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지자체에 활기 불어넣는 ‘고향세’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31 10:09
  • 호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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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 기부하면 세금 감면 혜택
세금 사용처도 지정 가능

최근 일본 도쿄 다이토(臺東)구에 사는 한국인 회사원 A씨의 집으로 쌀 20kg이 배달됐다. 아오모리현(青森縣) 니시쓰가루군(西津輕郡)의 아지가사와정(鰺ヶ澤町)에서 생산된 쌀로, ‘고향세(고향납세·ふるさと納稅)’의 답례품이다. 고향세는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고향이나 응원하고 싶은 자치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제도다. 기부 금액에서 2000엔을 제외한 금액을 소득세, 주민세에서 감면받을 수 있다.

8년째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3년 전쯤 이 제도에 관해 알게 됐고, 올해  처음 시도해 봤다. 절차가 복잡할 것 같아 망설여 왔지만, 이직한 회사의 회계담당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추천해 주었기에 아지사가와정과 오이타현(大分縣)의 구니사키시(國東市)에 기부했다.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에서 생각보다 쉽게 신청할 수 있었다. 아지가사와정에는 2만 엔을 기부하고 쌀 20kg을 답례품으로 받았다. 구니사키시에는 5000엔을 기부하고 지역특산품인 귤 5kg을 받을 예정이다. 확정 신고 때 답례품과 함께 받은 기부 증명서를 제출하면 A씨는 총 2만5000엔 가운데 2만3000엔의 세금을 감면받게 된다. 

일본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의 고향납세 페이지. 쉽게 ‘고향세’를 알아보고 신청할 수 있도록 만든 덕분에 납부액이 크게 급증하고 있다.
일본 인터넷 쇼핑몰 라쿠텐의 고향납세 페이지. 쉽게 ‘고향세’를 알아보고 신청할 수 있도록 만든 덕분에 납부액이 크게 급증하고 있다.

세금 중요성, 자치 의식 고취 효과

일본에서 2008년부터 도입된 고향세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공헌할 수 있는 제도’ ‘내가 응원하고 싶은 자치단체를 선택할 수 있는 제도’로 만들어졌다. 답례품으로 지역특산품을 받을 수 있는데, 답례품으로 특산품이 지정되면 생산자는 고향세 사이트를 통해 자연스레 상품을 홍보할 수 있다. 이는 지역 활성화로 이어진다. 기부자는 답례품에 만족하면 다시 주문하기도 한다. 

자치단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부금 사용처를 지정할 수도 있다. 재해 지역 지원, 장학금 조성 등이 있으며 A씨도 구니사키시에 기부하면서 ‘산업 진흥’ ‘건강·복지 증진’ ‘교육·문화 발전’ ‘지자체에 맡김’ 중에서 ‘교육·문화 발전’을 사용처로 지정했다. 

기부금을 모금할 때부터 사용 방법을 구체적으로 한정하는 경우도 있다. 오카야마현(岡山縣) 세토우치시(瀬戶内市)에서는 시내의 한센병 요양소 두 곳의 보존을 위한 크라우드펀딩에 고향세를 접목시켰다. 과거 격리 정책의 상징이었던 역사적 건물을 보존해 한센병에 대해 알리고 편견과 차별 해소를 위한 상징으로 남기는 것이 목표다. 

도쿄 스미다(墨田)구의 경우 ‘호쿠사이 고향세’를 시행하고 있다. 기부금은 스미다 출신의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1760~1849)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의 관리·운영과 자료 수집 등에 사용된다. 또 ‘스미다구 호쿠사이 기금’ ‘스미다구 문화관광 기금’으로 운용된다. 답례품으로 스미다구의 지역특산품인 유리공예품을 받을 수도 있다. 작품 전시 때 이름을 게시한다거나 무료입장 혜택을 선택할 수도 있다. 호쿠사이 팬이라면 매력적인 특전이다. 
고향세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먼저 납세자가 세금의 사용처를 선택함으로써 세금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다. 납세 금액의 일부를 기부하는 형태이긴 하지만 자신의 의사로 세금 사용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세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또한 세수를 분산시킴으로써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 인구 감소로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지자체의 유지와 발전에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자치의식’의 진화를 기대할 수 있다. ‘납세’ 즉 기부를 받고 싶은 지자체는 기부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게 된다. 특산품을 개발하면서 지자체 사이에도 선의의 경쟁이 생겨난다. 지역 주민들도 고향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자체의 세수와 그 사용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지나친 답례품 경쟁으로 부작용이 발생했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제도를 재검토하기에 이르렀다. 고가의 호화로운 답례품을 제공하는 지자체에 기부가 집중되면서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제도가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불균형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답례품 경쟁 과열 부작용도

답례품으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고급 쇠고기, 게, 쌀 등이다. 이와 같은 상품이 생산되는 지자체는 기부금이 많이 모인다. 2017년도 고향세 수입금 1위를 달성한 오사카부(大阪府) 이즈미사노시(泉佐野市)는 1만 엔을 기부하면 맥주 24캔을 답례품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특산품도 없고 답례품 마련을 위한 비용이 수입보다 큰 지자체는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일본 총무성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구마모토현(熊本縣) 기쿠요정(菊陽町)은 2017년도 고향세로 인해 약 2300만 엔의 적자가 발생했다. 이곳은 2016년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답례품이 제공되지 않는 재해 복구를 위한 기부는 줄고, 된장과 말고기 등 답례품 마련을 위한 비용만 늘어났다. 또 지역 주민이 다른 지자체에 기부한 금액이 전년도에 비해 크게 증가하면서 적자가 전년도보다 약 1800만 엔 늘어 재정이 악화됐다. 

시즈오카현(静岡縣) 오야마정(小山町)의 2018년도 고향세 기부금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약 249억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9배나 많은 수익을 달성했다. 이는 답례품으로 기부금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의 아마존 기프트권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야마정 입장에선 인구 감소 대책으로 충분한 재정확보가 가능해졌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답례품 경쟁 과열로 이어져 오히려 재정이 악화된 지자체가 발생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이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답례품이 기부금액의 30%를 넘지 않도록 하고 답례품은 지역 관련 상품으로 제한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6월부터는 고향세 대상에서 제외시키기로 했다. 

원래 취지대로 기부금의 사용처와 응원하고 싶은 지자체에 대해 충분히 조사한 뒤 고향세 제도를 이용하기를 권하고 있지만, 답례품만을 고려해 기부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자체에 관해서도 애착을 가지고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면밀히 살핀 후 기부를 결정하는 시민의식이 선행돼야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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