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논쟁, 너무 정치화 됐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2 10:33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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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탈원전’ 주창자 윤순진 서울대 교수
“미세먼지가 탈원전 탓? 모르고 하는 소리”

악화되는 미세먼지로 인해 ‘탈원전’을 고집하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잿빛 하늘을 만든 주범으로 중국을 낙인찍었고, 그 공범으로 정부를 지목했다. 중국발(發) 미세먼지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할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탈원전 정책 탓에 화력발전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미세먼지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학계에서도 “탈원전 정책을 수정해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시사저널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주창자로 알려진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만나 미세먼지의 심각성과 함께 일각에서 제기되는 탈원전 정책의 수정 필요성에 대해 물었다. 윤 교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세먼지 논쟁이 ‘과하게 정치화’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화력발전이 증가한 것은 전 보수정권의 에너지 정책 탓이고, (현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상황”이라며 “특히 고농도 미세먼지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가 얽혀 발생하는데, 언론과 정치권이 이 문제를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권과 원자력학계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국내 미세먼지 농도를 높이는 기폭제가 됐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5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막무가내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가동을 줄여 화력발전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이게 결국 미세먼지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며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원전가동 중단→전기생산량 부족→석탄화력발전으로 대체→미세먼지 증가’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얘기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1 ‘탈원전’ 탓에 화력발전 늘었다?

통계치만 보면 위 주장은 상당히 근거가 있어 보인다. 실제 지난해 원전 이용률(연간 최대 가능 발전량 대비 실제 발전량 비율)은 37년 만에 최저치인 65.9%로 집계됐다. 과거 원전 이용률은 2015년 85.3%, 2016년 79.7%, 2017년 71.2%를 기록했다. 원전 이용을 극대화하지 않다 보니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늘어날 수밖에 없으며, 미세먼지가 악화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윤 교수는 이를 ‘착시’라고 반박했다. 윤 교수는 “문제가 된 화력발전소를 지은 건 현 정부가 아니다.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건설했거나 계획한 발전소들이다. 심지어 대부분 민간기업에 맡기다 보니, 지금 와서 정부 임의대로 중단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행태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원전을 줄여서 미세먼지가 심해졌다는데, 줄인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역사에서 원전 시설용량이 가장 큰 게 지금이다. 정부가 탈원전 얘기만 했지 탈원전을 하지 않았다. 최근 원전 이용이 줄어든 이유를 살펴보면, 멀쩡하던 원전을 정부가 멈춘 게 아니라 안전과 관련된 다양한 스캔들이 터지면서 가동률이 떨어진 것”이라며 “이 같은 사실은 모두 무시한 채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는 바람에 원전 가동이 줄었다고 말하는 것은 허위”라고 강조했다. 

실제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에너지 수급 브리프’에 따르면,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호기(총 2.8GW 규모)가 올해 시장에 진입하면 원전 설비용량이 사상 최고치인 25.3GW를 기록, 원전 발전량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신한금융투자는 보고서를 통해 올해 원전 가동률이 83.3~84.8%로 예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2 원전 늘리면 공기 질 개선되지 않을까?

윤 교수의 말처럼 현 시점에서 탈원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정부 계획대로 설계 수명이 끝난 원전의 가동을 연장하지 않고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2030년 전후로 원전 설비 규모가 줄어들게 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이 ‘왜 탈원전을 해야 하는가’다. 탈석탄을 위해서라도 원전을 더 개발하는 게 우리나라 대기 질 개선에 득이 되지 않겠냐는 질문이 나온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탈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윤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원전이 100%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만 펼칠 수 있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예로 들었다. 윤 교수는 “후쿠시마 사고 전날 일본 원자핵공학자한테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나’라고 질문했다면 안 난다고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고가) 안 날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특히 우리나라 원자로는 한 기당 용량이 커 사고가 발생하면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방출될 수 있는데 발전소 주변 지역 인구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원전이 결코 ‘싼 에너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원전을 돌릴수록 늘어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 핵연료) 처리를 위한 터를 계속 찾아야 하고, 안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건설비와 관리비 역시 계속 증가할 것이란 주장이다. 그는 “원자력 에너지의 경우 방사성폐기물을 완전히 폐기하는 기술이 없다. 10만 년 이상 안전히 보관해야 하는데 그런 폐기물을 후세대에 물려준다? 나는 학자적 양심으로 도저히 그럴 수 없다. 결국 국익을 위해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근시안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3 탈원전이 전기요금 인상을 낳는다?

일각에서는 탈원전을 ‘반(反)서민 에너지 정책’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을 줄인다면,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오염물질이나 폐기물이 적은 LNG발전은 원전과 화력발전보다 상대적으로 원료 가격이 비싸다. 윤 교수를 비롯한 환경학자들이 주장하는 태양열 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는 아직 ‘그리드 패리티’(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와 기존 화석에너지 발전단가가 같아지는 균형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탈원전까지 외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윤 교수 역시 탈원전이 전기요금 인상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그러나 “비용 부담 없이 해결할 수 있는 환경문제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전기비용이 올라가는 것은 거부하면서 마스크 구입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이상하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고 있지만 미세먼지에 따른 개인 비용이 크다. 석탄화력발전을 멈추고 원전을 줄여 나가는 대신 LNG발전을 돌리면 된다. 전기요금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정도는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이어 경유세 역시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고농도 미세먼지를 늘리는 주범 중 하나가 경유차인데,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유의 값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발전소만 얘기할 게 아닌 게, 수도권의 대기 질을 악화시킨 주범 중 하나가 경유차다. 특히 경유차의 배기가스는 1급 발암물질이다. 암을 유발하는 물질을 뿜으면서 모세혈관처럼 퍼진 도로를 계속 다니고 있는 게 경유차다. 경유 값을 올려서라도 새 경유차를 구입하는 동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정부의 환경정책은 낙제점이다?

미세먼지가 시발점이 돼 정부의 환경정책 전반이 도마에 올랐다. 탈원전 논쟁이 재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에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정부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여기에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미세먼지 3법’이 너무 근시안적인 대처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잿빛 하늘 아래 정부의 무능까지 더해지면서, “답답하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의 환경정책이 낙제점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윤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정부를 비판할 순 있지만, 순서와 잣대가 잘못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미세먼지와 탈원전 문제를 국회의원들과 언론이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해석하려 하는 탓에, 시민들을 오히려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정부의 정책이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동일한 잣대로 평가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이번 정권 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인가? 앞서 화력발전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국회와 언론이 제대로 된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informed decision(정보가 제공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환경문제에 있어 무책임하면 안 된다. 특정 나라와 정부를 탓하기에 앞서 일단 나부터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게 순서에 맞다. 작게는 전기를 아끼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부터 제대로 지켜야 한다.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감내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모든 에너지 문제가 이 같은 가치를 공유하면서 논의돼야 한다.”  

윤순진 교수는 누구?…
환경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여성 환경운동가이자 대학 교수인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국내 친환경 에너지 분야의 권위자다. 화력발전을 반대하는 ‘저격수’면서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인 ‘탈원전’과 ‘4대강 재자연화’에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지원군이기도 하다. 이른바 진보 환경학자로 분류되면서 이번 정부의 유력한 환경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 2기 개각 당시 조명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원장과 함께 차기 환경부 장관 물망에 올랐지만, 본인이 고사한 뒤 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포용 사회분과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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