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나이와 직업을 묻지 않습니다
  • 이미리 문토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6 15: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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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리의 요즘 애들 요즘 생각] 온전히 나답게, 한 뼘쯤 자유롭게

순서의 순서는 무엇으로 결정될까? 중요도다. 사람들은 중요한 순서대로 말한다. 자기소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보통 직업을 제일 먼저 얘기한다. 그러곤 이름을 말한다. 이후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처럼 나이가 따라온다. 요즘은 사는 곳을 말하는 경우도 늘었다. 

이 정도면 자기를 설명하는 게 충분한 때가 있었다. 회사와 일이 전부이던 시절이다. 대신 회사는 우리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줬다. 그래서 하는 일과 나이만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의 경로를 거쳐 어떤 목표를 향해 전진해 가고 있는지 얼추 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평생직장’은 사라졌다.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은 일상화됐다. 회사는 더 이상 어떤 장밋빛 미래도 약속하지 않는다. 그렇게 회사가, 일이 전부인 시절은 끝났다. 

최근 소셜살롱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곳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는 직업도, 나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은 신선함을 느낀다. 다들 이젠 어떤 일을 하는지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를 이루는 다양한 것들로 나를 소개하며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소셜살롱에서는 자기소개를 직업과 나이가 아닌 취향으로 한다. ⓒ 이미리 제공
소셜살롱에서는 자기소개를 직업과 나이가 아닌 취향으로 한다. ⓒ 이미리 제공

있는 그대로 나를 소개하기, 새로움의 시작

맞다. 낯설다. 처음엔 누구나 약간 막막함을 느낀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를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 된다.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음식, 내 머릿속을 맴도는 한 문장으로 나를 소개하는 일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의외로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런 소개 과정은 나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내 직업, 나이와 관계없이 사람들 앞에서 나의 취향으로 나를 소개하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경험은 자기 긍정의 효과도 낳는다. 맞다. 나는 그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다.

이런 분위기의 소셜살롱에서는 대기업 부장님과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 글쓰기 모임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공유하며 친구가 된다. 딸 둘을 가진 가장도 직장과 가정에서의 책임과 압박감을 잠시 내려놓고 요리하고 그 요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수다를 떨며 자유로움을 느낀다. 온종일 숫자와 씨름하며 능숙하게 의사결정을 내리던 회계사도 일상의 낭만을 가사로 써보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직업과 나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한 뼘 떨어져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내 안의 또 다른 가능성이 깨어난다.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끼워 맞추듯 살아가며 억지로 져야 했던 짐과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보다 멋지게 살아낼 수 있는 기운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묻고 싶다. 나는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나이와 직업 대신 스스로를 채우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의 키워드들로 나를 소개해 보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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