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기업들 ‘내수’ 이미지 벗고 ‘해외’ 엑소더스
  • 차여경 시사저널e. 기자 (chacha@sisajournal-e.com)
  • 승인 2019.04.09 15:00
  • 호수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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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와 뷰티, 식음료 프랜차이즈도 국외 거점 세워…선호 국가도 중국서 베트남으로

국내 중소기업들이 내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겠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이면에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도입 등 노동환경 변화로 발생한 인건비를 낮추려는 노림수도 포함돼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은 그동안 공장 이전이 주를 이뤘다. 주로 제조업체가 값싼 인력을 찾아 개발도상국으로 떠나던 식이었다. 이제는 헬스케어와 뷰티, 식음료 프랜차이즈까지 해외 거점을 세우는 현지화 전략에 나서고 있다. 최근 K팝과 한류 드라마 열풍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스타트업 죽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최근 하노이에 위치한 베트남 지사를 본사에 준하는 규모의 거점으로 운영할 계획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죽이야기 측은 “포화 상태인 국내 자영업 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맹점주들의 창업이민 제도 역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베트남 시장이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인적자원이나 물류 유통이 용이한 덕에 사업 확장 면에서 가장 전망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헬스케어와 뷰티 업체 역시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다. 중소 마스크팩 업체인 엘엔피코스메틱은 수출 규모를 꾸준히 키워오다 해외 지사를 세웠다. 엘엔피코스메틱이 만든 마스크팩 ‘메디힐’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 누적 14억 장이 판매된 베스트셀러 상품이다. 엘엔피코스메틱은 2016년 일본 지사를 세우고 9개 제품을 현지에서 생산·유통해 왔다. 여기서 가능성을 확인한 엘엔피코스메틱은 베트남 지사를 통해 수출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내수 시장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해외로 거점을 옮기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사진은 인사이드 핀테크 컨퍼런스 모습 ⓒ 연합뉴스
국내 내수 시장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해외로 거점을 옮기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사진은 인사이드 핀테크 컨퍼런스 모습 ⓒ 연합뉴스

혁신 기술로 해외에 본사 세운 기업도

박기영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회장도 올해 초 프랜차이즈들의 과열 경쟁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밝힌 바 있다. 그는 “한류의 종착지는 먹거리와 식문화가 될 것”이라며 “국내 자영업의 과열 경쟁을 해결하기 위해 협회가 프랜차이즈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혁신 기술로 현지에 본사를 세운 기업들도 있다. 이들은 ‘해외 진출’ 개념이 아니라 ‘해외 현지 기업’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핀테크 스타트업 밸런스히어로는 2015년 인도에서 모바일 잔액 확인, 결제 및 데이터 관리 앱 ‘트루밸런스’를 출시했다. 인도 최대 상업은행이 밸런스히어로에 투자할 정도로 현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스윙비는 최근 동남아시아 중소기업 인사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총 4개 국가에 법인을 설립했고,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재활기기 업체 네오펙트 역시 2015년 미국 지사를 세우고 유럽과 미국으로 유통망을 넓히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들이 해외 지사 설립에 적극적인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노동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경영 부담을 덜기 위함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문에 참여한 국내 중소기업의 50.1%는 국내시장 경쟁 격화, 생산비용 증가, 노사분쟁 등으로 경영 환경이 나빠져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소기업은 진출 희망 시장으로 동남아시아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응답 기업 27.5%가 동남아를 1순위로 택했다. 동남아 시장을 포함한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응답이 46.1%를 차지했다. 미국(15.3%), 중국(15.0%), 유럽(12.5%), 일본(11.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경영 부담을 덜기 위해 해외를 찾기도 한다. 한 자율주행기술 중소기업 대표는 “국내 창업이나 자영업 시장이 이미 레드오션(Red Ocean)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어느 정도 규모가 성장한 이후 해외에 프랜차이즈를 세우거나 지사를 세우면 가맹점주들의 창업 이민이나 해외 일자리 창출 등의 부수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시장 진입 시기를 놓치면 해외 진출은 어려워진다. 애초에 해외 진출이라는 개념이 아닌 해외를 내수 시장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해야 한다”며 “많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해외에 법인을 세우는 것도 현지화 전략의 연장선상”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 27.5% “동남아시아 가장 선호”

전문가들은 관세와 인건비 부담 등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내수나 수출만으로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고 조언한다. 해외 진출을 통한 신흥시장 개척으로 사업을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실장은 “중소기업들이 국내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수출하다 보면 관세나 물류비용이 많이 든다. 직접 해외로 나가면 이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시장 선점 차원에서 해외 법인을 세우면 법인세를 감면해 주는 국가도 있다”며 “특히 베트남은 국내 업체들이 주목하는 국가다. 베트남 소비층을 잡기 위해 중소기업들이 속도를 높여 진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동남아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로는 ‘성장 잠재력’을 꼽았다. 추 실장은 “과거엔 중국의 인건비가 싸서 국내 기업들이 많이 진출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자체 경쟁력이 오르고, 중국 정부가 자국우선주의 경제정책을 내놓으면서 한국 기업들이 많이 떠났다”며 “이제는 동남아 시장이 뜨고 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소비시장이 급격히 커졌고 대부분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었다. 낮은 인건비와 넓은 시장이 국내 중소기업엔 메리트로 다가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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