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몰아낸 국민연금…촉각 세울수밖에 없는 재계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3.2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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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이사회서 조양호 회장 연임안 부결…‘2대 주주’국민연금 반대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주요 대기업 ‘국민연금 사정권’ 들어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이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로 결국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공적 연기금이 재벌 총수의 경영권을 빼앗은 첫 사례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국민연금이 재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3월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빌딩에서 이사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을 표결에 부쳤다. 64.1%가 찬성표를 던졌지만, 정관상 의결정족수 3분의 2를 넘지 못해 부결됐다. 여기엔 대한항공 지분 11.5%를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전날 국민연금은 “조 회장이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해 선임 반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박창진 대한항공 직원연대 지부장을 비롯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대한항공 주주총회를 마친 뒤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박창진 대한항공 직원연대 지부장을 비롯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대한항공 주주총회를 마친 뒤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그간 국민연금은 주요 대기업의 핵심주주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사진 구성에 관해선 총수의 결정을 따랐다. 시민단체 등이 예전부터 태도 전환을 촉구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원칙)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 들어 태도를 바꿨다. 

첫 번째 희생양은 조 회장이었다. 국민연금은 올 1월부터 “대한항공에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며 적극 대응을 예고해왔다. 이후 ‘연기금 사회주의’란 비판의 시선도 있었다. 실제 주주권 행사는 힘들 거란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다. 국민연금이 경영에 참여할 경우 주식 매매차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규제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조 회장 연임안 부결로 국민연금은 실질적 경영 감시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렇게 된 이상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포스코, GS건설, KT 등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 무엇보다 갑질 논란으로 논란을 빚은 대림산업이 다음 타깃으로 꼽힌다.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은 운전기사 폭행, 일감 몰아주기 혐의 등으로 지탄을 받았다. 국민연금은 대림산업 지분 13.2%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경영진 교체 등 핵심 사안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다. 

국민연금이 외국인 주주와 손을 잡으면 영향력은 더 커진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두 곳 지분 합계가 오너 측 지분보다 높은 기업은 13곳으로 조사됐다. 이 중엔 한국 경제를 이끄는 ‘빅2’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포함돼 있다. 이번 조 회장 연임안 부결도 일부 외국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한항공 지분 24.7%를 보유한 외국인 주주는 일찍부터 대한항공 주총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다. 이와 관련해 앞으로 국민연금과 주요 주주들과의 물밑 공조가 강화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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