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골프 규칙에 희비 엇갈리는 선수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3 13:00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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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빠르게!’ 골프 규칙에 프로들도 실수 잇달아

2019년 새롭게 바뀐 골프 규칙은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1744년 마련된 골프 규칙.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제정하는 골프 규칙은 이번에 대대적인 개정을 시도했다. 플레이 속도를 높이는 데 치중해 USGA와 R&A가 새로 만든 골프 규칙은 아마추어 골퍼는 물론 프로 골퍼에게도 ‘헷갈리는 부분’이 많아 자칫 실수로 이어져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경기를 시청하다 보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필드의 과학자’ 브라이슨 디샘보(미국)나 애덤 스콧(호주)이 그린에서 깃대를 꽂은 채로 퍼트하는 광경도 종종 볼 수 있다. 무엇이 변했을까. 무엇보다 경기진행이 무척 빨라진 것을 볼 수 있다. 골퍼들이 쉽고 빠르게 플레이하도록 대폭 수정한 탓이다. 이번 개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준비된 골퍼부터 먼저 치라는 것’이다. 이른바 ‘레디 골프’의 권장은 플레이 속도를 높이기 위한 특단의 조치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린에서 깃대를 꽂아놓고 플레이를 하다 보니 플레이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라졌다. 

리하오퉁이 1월26일 UAE 두바이의 에미리츠 골프클럽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오메가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티샷하고 있다. ⓒ AP 연합
리하오퉁이 1월26일 UAE 두바이의 에미리츠 골프클럽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오메가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티샷하고 있다. ⓒ AP 연합

리하오퉁, 캐디 실수로 상금 1억가량 날려

그린에서 선수 대신 캐디가 마크하고 볼을 집어 올리게 허용한 것과 선수가 샷을 하기 전에 캐디가 뒤에서 정열 상태를 봐주지 못하도록 한 부분도 눈에 띈다. 라인을 보는 것은 선수 스스로 하라는 것이다. ‘선수가 자세를 취하기 전까지는 캐디가 고의로 선수의 뒤에 서 있는 것을 금지한다’는 새 규칙의 첫 희생자는 중국의 라이징 스타 리하오퉁이다. 이 규칙 위반으로 1억원가량의 상금을 날렸다. 

리하오퉁은 1월27일 UAE 두바이의 에미리츠 골프클럽에서 열린 유러피언투어 오메가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 최종일 4라운드 18번 홀(파5)에서 짧은 버디 퍼트에 성공했다. 이 대회 디펜딩 챔피언인 리하오퉁은 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이안 폴터(잉글랜드) 등과 함께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치는 듯했다. 하지만 리하오퉁이 18번 홀 그린을 떠날 무렵 마지막 홀 버디는 보기로 바뀌었다. 그의 캐디가 바로 뒤에 서 있던 것이 적발된 것이다. 캐디가 선수 바로 뒤에 서서 공의 정렬 상태를 봐주는 모습은 지난해까지 흔히 볼 수 있던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지난 1일부터 새로 적용된 규정에선 허용되지 않는다. 

골프는 뭐니 뭐니 해도 규칙에 앞서 매너를 중시하는 게임이다. ‘몰(沒)매너’로 인해 동반자가 눈살을 찌푸리고, 경기가 재미없어지고 짜증 나기 때문에 플레이 중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골프다. 몰상식한 골프 매너로 망가진 선수는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다. 그는 경기 중 잔디를 훼손해 실격을 당했다. 퍼팅 실수에 화가 나 퍼터로 그린을 내리친 것이다. 

가르시아는 2월3일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이코노믹시티의 로열 그린스 골프 앤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유러피언프로골프투어 사우디 인터내셔널 3라운드를 1오버파 71타로 마쳤다. 하지만 실격당해 최종일 4라운드에 진출할 수 없게 됐다. 퍼터로 그린을 망가뜨리는 심각한 위반을 저지른 가르시아는 골프 규칙 1조 2항 ‘선수는 타인을 배려하고 코스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어겼다. 가르시아는 “결정을 존중한다. 실망해 그린을 손상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동료들에게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제부터는 그린에서 홀에 깃대를 꽂은 채로 해도 된다. 가장 큰 변화다. 브라이슨 디샘보(미국)는 PGA투어에서 깃대를 그대로 두고 퍼트를 해 눈길을 끌었다. 벌타가 없지만 스트로크를 하기 전에 결정해야 한다. 볼이 움직이는 동안에는 깃대를 그대로 놔둬야 한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준비된 사람이 먼저 칠 수 있게 해

티잉 그라운드에서의 티샷이나 페어웨이에서의 두 번째, 세 번째 샷을 할 때 ‘준비된 사람’이 볼을 먼저 쳐도 된다. 그런데 티샷에서는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예의상 전 홀에서 가장 스코어가 좋은 골퍼가 먼저 치는 것이 그동안 상식이었으나 이제는 먼저 준비한 사람이 치면 된다. 내가 볼을 칠 차례인데도 그때 가서야 볼이나 장갑을 찾으면서 늑장을 부리는 사람이 적지 않아 경기가 지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바꾼 것이다. 

다만, 안전이 문제다. 페어웨이에서 그린에 가까운 골퍼가 앞에 나가서 볼을 먼저 칠 경우, 자칫 뒤에서 치는 골퍼의 볼에 맞을 수 있어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그린에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준비됐다고 홀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골퍼가 먼저 스트로크하면 보다 먼 거리의 동일 선상에 있는 동반자의 볼 라인을 밟을 수 있어 마찰의 소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중에 선수들이 분실구를 찾는 시간이 5분에서 3분으로 줄었다. 또한 40초 이내에 모든 샷을 끝내야 한다. 벌타 완화를 비롯해 규칙을 단순화한 것도 이번 개정의 특징이다. 스윙 도중 볼이 두 번 이상 클럽 페이스에 접촉하는 이른바 ‘투 터치’나 볼을 찾다가 실수로 발로 밟거나 그린 위에서 우연히 볼이 움직인 경우 이젠 벌타가 없다. 선수가 친 볼이 자신의 몸이나 캐디 또는 소지품에 맞으면 2벌타를 부과하던 규정도 폐지됐다. 벙커를 제외한 해저드 구역에서는 클럽이 지면이나 물에 닿아도 벌타가 없다.

손상된 클럽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규정도 없어졌다. 플레이 중에 손상된 클럽은 계속 사용해도 된다. 부적합한 클럽이 캐디백 속에 들어 있어도 벌타는 없다. 다만 14개 클럽 이내여야 한다. 부적합한 클럽으로 플레이하면 실격이 된다. 라운드 도중에 화가 나면 클럽을 땅에 후려치거나 집어 던져 간혹 클럽이 손상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퍼터를 재미 삼아 골프화 바닥을 털기 위해 톡톡 치다가 샤프트가 휘어지기도 한다. 이때 손상된 클럽을 계속 사용해도 된다. 수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클럽 교체는 안 된다. 

골프 규칙은 플레이어에게 벌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 경기자가 보다 즐겁고 안전하게 골프 경기를 하게끔 도우려고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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