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선수 223명에 女코치 ‘0명’…이유 있는 체육계 ‘미투’
  • 조문희 기자·이준엽 인턴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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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소속 지도자 성별 전수조사
전체 1만9000여 명 중 男82% 女18%
동계스포츠 女지도자는 ‘기근’ 수준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피해 폭로 이후 빙상계 ‘미투’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여자 선수들은 여자 코치가 지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시사저널 조사 결과, 국내체육계 여성 지도자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7월9일 젊은 빙상인 연대 회원들이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관리단체 지정을 촉구하며 시위를 열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지난해 7월9일 젊은 빙상인 연대 회원들이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관리단체 지정을 촉구하며 시위를 열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체육계 지도자 성별 비율, 男 82% - 女 18%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2018년 등록된 전국 감독과 코치는 총 1만9965명. 그 중 여성 지도자는 3500여 명으로, 18%를 차지했다. 같은 해 선수로 등록된 이들은 13만5000여 명이었으며 그중 여성은 23%였다. 여성 선수에 비해 여성 지도자가 현저히 부족한 셈이다.

여성 지도자 비율은 초등부에서 대학부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초등부에서 25%였던 여성 지도자 비율은 중학부 19%, 고등부 13%를 거쳐 대학부에선 10%를 기록했다. 특히 군에 소속된 여성 지도자는 5%에 불과했다.

쇼트트랙 女선수 223명인데 女코치 없어

선수와 지도자간 성별 편차는 동계 종목에서 두드러졌다. 심석희 선수가 소속된 쇼트트랙의 경우, 여성 선수는 223명이지만 여성 지도자는 0명이었다. 반면 남성의 경우 352명의 선수에 21명의 지도자가 있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역시 여성 선수 161명에 여성 코치는 단 1명이었다.

전체 60개 종목 중에서 성별 불균형이 가장 극심한 종목은 궁도로 나타났다. 여자 궁도 선수는 전체의 13%(1만351명명 중 1333명)이지만 여성 궁도 지도자는 전체 54명 중 단 1명에 불과했다. 여성 코치 1명 당 1333명의 여자 선수를 맡는 셈이다. 반면 남자 궁도 지도자는 1명이 170명의 남자 선수를 담당해, 남녀간 1162명의 차이를 보였다.

선수와 지도자간 성별이 균형을 이룬 종목은 양궁이 유일했다. 여자 양궁 선수는 전체의 45%(1836명 중 822명)인데, 여자 양궁 지도자는 46%(808명 중 374명)였다. 이처럼 여성 지도자 비율이 여성 선수 비율보다 높은 경우는 전체 60개 종목 중 양궁 하나였다.

“여성 코치 기근 탓에 체육계 성폭력 곪는다”

이 같은 선수와 지도자간 성별 불균형 때문에 체육계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여성 지도자가 많아지면 여성선수에 대한 성폭력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 “체육계의 여성 학생과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여성 지도자를 의무적으로 늘리는 제도까지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신자 여성스포츠회 회장 역시 “남성 지도자들은 상대적으로 여성 선수를 보듬고 관리할 수 있는 감성과 정서가 부족하다”면서 “여성 지도자의 비율을 확대해 여자 선수들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능한 여성지도자를 발굴해 키워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0년 전에도 “여성지도자 늘려라” 외쳤지만 개선 없어

다만 여성지도자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2008년에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여자 프로농구 감독의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문화관광부(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선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으로 여성지도자 할당제 도입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현재 시행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측은 “할당을 채울 수 있는 여성 인력 풀 자체가 부족하다”고 해명했다. “남성 중심적인 체육계에도 여성들의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면서 “지도자의 길을 택한 여성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할당을 채우고 싶어도 채울 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점을 인식하고 여성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더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지도자가 되지 않으려는 이유는 뭘까. 빙상연맹 측은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답하기 힘들다”면서도 “훈련이나 생활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여성 선수들 스스로가 힘들겠다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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