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적폐로 몰린 4대강
  • 정두언 前 국회의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06 16:00
  • 호수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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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서울 마포 한강변에서 살았다. 매년 여름마다 홍수가 나서 집이 물에 잠겼다. 한강물은 늘 악취가 진동했고, 겨울이면 물이 말라 강바닥의 오물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똥통머리라 불리던 동네 어귀에 거대한 배변 집하장이 있었는데, 그 처리 방법은 너무도 간단했다. 비 오는 날 수문을 열어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개발되기 전까지 한강은 한마디로 하수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던 한강이 지금은 어떤가. 홍수는 사라진 지 오래고, 물이 많아져 배가 다니고, 물이 맑아져 고기도 잡고, 드넓은 고수부지에는 공원들이 들어섰고, 시원하게 뚫린 남북 강변도로는 서울의 대동맥이 되어 있다. 하수구로만 쓰이던 강이 다목적의 기능을 갖춘 제대로 된 강으로 살아난 것이다. 한강 개발 사업은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다. 그때 이 사업은 현대건설이 골재 채취를 대가로 받고 거의 정부 재정 투입 없이 시행했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바로 MB였다.

알다시피 당초 4대강 사업은 대운하 사업으로 시작했다. 청계천 복원으로 대히트를 친 MB는 대통령 프로젝트로 한반도 대운하를 기획했었다. 물로 재미를 본 MB가 더 큰 물로 세상을 흔들며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광우병 파동 등으로 기세가 꺾인 MB는 대운하 사업이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4대강 살리기로 방향을 전환했다. 당시 방향 전환에 일익을 담당했던 필자는 대운하에 미련을 못 버리던 MB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 MB를 가뭄과 홍수에 취약한 하수구로 전락해 가는 4대강을 지금의 한강처럼 만들자고 설득했던 기억이 새롭다. 매년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들어가던 예산을 따져보면 20여조원이 들어간 4대강 사업은 지금쯤은 대강 본전은 뽑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4대강 사업이 지금 적폐로 몰려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치하에서 일어난 일들은 무조건 백안시하는 경향이 심한 것 같다. 그중에서도 4대강 사업은 찍혀도 단단히 찍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수난을 겪었다. 이미 MB 정부 때 한 차례 감사원 감사를 받은 4대강 사업은 그것을 극력 반대했던 박근혜 정부 들어와 두 차례 감사를 더 받고, 그것도 모자라 존폐를 다루는 최종 평가위원회까지 거쳤다. 결과는 ‘다소 문제는 있으나 존속하는 것이 낫다’였다. 평가위원회는 100명에 가까운 관계자들이 참여했을 정도로 어떻게든 손을 보겠다고 단단히 벼른 듯한 위원회였다. 그럼에도 4대강 사업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런 4대강 사업이 지금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 

2019년2월26일 공주시민들이 26일 오전 공주보 앞에서 집회를 열고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위원회의 공주보 부분해체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9년2월26일 공주시민들이 26일 오전 공주보 앞에서 집회를 열고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위원회의 공주보 부분해체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 연합뉴스

4대강 사업에 대한 평가를 진행해 온 환경부 4대강 조사 평가 기획위원회는 금강·영산강의 보 다섯 곳 중 세 곳을 철거하고, 두 곳을 상시 개방하는 안을 2월22일 내놨다. 감사원 감사를 포함하면 다섯 번째 평가 만에 이런 극단적인 결정이 난 것이다. 여기서 정상적인 국민이라면 정부의 평가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놈의 평가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냐는 것이다. 심지어 감사원 감사는 이명박 정부 때와 박근혜 정부 때의 결과가 각기 달랐다. 결국은 결론을 미리 내리고 평가하는 게 아니냐는 불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이번 정부 여론조사에서 지역주민들은 51%가 보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29%가 필요 없다고 답했다. 일반 국민은 44.3% 대 36.9%다. 정부는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있다. 게다가 공주보의 경우 환경부 주장은 경제성 평가에서 보 해체 후 40년간 얻게 될 편익이 해체에 따른 비용보다 90억원 많기 때문이라 한다. 연간 2억원 정도 때문에 보를 부순다니 혀를 찰 일이다. 이 정부 들어서 시작한 적폐청산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계속되고 있다. 물론 적폐는 청산해야 한다. 하지만 합리성과 타당성을 결여한 적폐청산은 적폐청산이 아니라 앙갚음일 뿐이다. 앙갚음도 사람에게 해야지 왜 죄 없는 강에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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