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대신 비용 지불하는 ‘제3자 지불 시장 모델’ 진화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7 08:00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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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방송·교육·택시·빨래방 등 다양하게 적용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각광

동·서독 통합으로 세상이 시끄럽던 1990년,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 생활정보지 하나를 창간했는데 정보 제휴를 제안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유럽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청년으로, 함께 공부하던 세 친구와 함께 무가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아니, 신문을 공짜로 배포한다고?” 당시까지만 해도 신문은 당연히 돈 주고 구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던 때라 필자는 되물었다. 그는 “유럽에 분류 광고지(classified AD)가 있는데, 이 비즈니스 모델을 미러링(mirroring)한 생활정보지”라며 국내 안착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 청년들이 창업한 기업이 바로 국내 최초의 생활정보지 ‘교차로’다.

기업이 소비자 대신 서비스 이용 대금을 지불하는 제3자 지불 비즈니스 모델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 아이스크림 회사가 진행한 무료 샘플링 행사 모습 ⓒ 연합뉴스
기업이 소비자 대신 서비스 이용 대금을 지불하는 제3자 지불 비즈니스 모델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 아이스크림 회사가 진행한 무료 샘플링 행사 모습 ⓒ 연합뉴스

국내 분류 광고지 사업 원조는 ‘교차로’ 

‘분류 광고지’는 그림이나 로고가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텍스트 광고를 모집, 학원이나 매물 등 카테고리를 분류해 광고를 싣는 정보지를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 대부분의 일간지에서 볼 수 있었던 소위 ‘줄광고’를 무료화한 광고 전문지인 셈이다. 당시 필자는 PC통신에 유료 창업정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던 터라, 무료로 정보를 배포한다는 말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1995년 분류 광고지 모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창업가 크레이그 뉴마크(Craig Newmark)에 의해 온라인 플랫폼으로 발전하게 된다. 

‘교차로’와 같은 사업을 ‘제3자 지불 시장 모델’로 정의할 수 있다. 서비스 이용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고, 제3자가 소비자 대신 지불해 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말한다. 다음 사례를 보자. 일본 도쿄대 앞에는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숍이 하나 있다. 커피를 마시거나 스터디를 해도 모두 무료다. 다만 제공하는 대상은 도쿄대 학생으로 제한된다. 운영비와 인건비 등은 대기업이 후원해 주는 전형적인 제3자 지불 시장 모델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복사기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모델(Tadakopi)도 있다. 복사 용지도 모두 무료다. 용지 한쪽 면에는 기업 광고가 인쇄돼 있다. 이 아이디어는 호주에서 시작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바 있다. 유사한 아이디어로 창업한 일본의 ‘에코풀(Ecoful)’도 현재 인기를 얻고 있다. 홀더용 노트종이(loose-left paper)를 무료로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B5 사이즈 기준으로 회당 16매까지 제공하되, 하단에 기업의 박스광고가 인쇄돼 있다. 앞서 언급된 서비스 모델들은 모두 지원금이나 광고로 유지되며, 주로 명문대를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급 두뇌를 유치하고 더불어 이미지 제고를 위한 프로모션 효과를 얻고자 함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제3자인 기업들은 왜 이렇듯 무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상 고객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인지적 편안함과 친숙함을 느끼는 ‘자욘스(Zajonc) 효과’다. 다른 하나는 ‘반보성(返報性)의 원리’로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입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브랜드에 대한 ‘장기기억(long-term memory) 효과’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고도의 심리적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제3자 지불 시장 모델에 참여하는 기업도 있지만 직접적인 홍보효과를 내기 위한 방법으로도 활용된다. 지난해 한시적으로 도쿄 일부 지역에서 시행된 ‘0원 택시’도 제3자 지불 시장에 기반한 마케팅 모델의 하나로 꼽힌다. 승객은 무료로 이용하되 요금은 택시에 광고를 입힌 스폰서 기업이 부담하는 구조다. 이 택시를 이용하려면 최근 론칭한 차량공유 플랫폼의 앱(MOV)을 다운받기만 하면 된다. 

1차 스폰서인 닛산식품 측은 “일반 교통광고에 비해 결코 높은 금액이 아니다”며 간헐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0원 택시’ 모델은 스폰서 기업이 자연스럽게 두 개로 늘어난다. 1차 스폰서인 닛산식품이 택시요금을 부담하고, 2차 스폰서인 앱 사업자가 다운로드 수만큼 리워드를 제공하는 구조여서다.     

서울시와 KT 후원으로 주민들의 의류와 침구류를 무료로 세탁해 주는 돌다릿골 빨래터 제막식이 최근 열렸다. ⓒ 연합뉴스
서울시와 KT 후원으로 주민들의 의류와 침구류를 무료로 세탁해 주는 돌다릿골 빨래터 제막식이 최근 열렸다. ⓒ 연합뉴스

무료 서비스 통해 실적과 브랜드 노출 가능

그렇다면 제3자 지불 시장 모델은 지원금이나 마케팅 수단으로만 한정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일본에 ‘무료 옷입기 교실’이 있다. 이용자 체형과 기호에 맞는 코디네이션을 지도해 주고, 그에 맞는 의상을 하루 동안 입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의류는 모두 기업이 제공하며, 이용자가 구매했을 때 보상해 주는 방식이다. 화장품 샘플 제공업도 같은 맥락이다. 여러 브랜드의 샘플을 무료로 제공하고, 실제 구매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모델이다. 변형된 모델이지만 남녀 간 만남을 콘셉트로 한 ‘합석주점’도 인기다. 마음에 드는 이성과 합석하게 되면 그 비용을 남성이 부담하는 구조다.

국내 일부 프랜차이즈 컨설팅 업체들이 최근 무료 특강을 자주 여는 것을 볼 수 있다. 공간 대여 및 강사비 등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민간 사업자가 무료를 표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특강 중간에 가맹본부들에 사업설명회 기회를 주고 대가를 받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가맹계약이 성사되면 추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대학들이 해외 유학생 유치를 위한 ‘해외학교’ 운영을 일부 지원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있다. 현지에서 대학 교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사업을 하되, 운영비 일부를 한국의 대학에서 지원한다. 수강생 가운데 유학을 원하면 지원 대학으로 입학을 주선하는 구조다.

민간방송의 무료 시청에서 쿠폰 플랫폼, 메신저의 국제전화 무료, 편의점의 무료 빨래방 등 제3자 지불 시장 비즈니스 모델은 현재 다양한 방법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웹(web)의 등장으로 익숙해진 무료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붙잡아 새로운 사회혁신 모델로 접근하려는 시도다. 구조적으로 제3자 지불 시장 모델은 사회참여형 모델이어서 큰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수익모델을 투트랙으로 가져간다면 보람과 이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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