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銀, 3조원대 매출 올린 계약업체에 “방 빼”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3 17:00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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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협銀, 대출모집법인 4곳 일방적 계약 해지 논란
새 법인 선정 위한 입찰서도 ‘파열음’

갑질 대출과 부실경영 등으로 매년 국정감사의 표적이 됐던 SH수협은행이 또다시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3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 대출모집법인 4곳과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게 발단이었다. 200명에 달하는 모집법인 직원이나 상담사들은 ‘집단 멘붕’에 빠졌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수협은행의 계약 해지 통보는 갑질을 넘어서는 횡포”라고 외쳤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관련 민원을 접수하고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협은행은 10월10일 대출모집법인 4곳의 대출 영업을 갑자기 중단시켰다. 이들 법인이 지난해 기록한 대출 규모만 3조원대에 이른다. 그해 수협은행이 올린 소매여신 증가액의 75% 수준이다. 이런 업체를, 그것도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영업 중단을 지시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출모집법인 관계자는 “이번에 계약을 해지당한 업체 중 한 곳은 10년 가까이 수협과 영업을 같이 했다. 영업 실적이 안 좋아 적자일 때는 방치했다가 이제 실적을 내니 내쫓았다”며 “이들 업체가 수협과 맺은 계약 종료일도 12월과 1월 등으로 제각각이니만큼 수협이 일방적으로 영업 중단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협은행이 2018년 3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 대출모집법인과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갑질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수협은행 본점 ⓒ 시사저널 최준필
수협은행이 2018년 3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 대출모집법인과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해 갑질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수협은행 본점 ⓒ 시사저널 최준필

1조원대 공적자금 상환 의지 있나 

당황스럽기는 법인 소속 대출 모집인들도 마찬가지다. 대출 모집인의 경우 기본금이 없는 촉탁직이다. 1개월의 대출 실적이 그 다음 날 수수료로 지급된다. 하지만 수협이 일방적으로 대출 모집을 중단하면서 생계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출 모집인은 “일시적으로 손해를 보겠지만 내년을 기대하며 참았다”며 “하지만 갑자기 수협이 계약 해지를 통보해 당황스럽다.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수협은행은 현재 1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 수협은행은 1997년 불거진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1997년 851억원 수준이던 누적 결손금은 2000년 9887억원까지 높아졌다. 정부는 2001년 예금자 보호와 어업인에 대한 정책자금 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1조1581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수협은 이 돈을 상환하지 않았다. 16년이 지난 2017년까지 수협이 상환한 돈은 127억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 돈도 그해 4월 처음으로 납부했다. 이동빈 수협은행장이 취임한 직후였다. 나머지 1조1000억원가량은 2028년까지 나눠 상환할 예정이다. 언뜻 계산해도 매년 1000억원이 넘는다.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28년으로 예정된 공적자금 상환 일정을 202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적이 좋은 대출모집법인을 활용해 은행의 수익성을 높여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수협은행이 이들 모집법인과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내부적으로도 뒷말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수협 측도 문제가 있음을 일부 인정했다. 이 은행의 한 관계자는 “모집법인에 대한 대안 없이 계약을 해지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면서도 “모집법인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민원 또한 적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별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1개 법인으로 통폐합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수협은행이 올해 1월초 새로운 모집법인을 선정하면서 공개경쟁을 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4개 법인과 계약을 해지한 후 1개 법인만 뽑는 입찰을 했다. 공개입찰을 하게 되면 기존 법인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는 만큼 4개 업체에만 입찰 권한을 준 제한경쟁이었다”며 “일부 잡음이 있지만 은행의 체질 개선을 위한 조치로 이해해 달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수협은행은 지난해 11월 중순 4개 법인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후, 기존 모집법인 중 1개 법인만 모집법인으로 선정하는 입찰 계획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대출 실적 1위 업체와 4위 업체가 합병한 A사, 2위 업체 및 3위 업체가 합병한 B사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 1월10일 새 모집법인 선정 결과가 발표됐는데, 기존 2위 업체와 3위 업체가 합병해 탄생한 B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계약에서 탈락한 A사 측은 “B사가 수협은행으로부터 입찰 시 충족시켜야 할 새 요건을 미리 전달받은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동빈 수협은행장 ⓒ 연합뉴스
이동빈 수협은행장 ⓒ 연합뉴스

은행 측 “1개 법인 통폐합 위한 조치”

일례로 이번 입찰에서 가장 배점이 높은 항목(20점)이 ‘모집법인 권역별 대출상담사 보유율’이다. 권역별로 대출상담사 필요 인원 수를 미리 지정한 것인데, 서울·경기·인천이 85명으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경상도가 20명을 차지했다. 눈에 띄는 사실은 전라도·제주도가 15명으로 충청도·세종(6명)이나 강원도(5명)보다 2~3배가량 높다는 점이다. 

수협은행 측은 “지역별 상담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찰에서 탈락한 A사의 주장은 달랐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호남지역은 매출이 많지 않아 대출상담사를 구하기 쉽지 않다. 이런 지역에 가점을 준 이유를 모르겠다”며 “특정 업체와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입찰에 수협은행 고위 인사가 개입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수협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은행 고위 관계자 C씨가 특정 업체를 모집법인으로 끼워 넣으려다 여의치 않자 판을 흔든 것으로 보고 있다. 모집법인과의 공식적인 간담회 자리에서 윗선의 압박이 심하다는 은행 직원의 토로까지 있었다”며 “B사는 입찰을 앞두고 자본금을 높이는 등 요건을 충촉했다. 입찰을 앞두고 사전에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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