효력이 있다. 주 정부가 수사해서 기소하고 형을 받은 것을 대통령이 사면 할 순 없다. 특검이 뉴욕주와 공조해 수사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2008년 11월 미국 미시시피 주에서 열린 대선 토론회에 참석한 당시 공화·민주당 대선후보인 존 매케인(왼쪽)과 버락 오바마. 지난 2008년 대선에서 매케인 상원의원과 맞붙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매케인 의원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날 성명을 통해 자신과 메케인 의원이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좀 더 숭고한 것, 즉 수세대에 걸친 미국인과 이민자들이 똑같이 싸우고, 전진하고, 희생했던 이상(理想)에 대한 신의"는 공유했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보수의 거목, 매케인의 죽음이 남긴 메시지

금요일이 가기 전 또 하나의 뉴스가 있었다. 이번에는 트럼프가 주인공이 아니다. 뇌종양 투병 중이던 미국의 6선 상원의원 존 매케인이 모든 치료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사망했다. 미국 보수의 거목, 트럼프를 공격하던 유일한 공화당 의원인 매케인이 미국을 숙연하게 만들며 세상을 떠났다.

매케인은 생전에 2000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을 벌였던 라이벌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했던 라이벌 오바마 대통령에게 “내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놓았다. 두 대통령은 긴 추도의 글을 SNS에 올렸다.

오바마 대통령 재직 8년 동안 백악관 공식 사진기자였던 피트 수자(Pete Souza)는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상원 의원들과 국회의사당에서 만나 회의를 하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매케인 의원이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그를 알아본 직원들에게 씩 웃는 얼굴로 입에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매케인을 추모하는 많은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게 했다.

암을 선고받은 이후 매케인은 NBC 방송 톰 브로커(Tom Brokaw)와의 인터뷰에서 “내 삶을 돌아보니 실수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모든 일을 나라를 위해 했다는 것만은 자부한다”고 말했다. ‘훗날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브로커의 질문에 매케인은 “조국을 섬긴 사람(He served his country)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했다. 이어 “거기에 ‘명예롭게(Honorably)’란 단어를 더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덧붙였다.

이제 미국이 트럼프에게 물어야 할 때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당신이 내린 결정 가운데, 자신을 잊고 나라와 국민을 섬기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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