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다른 것과 틀린 것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30 17: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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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는 건 권위주의적 의식
틀린 것을 다르다고 하는 건 잘못된 자유주의

텔레비전에 공익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좀 길지만 내용을 옮겨본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뜻을 아시나요? ‘다르다는 서로 같지 아니하다’, ‘틀리다는 사실이 그르거나 어긋나다’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단지 다를 뿐, 틀린 사람은 없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입니다.

무슨 이런 기본을 광고까지? 그런데 주제가 “나는 혐오표현이 싫어요”였다. 핵심은 ‘차이’를 ‘차별’하지 말자이고, 그 ‘차이’의 내용에는 ‘다문화가정-인종’ ‘여성’ ‘장애인’ ‘학력’ ‘지역’ 등이 두루 포함될 것이다. 다름과 틀림을 주제로 한 공익광고는 2017년 ‘상호존중과 배려-나는 맞고 남들은 틀리다’, 2013년 ‘다문화 이해와 소통’이 대표적이다. EBS와 여성가족부는 몇 년 전부터 다름과 틀림을 주제로 성차별, 장애인 차별,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기도 하다. 아쉽게도 이 광고 동영상이 게시된 정부 페이지의 댓글들을 보면 아직 크게 효과는 없는 것 같지만.

영국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 ⓒ EPA 연합
영국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 ⓒ EPA 연합

《자유론》 다시 읽기 캠페인을 해야 하나 보다

이 ‘다르다/틀리다’ 혼동은,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에 의하면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틀리는 말 4총사라고 한다. 그 네 가지는 △사물존칭(“커피 나오셨습니다”) △다르다/틀리다(“다르다와 틀리다가 어떻게 틀리죠?”) △던/든(“먹던 말던 상관없다”) △가르치다/가리키다(“내가 가리키는 애들은 착해”) 등이다. 사물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고 차이를 차별로 바꾸며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고 교육과 지시를 뒤섞어버린다. 좀 과장하면, 돈이 사람보다 중하고 과거사에 대한 형편없는 인식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핵인싸”가 아닌 모든 사람은 마구 차별해도 되고 계몽과 교육을 거절하고 멸시한다는 이야기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맞는다고 하겠는가. 틀리다고 하지. 

그런데 뜻밖에도, 다른 것을 틀리다고 하는 사람 못지않게, 틀린 것을 단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와 남이 다를 때는 나는 맞고 남들은 틀리며, 나는 틀리고 남이 맞을 땐 나와 남은 그냥 다를 뿐이고 나의 틀린 언행은 다양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궤변. 

다름과 틀림을 제대로 구분하는 일은 단지 어휘의 뜻을 아는 문제가 아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은 더 들여다보면 권위주의적 의식의 소산이다. 권력을 지닌 자의 주장은 ‘옳기’ 때문에, 그와 다르면 틀린 것이 된다는 사고방식. 반대로 틀린 것도 다른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자유주의의 소산이다. 나는 무한한 표현과 행동의 자유가 있으므로,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건 다른 것일 뿐 틀린 게 아니라는 착각. 우리의 생각과 언어와 행동의 바탕에는 이러한 정치사상들이 내면화된 관습과 문화가 있고, 심지어 뒤섞여 있다.  

단지 말만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건 그냥 글자만 ‘가리키는’ 일이 될 뿐이다. 권위주의 정당이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자유주의 정당이 그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달라서”가 아니라 철학부재다. 성평등이라 말하지 못하고 양성평등이라 말하는 것은 눈치 보기고. 아무래도 《자유론》 다시 읽기 캠페인을 해야 하나 보다. 밀은 말하기를,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틀린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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