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락인의 사건추적]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9 17: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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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수의학과 이윤희씨 실종 사건

활달한 성격에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이윤희씨(29)는 이화여대에서 통계학과 미술을 복수 전공했다. 이씨는 수의사가 돼서 동물병원을 운영하겠다며 2003년 전북대 수의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경기도 남양주가 집이었던 그는 학교에서 가까운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의 한 원룸에서 자취하며 객지생활을 했다.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벌었던 착한 딸이었다. 2006년 6월5일은 수의학과 졸업반 학생들의 마지막 실험실습 날이었다. 조별 실험실습이 끝난 후 40여 명의 학생과 교수들은 학교 근처의 한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했다. 모임은 자정을 넘겨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씨의 옆자리에는 3학년 남자 동기인 A씨가 계속 앉아 있었다. A씨는 이씨에게 호감을 갖고 3년 동안 곁에 있던 인물이었다. 6월6일 오전 2시30분쯤 이씨가 “집에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A씨도 호프집에서 뒤따라 나왔다. 

하루 뒤인 6월7일 오전 전공 수업에 이윤희씨가 결강했다. 평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빠짐없이 들었던 수업이었다. 과 동기들은 아무 연락도 없이 수업에 빠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마침 이씨는 4일 전인 6월3일 새벽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귀가하던 중 휴대전화가 들어 있던 손가방을 날치기당한 상태였다. 

ⓒ 이윤희씨 가족 제공
ⓒ 이윤희씨 가족 제공

원룸에서 사라진 증거들

이씨를 걱정한 과 동기 두 명이 원룸에 찾아갔다. 하지만 원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이름을 불러봐도 안에서 인기척은 없었다. 6월8일에도 이윤희씨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동기들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A씨 등 4명의 동기들은 이씨의 원룸을 찾아갔으나 역시 문은 잠겨 있었다. 안에서는 이씨가 키우던 강아지가 연신 짖어댔다. 동기들은 이윤희씨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를 하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물어봤으나 알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이들은 지구대와 119의 협조를 받아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씨는 원룸 안에 없었다. 며칠째 굶은 강아지가 쓰레기통을 뒤져 흩어놓은 상태였다. 먼저 방 안을 둘러본 경찰이 “신고하려면 지구대로 따라오라”고 해서 두 명의 동기가 경찰관을 따라나섰다. 나머지 두 명은 어지럽혀진 방 안을 청소했다. 이 중 한 명이 A씨였다. 

A씨는 대걸레를 빨아 방 안 곳곳을 닦았고, 쓰레기는 20리터 쓰레기봉투에 담은 후 밖에 내다 버렸다. 실종 소식을 들은 이윤희씨 가족은 6월8일 오후 6시쯤 전주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지구대를 찾아가 실종 신고된 것을 확인한 후 원룸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행방불명된 딸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던 부모. 이윤희씨 언니는 답답한 마음에 동생이 쓰던 컴퓨터 전원을 켜고 혹시나 단서가 있는지를 찾았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이씨가 실종됐을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기록이 컴퓨터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6월6일 오전 2시58분부터 3시1분까지 3분 동안 컴퓨터에 접속했는데 ‘성추행’ ‘112’ 등의 단어를 검색했다. 그리고 1시간20분 후인 4시21분에 수동으로 전원이 꺼졌다. 이런 정황에 따라 관할 전주 덕진경찰서는 이씨가 단순 가출이 아니라 범죄와 관련됐을 것으로 보고 강력팀에 수사를 맡겼다. 

원룸 안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가족들에 따르면 이씨는 평소 집에 들어오면 옷부터 갈아입는 습관이 있었다. 뒤풀이를 가졌던 날의 낮 최고 기온은 30도에 육박했다. 여기에다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진 탓에 옷에는 땀 냄새 등이 배어 있을 만하다. 이씨가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에서 실종된 것을 감안하면 평소 집에서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 실내복이나 잠옷 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방 안에 있어야 할 실내복이나 잠옷은 모두 없어진 상태였다.  

방 안에서 사라진 것은 또 있었다. 이씨는 찻상을 식탁이나 책상 등 다용도로 사용했다. 실종 전에 원룸에 놀러 갔던 친구들도 “방 안에 찻상이 놓여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이 찻상이 보이지 않았다. 

며칠 후 이씨의 아버지는 원룸 주변을 살펴보다가 도로변의 폐가구 쓰레기 더미와 길옆 밭 언덕 사이의 좁은 틈 깊숙한 곳에서 다리가 분리된 찻상 상판을 발견했다. 상판 다리는 드라이버 등을 이용해 정교하게 분리된 상태였다. 상판 윗면은 깨끗했으나 뒷면은 긁힌 흠집이 있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범인이 이 흠집을 감추기 위해 찻상의 다리를 분리한 다음 눈에 띄지 않게 버린 것으로 추정했다. 또 공구 서랍함의 여러 공구 중 유독 망치만 보이지 않았다. 

세탁기 안에는 세탁한 수건 4장과 팬티 1장이 들어 있었다. 방 안에는 잘 정리해 둔 수건이 여러 장 있었는데, 이것만을 돌리기 위해 세탁기를 가동했다는 것도 의아하다. 빨래를 세탁했다면 건조대에 널었어야 하는데도 건조대는 접어서 벽에 세워 둔 상태였다. 방 안 약품 통에 있던 동물 마취제는 절반 정도가 비어 있었는데, 범행 당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렇듯 방 안에는 이윤희씨 실종과 관련한 많은 증거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과 동기들이 방 안을 말끔히 청소하면서 경찰은 초기 증거 확보에 실패하게 된다. 이것은 이씨 실종 사건이 미제로 남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2006년 6월6일 새벽에 실종된 이윤희씨를 찾는다는 내용의 현수막 ⓒ 이윤희씨 가족 제공
2006년 6월6일 새벽에 실종된 이윤희씨를 찾는다는 내용의 현수막 ⓒ 이윤희씨 가족 제공

A씨를 의심하는 가족들

이씨 가족은 처음부터 과 동기인 A씨를 짙게 의심했다. 그 이유로 A씨가 평소 이씨에게 호감을 갖고 집요할 정도로 주변을 맴돌았던 점, 마지막 목격자이자 평소 원룸에 자주 찾아왔었다는 점, 실종 이후 이전과는 달리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점, 방 안 청소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들었다.  

경찰도 처음에는 A씨를 용의 선상에 놓고 조사를 벌였다. 그는 경찰에서 “호프집에서 나온 후 윤희의 가방을 내가 메고 손을 잡은 채 골목 입구까지 도착했고, 윤희가 ‘이제 그만 가라’고 해서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가만히 뒷모습만 지켜보다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을 때 급히 뛰어가 원룸 현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벌였으나 ‘진실 반응’이 나왔다. A씨를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도 확보되지 않았다. 

경찰은 A씨뿐만 아니라 당시 뒤풀이에 참석했던 동료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와 최면 조사까지 벌였지만 유의미한 단서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윤희씨 가족은 A씨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아버지 이동세씨는 전북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A씨에 대한 의혹을 꾸준히 제기했다. A씨가 서울에서 동물병원을 개원하자 그 앞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참다못한 A씨는 이씨를 수차례에 걸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벌금형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이씨 아버지는 2012년부터 제3의 인물인 B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도 전북대 수의대를 다니고 있던 학생이었다. B씨는 이씨 아버지가 전북대 수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때 유일하게 따지고 들며 위협까지 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의대 뒤풀이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 초기 B씨에 대해 조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종 초기부터 이씨 아버지와 함께했던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모임 회장은 “이윤희 실종과 A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추정만 있고 증거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윤희씨 실종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12년이 넘었다. 그의 아버지는 4년 동안 딸이 지내던 원룸의 월세를 내가며 전주에서 살다시피 했다. 딸의 생사 확인을 위해 1억원의 사례금을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이윤희씨는 여전히 생사가 불투명하다. 경찰 수사는 진전 없이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누가 이씨를 성추행했을까

수의학과 뒤풀이가 있던 호프집과 이씨가 살던 원룸의 거리는 1.5km쯤 된다. 보통 걸음으로는 15분 정도 소요된다. 이씨가 6월6일 새벽 2시30분쯤 호프집에서 나왔다면 2시45분쯤에는 집에 도착해야 한다. 

이씨가 집 안으로 들어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컴퓨터를 켠 시간은 2시58분이다. 당시 이씨가 술을 마신 상태였고, A씨와 대화하며 걸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크게 늦었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이씨가 호프집에서 나온 시간이 정확하지 않고 원룸까지 오는 도중에 변수가 있을 수는 있다. 

인터넷 검색어로 보면 이씨는 집 안에 들어오기 전 누군가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네이버 지식인에서 ‘어떤 남학생이 자신의 엉덩이를 만진 내용’ ‘어떤 아저씨가 따라와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내용’ 등을 검색했다. 

이씨를 성추행했다고 의심되는 사람은 두 명이다. 이씨와 함께 집 근처까지 온 A씨와 또 다른 제3자다. A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는다면 제3자가 성추행할 수 있는 곳은 원룸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와 원룸 사이, 원룸 출입구쯤이다. 

2. 범인은 이씨와 아는 사이다

이씨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면 일단 안전은 확보됐다고 볼 수 있다. 원룸은 도어록이기 때문에 번호를 알지 못하면 강제로 부수지 않고는 열 수가 없다. 만약 범인이 원룸 안으로 들어왔다면 두 가지 경우다. 이씨 스스로 문을 열어줬거나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열고 들어왔을 때다. 

이윤희씨 실종의 경우 둘 다 해당될 수 있다. 이씨가 인터넷을 검색한 시간은 불과 3분이다. 당시 상황에 비춰보면 검색 시간이 너무 짧다. 그런데 컴퓨터 전원은 그로부터 1시간20분 후에 수동으로 꺼졌다. 이것은 이씨가 검색을 하다 누군가의 요구에 의해 문을 열어줬거나 아니면 검색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것이 된다. 둘 다 이씨와 알지 못하면 불가능한 상황이다. 

3. 원룸 안에서 거친 몸싸움이 있었다

이씨가 실종된 후 경찰, 119구급대가 도어록을 부수고 원룸 안으로 들어왔다. 이때 방 안은 상당히 어지럽혀진 상태였다. 혼자 남은 강아지 탓도 있었지만 몸싸움 흔적도 있었다. 높은 벽에 걸려 있던 말린 꽃다발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고, 다리가 분리된 채 쓰레기 더미에서 상판만 발견된 찻상에는 흠집이 있었다. 

이것은 방 안에서 거친 몸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 팬티와 수건이 세탁된 채 발견된 것은 성폭행 정황을 뒷받침한다. 범인이 철저하게 증거인멸을 시도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금방 드러날 것을 우려해서다. 보통 면식범들의 행태에서 두드러진다.  

4. 이씨는 살해된 후 유기됐다

지금까지 정황으로 보면 이씨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실종 이후 생활반응도 전혀 없다. 다만 살해 장소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원룸 안에서 살해됐다면 시신 운반에 의문이 생긴다. 범행 현장은 원룸 3층으로 주민 출입이 잦기 때문에 시신을 끌고 아래층까지 내려오기가 쉽지 않다. 

물론 조력자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씨가 원룸에 들어간 뒤 현관 도어록을 부수고 들어가기까지는 약 57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범인이 시신을 바로 이동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대에 조력자의 도움을 얻어 유기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씨를 원룸 밖으로 불러내 살해했을 수도 있다. 원룸 안으로 들어간 이씨를 “대화하자”며 밖으로 불러낸 뒤 살해한 후 유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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