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미래가 빠진 “미래로!”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4 09:00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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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17일 취임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전국위원회에서 이런 말을 내놓았다. “계파 논쟁과 진영 논리를 앞세운 정치를 인정하고 적당히 넘어가라고 이야기하지 마라. 차라리 잘못된 계파 논쟁과 진영 논리 속에서 그것과 싸우다 죽으라고 이야기해 달라.”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던 김 비대위원장의 자유한국당행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지만, 오히려 그런 그이기에 보수정당에 새바람을 일으킬 적임자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드러낸 사람도 꽤 많았다.

그러나 7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의 손에 쥐어진 결과는 허무하리만치 참담하다. 그는 취임사에서 당차게 공언했던 것과 달리 제대로 싸우지도, 이겨내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가 맞서 싸우겠다고 했던 계파 논쟁은 더 심해졌고, 진영 논리 또한 깊어졌다. 그가 당의 간판으로 있던 기간 동안 당은 되레 과거의 역사, 과거의 인물이 남긴 그늘에 고스란히 갇혔다. 5·18에 대한 터무니없는 망언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이 부각되는 등 퇴행에 퇴행을 거듭했다.  

새로운 당 대표를 뽑기 위해 열린 전당대회에서도 반전은 없었다. 참신한 인물 없이 ‘그때 그 사람들’끼리 경쟁을 벌인 끝에 ‘어대황(어차피 대표는 황교안)’으로 막을 내렸다. 예상했던 그대로다. 공개 석상에서 5·18 유공자를 ‘이상한 괴물 집단’으로 매도해 논란을 일으켰던 김순례 의원도 이변 없이 최고위원에 당선했다.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가 열린 27일 일산 킨텍스에서 당대표에 선출된 황교안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가 열린 27일 일산 킨텍스에서 당대표에 선출된 황교안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전당대회는 누구나 알다시피 당의 최대 축제이자 당의 외연을 넓힐 절호의 기회다. 잘만 하면 강력한 컨벤션 효과를 통해 국민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당은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한 채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 권력을 잃은 야당이 믿을 구석은 결국 민심밖에 없다. 단순 반사이익으로 여론의 지지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민에게서 힘을 얻고 답을 얻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자기들끼리 치고받기 바쁜 채 국민에게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다. 내 편만이 아닌 국민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을 얘기도 내놓지 않았다. 다음 정권을 맡겨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믿음직한 모습 또한 보여주지 못했다. 그렇게 전당대회라는 황금 시기를 허비했다. 한국당의 이번 전당대회 슬로건은 ‘다 함께 미래로!’였다. 대회장마다 그 문구가 벽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그 굵은 글씨의 무게감이 무색할 정도로 ‘미래’에 대한 얘기는 어디에서도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이제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물러났다. 그의 실험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물론 시간을 더 두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고별 기자회견에서 그가 새 지도부에 남긴 “과거의 시각이 아니라 저변에 깔려 있는 변화의 흐름들을 잘 읽고 새로운 설계를 해 달라”는 말은 결코 그 혼자만의 주문이 아닐 것이다. 한국당이 과연 그 같은 변화 요구에 제대로 응답할지는 이제 전적으로 황교안 대표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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