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목포의 눈물’…‘손혜원 논쟁’으로 쪼개진 민심
  • 전남 목포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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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목포’ 시민들 일제히 논쟁의 한 복판에 가세
“오히려 홍보 됐네요” vs “투기를 고맙다 해야 하나요”
손혜원 의원 투기의혹 갈수록 커지자 지역 여론 점점 부정적 방향으로 흘러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마르쿠제(H.Marcuse)는 인간의 사유방식을 1차원적 사유와 2차원적 사유로 구분한다. 그는 2차원적 사유는 주어진 현실의 틀을 넘어서 보다 나은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과 대립한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1차원적 사유는 인간의 사상과 행동이 체제 안에 완전히 내재화해 변혁력을 상실, 현실의 틀을 넘어서는 것을 거부한다고 했다. 

전남 목포는 우리나라 국도 1. 2호선의 기점인 항구다. 일제에 대한 저항을 노래한 ‘목포의 눈물’ 도시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때는 전국 5대 도시에 꼽힐 정도로 대도시였다. ‘개가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번화한 곳이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당시 번화했던 유달산 동남쪽 도심은 7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유지라기보다 방치됐다는 것이 더 정확할 듯싶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전남도청 이전은 ‘현찰’이고, 여수엑스포 유치는 ‘어음’이라고 설파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포와 붙어있는 무안 남악신도시에 도청이 들어서며 옛 도심인 만호동과 유달동은 사람이 떠나 더더욱 생기를 잃었다. 덩달아 그 공간에 머무는 주민들도 활력을 잃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조카가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창성장’ 게스트하우스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의 조카가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창성장’게스트하우스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그런 목포가 다시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른바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투기의혹 논쟁’ 때문이다. 이 논쟁으로 쇠락한 목포가 깨어난 것이다. 손 의원의 투기 의혹이 잠자던 목포 시민의 비판성에 불을 지르면서다. 지금 목포는 손 의원의 근대역사문화공간 지정 구역 내 투기 의혹에 대해 진위 논란이 치열하다. 이 일대는 2017년 12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되고 지난해 8월 문화재구역에 지정됐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과 인접 지역에 투입될 국가 예산은 1100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2017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손 의원의 조카나 남편이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과 친인척, 보좌관 등 명의로 개항문화거리 내에 있는 건물들이 집중 매입된 게 골자다. 상당수가 문화재로 등록되기 전에 거래됐고 이 지역이 문화재로 등록된 이후 건물 값이 뛰었다는 것이다. 

 

갑론을박에 “복잡·혼란”…“孫 덕분에 죽은 도심개발” vs “투기로 원주민 피해”

손 의원이 측근들과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인지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한 것인지가 1차적인 논쟁거리다. 목포 근대 문화재 보존과 구도심 재생을 위해 건물을 매입했을 뿐이라는 것이 손 의원의 주장이다. 반면 문화재 보호라는 공적 영역에서 국회의원이 부동산 매입이라는 사적 이익을 추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세를 얻고 있다. 이로 인해 목포 시민은 일제히 논쟁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었다. 역대급이다. 식당이나 술집, 찻집에서 단연 화제는 일명 ‘손혜원 투기 의혹’이다. 길거리 곳곳에서는 자신의 견해들을 소신껏 피력하는 판이 열린다. 

그러나 이 논란을 바라보는 목포시민들은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이해충돌 금지 논란과 함께 ‘투기냐 아니냐’는 선악 다툼, ‘의도가 선하면 문제가 아니다’는 합리화 논리가 한데 뒤섞이면서다. 특히 손 의원이 지역 재개발 조합과 건설사의 연루설까지 제기하자, 주민들의 의견도 크게 엇갈리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난데없는 전국적 관심에 당황스러운 기색도 역력하다. 번화했던 일제 강점기 이래 받는 스포트라이트가 생경해서다. 

목포 근대문화역사관(구.동양척식주식회사)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목포근대역사관(구.동양척식주식회사)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비판론 “불순한 돈으로 건물 사줘서 고맙다고 구걸해야 하나”

손 의원 측의 목포 부동산 매입과 관련한 논란이 지속되면서 지역 민심도 반으로 쪼개졌다. 손 의원 덕분에 죽은 도심이 개발됐다는 측과 투기로 원주민이 피해를 봤다는 측이 맞서고 있다. ‘두 개의 목포’를 보여준다.

일부 주민들은 손 의원의 공인으로서 적절치 못한 처신을 비판했다.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고 했건만, 손 의원은 오얏나무 가지를 쥐고 흔들기까지 했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문화재 사랑이 지극했어도 20여채나 되는 부동산을 매입한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손 의원이 실제로 투기를 한 것은 아니더라도 ‘공직자는 공익과 충돌되는 사적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이익충돌 금지 원칙을 어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투기 여부에 앞서 소관 상임위 사업과 관련된 부동산을 대량 매입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손 의원은 공직자 기본 윤리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정태관 목포문화연대 대표는 “투자보다는 근대유산 보존방법을 마련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목포 구도심을 살리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지인들 통해서 순수하게 투자를 할 수도 있지만 문광위 간사이자 국회의원 신분으로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하지 않겠느냐”며 “손 의원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대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면 정책으로도 가능한데도 지인 등을 통해 지키려고 함으로써 스스로 투기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근거를 만들어버렸다는 얘기다. 그는 “알음알음 지인을 통해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지인 등을 통해 추진할 게 아니라 지역 주민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했다면 모양새가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근대문화역사관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정 아무개(31)씨는 “국회의원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문화재 지정 정보를 입수한 의혹이 짙다”며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어떻게 지역발전론과 동일시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시민은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가족과 보좌관을 동원해 20여 채를 사들인 것을 투기 아니면 뭐로 봐야 하느냐”며 “쇠락한 거리의 건물을 사줘서 고맙다는 식의 구걸하는 듯한 인식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옹호론 “낙후된 원도심 발전에 좋은 기회, 먹고사는 것이 정의다”

하지만 손 의원에게 우호적으로 쏠리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은 그동안 너무 지역이 낙후돼 집값이 크게 저평가된 때문인지 투기가 아니라는 주장이 강했다. 옹호론자들은 ‘낙후된 원도심 발전에 좋은 기회’를 마련해줬다고 설파한다. 

원도심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사회적 기업가 강성곤(63)씨는 “손혜원 의원을 결코 두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으로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지금 어려운 목포사람들에겐 먹고사는 것이 정의다”면서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있던 그 거리가 이렇게라도 살아난다는 건 아주 잘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혹진씨는 “주민 일부는 근대문화거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데 손 의원에 의해 전국적인 홍보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사회단체 제3의길 주동식 대표는 “통속적인 이기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손 의원은 나름 소신 때문에 목포에 꽂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목포지역 주요 정치인들도 손 의원을 두둔하고 있다. 최기동 전 목포시의회 의장은 “폐허가 된 원도심 땅값이 오르고, 건물이 리모델링되고, 가게들이 들어서고, 더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하면, 그만큼 목포도시재생사업이 성공을 거두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최 전 의장은 “지금까지 어느 국회의원이, 어느 시장이, 지인들에게 목포가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집이나 가게를 사라 소개한 사람이 있었느냐”고 항변했다. 자신을 민주당원이라고 밝힌 김덕술(63)씨는 “꺼진 창이라는 도심의 밤거리를 걸어봤다면 사람의 흔적도 없는 상가의 퇴색한 불빛도 보았으리라. 그러한 그곳에 한집 두집 불을 밝힌 계기를 마련한 일이 왜 그리 잘못이란 말인가”라고 힐난했다.

손혜원 의원 조카가 운영하는 손소영 갤러리카페. 전국에서 내려온 기자들로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손혜원 의원 조카가 운영하는 손소영 갤러리카페. 전국에서 몰려온 기자들로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 시사저널 정성환 기자

그러나 손 의원 가족·측근이 매입한 건물 규모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여론의 흐름도 조금씩 변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손 의원이 친인척·지인 등의 명의로 투기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는 매입 시기 등을 고려할 때 ‘투기 목적은 아닐 것’이라는 분위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후 손 의원이 매입한 주택이 언론 보도로 애초 9채에서 20여채로 늘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현지 주민들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지는 등 상황이 반전되는 형국이다.

특히 손 의원이 직접 11억원을 대출받아 목포 부동산 매입 자금을 댄 것으로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지자, 시민들 사이에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직장인 정아무개(48)씨는 “목포가 고향도 아닌 사람이 매달 수백만원 이자를 내면서까지 목포 구도심을 살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한두 채는 살 수 있다. 그건 이해하겠다”면서도 “하지만 20여채 매입이 사실이라면 손 의원이 말하는 ‘지역 발전’ 치고는 너무 많이 매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태도도 변했다. 박 의원은 사태 초반만해도 “투기가 아니라고 확신한다”라거나 “해외투자를 받은 기분” 등의 SNS메시지로 손 의원을 두둔했다. 그러나 부동산 20곳 보유 사실이 보도되자 그는 “손 의원 스스로 수사 의뢰해야 한다”며 입장을 바꿨다. 

 

“투기 의혹으로 근대역사문화조성사업 좌초돼선 안돼” 걱정

이처럼 민심이 쪼개진 가운데 손 의원의 ‘투기 의혹’으로 근대역사문화조성사업이 좌초돼선 안 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공감대를 이룬 모양새다. 창성장 옆 오토바이 가게를 운영하는 이아무개(65)씨는 “투기 논란으로 인해 이곳에서 진행될 사업들이 취소될까 그게 가장 두렵다”며 “솔직히 손 의원의 목적이 투기이든 아니든 큰 관심 없다. 다만 그분의 목적이 어떻게 됐든 이 거리가 발전해 활성화되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문화재 전문가인 연규헌 도시주택연구소장은 “손 의원 투기 의혹 사태로 인해 문화재 지정 등과 관련한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그동안 수동적으로 끌려갔던 주민들도 ‘외부 요인’(손혜원 사건)으로 문화재 지정 등의 문제점을 알게 됐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논란이 소모성 갈등으로 그치지지 않기 위해선 정치적 무력감이나 무관심, 정치가나 행정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에서 벗어나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결정과 집행에 적극적인 ‘자치’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한편 손혜원 의원은 검찰에 수사요청을 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손 의원은 18일 ‘KBS 뉴스9’에 출연, “논란이 되고 있는 투기, 피감기관 압력 및 이해충돌 시비 등 모든 것에 대해 제 스스로 검찰에 수사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자진 검찰 수사의뢰’라는 손 의원의 카드가 저항의 도시에서 누구에게 ‘목포의 눈물’을 흘리게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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