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만기친람, ‘新남방외교’ 위해서라고?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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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인 기업인 신병 확보 이례적 지시…인니 현지 정치 쟁점화에 말릴 수도

지금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는 한 한국인 기업인의 ‘야반도주’로 뜨겁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올 1월24일 CNN은 인도네시아발 기사를 통해 “수도 자카르타(Jakarta) 근교인 브카시(Bekasi)에 위치한 의류봉제회사 ‘슬라라스 카우사 부사나(PT Selaras Kausa Busana‧이하 SKB)의 김 아무개 대표가 근로자 3000명의 월급과 보험금을 주지 않고 회사 공급 900억 루피아(약 71억5500만원)를 들고 한국으로 도망쳤다”고 보도했다.

김 대표의 무책임한 행동은 인도네시아 사회의 공분을 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김 대표가 횡령한 회삿돈 900억 루피아는 정규직 2000명과 계약직 1000명의 급여와 고용보험료다. 미라 수미란 인도네시아근로자협회 회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SKB는 지난해 8월부터 유동성 문제가 생겨 계약직 근로자 1000명 에 대한 급여를 주지 않았으며 9월에는 1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고 분노했다.

이번 사건은 대선을 앞둔 인도네시아 정가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외국인 투자 우대정책을 펴고 있는 야당에게는 악재인 반면, 재선에 도전하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 측에게는 반격을 위한 절호의 찬스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9월1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부인 이리아나 여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포토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9월1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부인 이리아나 여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포토

인도네시아근로자협회가 고발해옴에 따라 인도네시아 정부는 경찰·국세청 등 공권력을 총동원한 상태다. 동시에 다양한 외교 경로를 통해 우리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지 한국 기업들은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 봉제기업 관계자는 “한국에 본사가 있을 경우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할 수 있으나 이 회사는 한국에 법인이 없어 이마저도 힘들다”며 안타까워했다.

 

조코위 정부, 한인 기업인 고의 부도를 대선에서 활용

이번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3월7일 조국 민정수석에게 “인도네시아 당국과 수사 및 형사사법 공조, 범죄인 인도 등 대응 방안에 대해 적극 공조하라”고 지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에 있는 한국기업이 현지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인에 수사를 지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김 대표 신병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넘기는 것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인도네시아 정치권이 이번 사태를 대하는 처사는 다분히 정략적인 측면이 있다. 김 대표가 몸담았던 인도네시아 의류봉제산업 업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패스트패션 등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단순 임가공 형태의 의류봉제산업은 사향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도네시아 한인 의류봉제업체 대표는 “주문 감소로 단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한인 기업들의 경영난도 심각한 수준이다. 여기에 지난해 한때 달러당 루피아화가 1만5200까지 오르다 안정세로 돌아서면서 환차익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3월7일 오후 춘추관에서 최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임금체불과 관련한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당국에 수사 및 형사사법 공조, 범죄인 인도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조국 민정수석에게 지시했다. ⓒ연합포토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이 3월7일 오후 춘추관에서 최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임금체불과 관련한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당국에 수사 및 형사사법 공조, 범죄인 인도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조국 민정수석에게 지시했다. ⓒ연합포토

이런 가운데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인도네시아 현지 고용 환경은 가뜩이나 어려운 한인 기업들의 경영난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지 의류봉제회사들이 미국·유럽의 의류브랜드로부터 일감을 받으려면 직원을 정규직으로 뽑아야 한다. 문제는 정규직 해고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규제가 까다롭다는 데 있다. 임금 인상률에 대한 결정권도 공장들이 입주해 있는 지자체의 권한이다. 자카르타 인근 도시들의 임금 인상률은 매년 7~8%에 이른다. 또다른 의류봉제기업 관계자는 “졍규직은 해고가 불가하므로 결국 영세한 봉제공장에서는 갈 데까지 가다 안되면 야반도주 하는 것이 종종 있었는데 이번처럼 한국 대통령이 나서서 동포 기업인에 대해 처벌을 요구하고 나선 점에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해외 투자기업에게 높은 기준만 요구할 게 아니라 인도네시아 정부도 고용시장 유연성 차원에서 퇴직금 중간 정산 제도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남방 정책을 치적으로 삼으려는 문재인 정부가 인도네시아 대선 기간 중 쟁점화된 사안을 갖고 문제를 키우는 것에 대해 인도네시아 교민사회 일각에서는 서운한 감정을 표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현지 교민은 “사태를 만든 김 대표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문 대통령이 언제부터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만기친람’식으로 관여했느냐”며 “우리 기업인들의 고충을 해결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해당 기업인 신병 확보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서운한 감정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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