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승부수④] 새해 김정은 머릿속에 담긴 3가지
  • 손기웅 한국DMZ학회 회장·前 통일연구원 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7 11:00
  • 호수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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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양면·관광입국·머들링 스루…경제만이 살길

화두는 경제다. 2018년과 마찬가지로 김정은 위원장의 새해 신년사는 경제난 고백서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펼쳤던 평화 대공세에도, 핵과 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집중으로의 수정에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여유로운 신년사 발표와 달리 밤잠을 설치고 있을지 모른다.  

점점 임계선에 다가가고 있다. 경제난을 뚫기 위한 비핵화의 승부가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의 대북제재 완화가 단기간엔 별 진전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김 위원장 자신은 예견했다. 그 스스로 미국이 바라는 만큼의 속도와 범위로 비핵화를 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과정과 단계에서 대가로 외부로부터 무엇을 받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받은 것이 그의 권력 안정과 경제난 극복에 실제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나 비핵화의 과정을 걸을 심산이다. 다만 그가 핵실험장 폐쇄,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 인질 석방 등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제재 완화는 기대했던 것만은 분명하고, 그것이 현실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실망감은 크다. 더 불만인 것은 남쪽 정부에 대해서다. 정상회담 합의서에 민족 주체성을 강조했고 관계 개선에 남쪽이 그것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했지만, 남쪽 정부로부터 얻은 것이 별로 없다.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는커녕 비핵화 과정에서 제재 지속에 합의한 것이 못내 아쉬울 것이다.     

 

해 저무는 2018년 12월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DMZ 일대의 모습. GP 너머로 개성공단 일대에 평화로운 노을이 스며들고 있다. ⓒ 연합뉴스
해 저무는 2018년 12월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DMZ 일대의 모습. GP 너머로 개성공단 일대에 평화로운 노을이 스며들고 있다. ⓒ 연합뉴스

北 경제난, 점점 한계치 다다라

어떻게 할 것인가. 평화공세를 지속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성과는 크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국제사회에 정상국가의 정치지도자로 등장했다. 다시 대결노선으로 가는 데는 국내적 부담이 크다. 그의 판단과 정책의 실패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현 노선으로 성과를 위해 노력하되, 현 노선이 잘못된다면 좀 더 외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 의지는 보여주되 미국의 반응에 따라 강도를 달리할 것이다. 중간선거로 한숨을 돌리고 있으나 곧 다가올 재선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한번 북에 협상의 문을 넓힐 시기를 준비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로드맵에는 따르지 않지만, 이미 자신이 폐쇄했거나 중단 중인 실험장을 대상으로 사찰 등 국제사회의 요구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미국의 양보를 유도한다.

‘관광입국(觀光入國)’으로 경제난을 견뎌내고자 한다. 김 위원장 자신이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가 없는 한 대북제재의 대폭 해소는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타개책은 국제 제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관광을 통해 외화를 확보하는 길이다. 사실 김 위원장이 남쪽 정부에 가장 바랐던 것이 이 부분이다. 미국을 설득해 대북 관광 금지를 해제하게 하고, ‘우리민족끼리’에 입각한 민족 간 교류의 일환으로 남쪽 주민들의 대북 관광을 재개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단순 관광, 이산가족 상봉, 다양한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경제난의 숨통을 터줄 외화를 획득하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해 15만 명 주민 앞에 연설의 기회를 준 것도, 자신의 남한 방문의 핵심 목표도 관광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의 촉진이다. ‘5·24 조치’를 형해화(形骸化)시키고, 남남 갈등과 한·미 이간질은 부산물이다.    

물론 여기엔 중국 관광객의 유치도 포함된다. 중국의 경우, 비핵화와 관련해 더 이상 북한 일변도의 동조는 곤란하다. 이미 대북제재 완화의 목소리는 냈고 중·북 경협도 다소 활기를 띠었지만, 미국과의 무역전쟁 와중에 대북제재를 크게 벗어나는 북한 편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고, ‘세컨더리 보이콧’도 현실화가 가능한 상황에서 일탈적인 중·북 경협도 한계가 있다. 결국 가능한 것은 단순 관광의 물꼬다. 

러시아 역시 눈에 띄는 경협의 부담이 크다. 트럼프의 시리아 주둔 미군의 철수 발표로 뒤돌아서서 웃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심기를 공개적으로 거스를 이유가 없다. 김정은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대북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적당하게 러·북 관계를 유지하는 방편이 인도적 협력이나 관광이다. 

우리 정부 역시 북한이 기대하는 요구를 그나마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관광이다. 개성공단의 재개는 직접적으로 대북제재와 맞물려 있다. 민족 간 이질성 해소라는 인도적 입장에서 대북 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가장 무리가 없는 방편이라 판단하고, 그것이 북·미 대화의 재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미국을 설득하고자 한다.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은 ‘화전양면’(和戰兩面) 전략을 구사하면서 실리는 관광으로 챙기고자 할 것이다. 금강산으로부터 원산에 이르는 동해 관광지, 남·북·유엔의 인력이 함께 어우러지는 판문점, 백두산을 포함한 기타 명승지를 활용해 남한, 중국, 미국, 기타 국제사회로부터의 관광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미국의 핵심 국가이익인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개발과 핵능력의 제3국 확산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그 외의 핵무력을 견실히 공고화하면서 경제난을 그럭저럭 헤쳐가려는 ‘머들링 스루’(Muddling Through)가 김정은의 당면 목표다. 그리고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을 미국과 겨뤄볼 심산이다. 남북관계에서는 교류를 활용해 연방제적 통일 기반을 조성하고자 한다. 

 

핵무력 유지하면서 경제난 극복에 전력할 듯

동독의 대(對)서독 정책은 ‘차단정책’이었다. 서독이 내미는 접촉과 교류의 손을 잡으면 달콤한 마르크화를 손에 쥘 수 있으나 서독의 자본주의 영향이 자국에 미친다. 서독으로부터 돈을 벌되 어떻게 자국민에 대한 서독의 영향을 최대한 막을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였다. 서독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는, 동독 주민의 마음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자의적’ 자신감과 더불어 서독에 기대지 않고는 통치자금을 확보할 다른 수단이 없었던 현실로 인해 서독과의 접촉과 교류는 증가했다. 동독 주민의 눈과 귀는 열려졌고, 베를린장벽은 무너졌다.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며 남한이 먼저 관광과 교류의 물꼬를 뚫어주기를 바라는 김정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의 생존 전략에 응하되 우리의 국가이익을 반영해야 한다. 개혁과 개방으로의 북한 변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 그리고 민족 이질감 해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관광과 교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교류협력을 우리 국민들이, 국제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내용과 방법으로 판을 다시 짤 기회다. 그렇지 않은 대북 관광과 교류 재개는 북한 비핵화의 실패, 김정은 독재체제의 안정, 분단 고착이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억제’와 ‘협력’, 우리의 양면전략을 국내외적 공감 속에 세련되게 추진해야 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 ‘통일의 전성기를 열어 나가자’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 방안을 적극 모색’ 등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통일’을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나, ‘통일을 가슴에 담은 평화’를 진척시켜야 할 새해는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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